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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 1기’ 女행원, 허영순 씨가 말하는 ‘모성 처세술'
‘공채 1기’ 女행원, 허영순 씨가 말하는 ‘모성 처세술'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07.13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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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멘토의 조언

여성 멘토의 조언

‘공채 1기’ 女행원이 유리 천장을 깨다
허영순 씨가 말하는 ‘모성 처세술’

 

여성 상위 시대와 여성 권익 신장이라는 말이 요즘은 오히려 당연해서 잘 사용하지 않게 됐다. 하지만 여성들이 가정과 일터에서 겪는 고충은 여전하다. 사회적 인식과 개인적 체감 사이에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 중심의 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인식 변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입으로는 여성시대를 외치고 있지만 머리와 가슴으로는 여성친화적인 가치에 공감하지 못한 것이다. IBK기업은행 1기 공채 출신으로 직장 여성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허영순 씨 전 지점장이 일과 육아의 양립에 관한 지혜를 전한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이용관

허영순 씨는 IBK기업은행 공채 1기로 입사해 지점장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공채 1기’ 출신 여성 지점장은 성공의 의미와 별개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바로 여성 차별적인 기업 문화 속에서도 여성만의 강점을 살려 남성 중심의 직장 문화를 스스로 변화시켰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실제로 당시 국내의 주요 은행들은 관리자급 공개 채용에 여성을 지원 대상으로 포 함시키지 않았다. 그러다 1985년 당시 채용 제도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여성도 관리자 직급의 시 험을 볼 수 있게 됐고, 그이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당시 그이는 여성으로서 직장 내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지금 처럼 조언을 구할 여성 멘토도 없었을 뿐더러, 여성 임원이라는 전례조차 전무했다. 자신이 가는 길이 결국 다른 여성 직장인들에게는 이정표가 된 셈이다. 그이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너무 막 막해서 외로울 때도 많았다”며 “그런 경험들을 후배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여성을 위한 70가지 조언이 담겨 있는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고난의 순간이 모여 내공이 된다
그이가 발표한 책 <회사에서 여자가 일한다는 것>(넥서스)은 왕성하게 일을 해야 하면서도 결혼과 출산, 육아 등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인 20~30대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출산과 양육 등 의 문제로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유도하는 현 직장 문화에서 살아남는 법은 포기가 아니라 도전이라고 했다. 특히 결혼과 출산이 삶의 과정인데도 불구하고 여성에게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못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직장인들이 일을 하려면 노력과 헌신이 필요해 보입니다. 자신에 대한 애정이나 믿음이 있어야지 긍정적인 마음이 생기고, 포기하고 싶은 힘든 순간에도 인내할 수 있고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두 번째는 여성 특유의 강점이 있는데, 그걸 끄집어 낼 수 있어야 해요. 마지막 1%까지 채우려는 실행이 보태지면 조금씩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즐기면 탄력이 붙으니까요. 직장 생활은 100m 달리기가 아니고 마라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마라톤과 같은 직장 생활에서 전략적으로 융화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담았죠. 특히 여성이 결혼이나 출산을 하게 되면 경력 단절 위기가 오잖아요.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듯 결혼과 출산이 삶의 과정이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그러한 힘든 순간이 모여서 내공이 된다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해요.”
현대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독일의 메르켈 총리의 성공 비결은 작은 목표를 끊임없이 성취하면서 실행에 옮기는 것에 있었다. 이른바 ‘스몰 스텝 전략’을 통해 취임 이후 국가 경쟁력은 물론 경제 성장률까지 상승하는 효과를 거뒀다.
그이 역시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러움이 되고, 그것이 모이면 자신도 변화시키고 세상도 변화시킨다’는 중용 23장의 구절을 많은 여성들이 생활신조로 삼을 것을 주문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 내면에 자리잡은 고정관념부터 먼저 깰 필요가 있다고 했다.
“IMF 구제 금융 시절에 명예퇴직을 한 여성 후배들을 만나면 저에게 그런 말을 해요. ‘선배, 지금 생각하니까 그때 그만두지 않아도 됐는데 아쉽다’고 말이죠. 인생을 마디로 보지 않고 전체로 보면 순간일 뿐이에요. 요즘은 여성친화적 기업 문화도 생기고 그에 걸맞은 인프라도 생겼지만, 무엇보다 여성 스스로 내면의 틀을 깨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죠.”

 

워킹맘으로서 자녀에게 멋진 엄마가 되자

직장 여성들의 가장 큰 고민은 육아와 교육 문제다. 평소 직장일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는 워킹맘들은 전업주부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학부모들 간의 교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학부모들이 함께하는 학교 행사나 봉사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학부모들 사이에서 의도치 않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허영순 씨는 이를 워킹맘만이 할 수 있는 강점으로 극복했다. 학부모들이 일일 명예 교사로 나서는 날에는 어김없이 자진 신청을 해서 자녀 앞에 섰다. 자녀에게는 ‘멋진 엄마’리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학교 행사에서 확실한 ‘눈도장’을 찍을 수도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밤낮을 바꾸어 생활했기 때문에 사실은 정말 하루하루가 힘에 부쳤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그 힘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까 어느 순간에는 감당할 수 있겠더라고요. 물론 울고 싶을 때는 펑펑 울 만큼 감정에 솔직해지려는 태도도 중요하죠.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학교 일을 해줄 수 없으니까 학년 초에 진행하는 일일 명예 교사를 신청했어요. 아이들 앞에 서서 제 전문 분야인 경제 교육을 하는 거죠. 외국 화폐를 소개하고, 통장 만드는 방법 등을 가르치는 엄마의 모습을 아이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렇게 직장에 다니는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없던 부분을 저만의 강점으로 채워 나가니까 워킹맘으로서의 부족한 부분이 크게 드러나지 않게 되었죠.”
물론 육아와 교육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직장 여성들에게는 집안 살림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편의 가사 분담을 활성화하는 사회 운동이 점차 확산되어야 한다는 게 그이의 주장이다.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연구 결과를 보면 여성들은 직장에서 한 가지 일만 하면 되니까 집보다 직장에서의 행복지수가 더 높다고 해요. 요즘 여성친화적인 도시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사실 ‘가족친화적’이라는 단어가 더 자주 언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의 가사 분담이 아내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라고 확장시켜 생각해 본다면 명분이 더 바로 서지 않을까요? 개별 가정의 문제로 축소하기보다는 먼저 가부장적인 사회 인식을 변화시켜서 큰 흐름의 발전적인 사회 운동으로 확신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크죠.”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를 극복하는 비법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에 쉽게 융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업무 시간 이후 술자리로 관계를 형성하는 남자 직원들에 비해 직장 여성들은 그런 기회를 쉽게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영순 씨는 남성성에 의존하지 말고 여성성의 상징인 모성을 드러내야 유리 천장을 깰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행스럽게 여성에게는 본래 모성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모성은 매사 솔선수범하게 만들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죠. 솔직히 아직은 똑같은 능력을 가졌어도 남자 동료가 먼저 승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해서 불만을 갖는 태도보다는 그 순간을 인내하고 절치부심해서 꾸준히 실력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조직에서 나를 찾게 될 테니까요. 실제로 저도 ‘단지 남성보다 조금은 늦을 뿐이지, 언젠가는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극복했습니다.”
그이가 언급한 모성의 발현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아침을 못 먹고 오는 동료들을 위해 집에서 달걀을 삶아 오는 정도만으로도 조직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작지만 섬세한 배려들이 하나둘씩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남자 동료들에게까지 신뢰를 얻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아침 회의 때문에 대부분의 동료들의 아침밥을 못 먹고 오는데, 저는 그 동료들을 위해 삶은 달걀을 가지고 왔어요. 그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달걀을 까먹는 거죠. 굳이 큰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작은 섬세함으로 사람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모이면 ‘따뜻한 사람’이나 ‘동료들을 신나게 하는 사람’이라는 좋은 평판을 들을 수 있고, 덩달아 남자 동료에까지 신뢰를 얻을 수 있죠. 실력이 기본이 된 상태에다 모성에서 나오는 배려가 더해지면 언젠가는 남성보다 앞선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될 겁니다.”
‘부어라, 마셔라’ 식의 음주가 강요되는 회식 문화 역시 여성만이 바꿀 수 있다고 언급했다. 결국 여성들이 기피하는 회식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여성이 직접 나서서 회식 장소를 공연장이나 카페로 옮기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많은 회사들의 회식 문화가 3차까지 이어지는 무리한 술자리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많은 직장 여성들은 과음보다는 함께 있었던 이야기도 하면서 지난 일을 추억하는 자리를 좋아하죠. 그러니까 시끄러운 술자리보다는 조용한 카페로 옮기려는 시도를 여성들이 직접 해야 된다고 봐요.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공연 관람을 제안하는 것도 좋죠. 그런 식으로 회식이 술독에 빠져 의미를 잃게 하는 것보다 여성들의 다양한 제안으로 회식의 진짜 의미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죠. 그러다 보면 업무가 끝난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회식을 통해 워킹맘들도 팀워크를 다질 수 있게 될 겁니다.”
그이는 현재 퇴직 후 자원봉사 활동과 더불어 저술 및 강연 활동에 나서고 있다. 특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많은 직장 여성들에게 필요한 멘토 활동에 적극 앞장설 계획이다. 그이는 자신의 책이나 강연을 통해 많은 여성들이 직장 생활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요즘에는 청소년 경제 교육을 주로 하는 자원봉사단체 ‘ja코리아’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봉사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저의 바람은 제 노하우가 후배들에게 긍정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도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에요. 후배들이 저보다 시행착오를 적게 겪도록 하기 위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 직장 생활의 노하우를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예를 들어 볼게요. 아침에 출근하려고 나왔는데 주차된 자기 차를 한 여성 운전자가 차로 부딪쳐 놓았답니다. 그럴 때 ‘괜찮습니다. 대신 부탁이 있는데 그냥 가셔도 되니, 다음에 다른 사람이 이런 일을 당하면 저처럼 편안하게 해주시면 됩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런 기분 좋은 전염, 긍정 바이러스가 세상에 널리 전파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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