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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아버지 류재천 인터뷰
류현진 아버지 류재천 인터뷰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07.23 0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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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억원에 LA다저스 입단 ‘내 아들 메이저리그 성공까지’

류현진 아버지 류재천 인터뷰
280억원에 LA다저스 입단 ‘내 아들 메이저리그 성공까지’

 

(Queen 2013년 1월호) 연이은 삼진 퍼레이드로 타선을 잠재우는 류현진을 보고 한국 프로야구 팬들은 ‘괴물’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팀 동료들에게는 든든함으로, 상대팀 타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바로 ‘에이스’의 힘일 터.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국보급 투수 류현진이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협상 테이블에서조차 특급 투수다운 대범함으로 자신의 가치에 걸맞은 ‘에이스 대접’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 류재천 씨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권오경, 서울신문 | 장소협찬 라마다송도호텔

류현진은 에이스 특유의 뚝심과 배짱으로 LA다저스와의 연봉 협상을 막판까지 몰고 갔다. 이 과정에서 어쩌면 당사자보다도 더 초조하게 숨죽여 상황을 지켜봐야 했던 아버지 류재천 씨. 부모로서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아들을 향한 믿음으로 계약이 완료될 때까지 일체 통화조차 시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말 조마조마했죠. 하지만 계약하기 30분 전 현진이와 전화 통화를 하고 일체 연락하지 않았어요. 그러고 나서 계약이 끝나고 전화를 했죠. 부모로서 정말 애가 타는 일이지만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현진에게도 방해가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마감 30초를 앞두고 극적으로 아들의 메이저 진출이 성사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회상했다. 마냥 어린아이만 같았던 아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로서 당당히 계약을 이뤄낸 모습을 보고 류현진의 어머니는 ‘이제 다 컸다’라는 생각을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매서운 추위가 그 기세를 꺾고 훈훈한 기운마저 감돌던 날, 어렵게 연결이 된 류현진의 부친 류재천 씨를 인천의 한 호텔에서 만날 수 있었다. 류 씨와 처음으로 대면한 순간, 류현진의 뛰어난 체격 조건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먹는 것만큼 야구를 좋아했던 둘째아들이 오늘날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세계 야구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줄은 류씨 스스로도 예상치 못했다고 했다.
류씨는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듬직한 아들 류현진의 어린 시절과 국내에서의 선수생활, 그리고 메이저리그 진출 비하인드 스토리에 관한 기억들을 차례로 꺼내놓기 시작했다.

일찍이 재능 발견한 후 적극 뒷바라지 나서

류씨는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야구장 나들이’를 즐겼다. 둘째아들 현진이가 유별나게 야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주말이면 어김없이 야구장으로 향했다. 어떨 때는 야구장으로 가는 도중 시위가 벌어져 최루탄 가스에 눈물, 콧물을 흘려야 했지만 야구장으로 향한 발걸음은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지금이야 많은 분들이 가족 단위로 야구장에 가시잖아요.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가족 단위로 야구장을 찾는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많지 않았죠. 그런데도 저는 주말이 되면 두 아들을 데리고 야구장으로 갔어요. 현진이가 법 먹는 것만큼이나 야구를 좋아했거든요.
간혹 야구장에 데려가지 않는 날이면 하루 종일 꽁해 있기도 했죠.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 즈음에 ‘현진이가 원한다면 야구를 시켜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류씨는 아들과 야구공을 주고받는 ‘캐치볼’을 자주 했다. 평소 야구를 좋아했던 류현진은 조금씩 야구에 소질을 보이기 시작했다. 남다른 운동신경으로 야구를 배우는 속도가 또래 아이들보다 빠른 편에 속했고, 개인적인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으로 류씨는 기억한다.
“예전에 하일성 해설위원이 만든 야구 교본 비디오테이프가 있는데 현진이는 학교 수업을 마친 후 집에 와서 어김없이 야구 교본 비디오를 봤어요. 어느 날 확인해 보니까 비디오에 나오는 내용을 달달 외우더군요. 수없이 본 것 같았죠.”
아들의 남다른 재능을 발견한 류씨는 초등학교 야구부를 찾아갔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현진이의 야구 실력을 테스트 받기 위해서였다. 급하게 구입한 왼손잡이용 글러브를 끼고 야구부 감독 앞에 선 류현진은 그간 갈고 닦은 실력을 뽐냈다.
감독은 류현진의 야구 실력을 보자마자 학교 입학을 적극 추천하기 시작했다. 당시 야구부가 없었던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아들을 위해서는 전학을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당시 야구부 감독님께서 현진이를 좋게 봐주셔서 그 초등학교로 전학하기로 했어요. 현진이가 4학년이 되니까 본격적으로 야구선수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저 역시도 아버지로서 적극 지원해 나갔죠. 승합차를 직접 끌고 다른 학부모님들과 함께 각종 시합을 따라다니기도 했고 학교 운동장에 눈이 많이 쌓여서 운동이라도 할 수 없는 날에는 ‘H빔(건설용 철재)’을 활용해 운동장에 쌓인 눈을 치운 적도 있었죠. 어떤 분들은 ‘유별나다’고 말하셨는데, 사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원하는 게 있다면 해주고 싶은 게 당연한 거잖아요.
자식이 잘할 수 있게끔 서포트하는 게 가장 중요한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류씨는 아들을 위해 집 옥상에 개인 연습장을 특수 제작했을 만큼 아들을 향한 열의가 남달랐다. 개인 연습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야구공을 구하기 위해 아마추어 대회 경기장에서 파울공을 줍는 어르신들에게 돈을 주고 공을 사온 적도, ‘탁구공’으로 타격 훈련을 시켰다는 조성민(현 두산 코치) 아버지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바로 골프장을 찾아 골프공을 구해 타격 훈련을 시킨 적도 있을 정도다.
류씨는 지금 돌이켜보면 극성일 수도 있었던 자신의 교육방법에 묵묵히 따라준 현진이가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한다.
“저는 도와주기만 했을 뿐 사실상 현진이가 야구를 하는 것인데 고맙게도 어렸을 때 한 번도 야구를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언젠가 한창 더운 여름날 안쓰러운 마음에 ‘집에 가서 시원하게 오락이나 하지, 이거 왜 하느냐’고 물었더니, 현진이가 ‘그래도 야구를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현진이가 야구할 때만큼은 모자람 없이 할 수 있도록 더욱 신경을 썼던 기억이 나네요.”

한화 입단 후 전 경기 지켜보며 마음으로 응원

 

동산고등학교 1학년 때 한 대회를 마친 후 어깨 수술을 받았던 류현진은 수술 후 8개월간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 류씨는 “당시 어깨 수술로 1년간 휴식기를 가졌던 것이 지금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는데 있어 오히려 훌륭한 자양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선수로서 기량을 한층 발전시킬 수 있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어깨 수술로 재활훈련에만 전념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한창 혈기왕성하던 시기에 야구를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마음이야 오죽 답답했겠어요. 저도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지금 현진이를 보면 오히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던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고졸 투수로는 드물게 150km의 강속구를 던질 수 있었던 류현진은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지명 2순위로 한화의 선택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당시 조폭설에 연루된 류씨에 대한 오해로 프로야구 구단 관계자들이 류현진을 일부러 피했다는 말도 나돌았다. 하지만 류씨는 아들에게 닥친 악재들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지금의 류현진을 만들었다고 했다.
“사실 여러 가지 사건으로 제가 조직폭력배와 연관이 있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요. 당연히 사실과 다른 내용이죠. 그것 때문에 현진이가 한화에 입단한 것일 수도 있지만, 현진이가 한화를 만난 것은 행운이라고 봐요. 당시 한화에 있던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 투수 밑에서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류현진이 경기에 등판하는 날이면 류씨는 어김없이 경기장을 찾았다. 한화 입단 이후 총 190경기를 소화한 류현진의 곁에는 항상 아버지 류씨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류씨는 아들의 경기 결과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승패에 관계없이 아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은 애틋한 부성애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경기 결과는 누구보다 현진이가 잘 알고 있을 테고, 그걸 굳이 가족들이 나서서 지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경기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기보다 경기가 끝나면 수고했다는 의미로 함께 외식을 하고 노래방도 자주 갔죠.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라고 보거든요. 아들이 졌다고 해서 투수로서의 자신감을 건드리면 당연히 다음 경기에서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야구는 야구다’ 미국에서도 건강히 던져 주길

 
 

LA다저스와 공식적인 입단 절차를 마친 뒤 입국한 류현진에게 류씨는 거침없이 다가가 뽀뽀를 했다. MVP 수상 때 뽀뽀한 이후 7년 만에 부자 간의 애정표현이 이뤄진 셈이다. 류씨는 “잘했다”는 백 마디 말보다 사랑이 담긴 한 번의 스킨십을 통해 아들을 향한 지극한 애정을 표현하고 싶었을 터.
“평소에 애정표현을 자주하는 부자관계는 아니지만 아들과는 서로 편하게 지내요. 여느 부자가 그렇듯 보고 싶을 때 전화 통화하면서 이야기하는 보통의 부자관계죠. 공항에서 현진이를 보자마자 ‘축하한다’는 말이 떠올랐어요. 특별히 다른 할 말이 떠오르지 않더라고요(웃음).”
류씨는 이번 연봉 협상에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LA다저스 구단 측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특급 투수다운 대우를 해줬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며 “어느 정도 아쉬운 부분도 있다”고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한국에서 좋은 성적을 낸 투수로서 나름대로 적절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사람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잖아요. 많이 주면 줄수록 좋은 거니까. 어떻게 말하면 아버지의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겠죠.”
내년 1월 중순 혈혈단신 미국으로 떠나야 하는 아들을 위해 류씨 부부는 미국행을 준비하고 있다. 언어와 문화에 대한 부담감이 해소될 때까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아들 뒷바라지에 나설 계획이다.
“아마 언어소통 부분이 미국 생활을 할 때 큰 핸디캡이 될 것 같아요. 물론 현진이가 쾌활한 성격에 오픈 마인드여서 가서 몸으로 부딪히다 보면 금세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차차 영어 공부를 해나가면서 필요한 부분을 조금씩 깨달아 나간다면 미국생활도 잘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연고 없이 떠나는 아들을 보면 문득 미래의 며느릿감을 떠올려보게 된다는 류씨는 외모보다는 착한 성품과 든든한 내조를 아들의 신붓감이 갖춰야 할 주요 덕목으로 꼽았다. 물론 아들이 평생 함께할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현진이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내조만 잘 해준다면 최고의 신붓감이 아닐까 생각해요.”
큰 무대에 진출한 아들의 아버지답게 류씨는 사회 환원을 위한 재단 운영도 구상 중에 있다. ‘박지성재단’과 유사한 형태로 좋은 일에도 앞장서고 싶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아들과 상의해서 재단을 운영할 생각을 갖고 있어요. 조만간 구체화되면 실행 계획이 나올 거예요. 어떤 일이라도 급하게 추진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보거든요. 차근차근 준비해서 좋은 일에 동참하는 데도 앞장서고 싶습니다.”
아버지로서 미국에 진출한 아들에게 바라는 점이 궁금해졌다. 그간 아마추어와 한국 프로야구 리그에서 성실히 선수생활을 이어온 아들이기에 “여태까지 해온 만큼 건강하게 경기에 뛰어 달라”는 게 류씨의 절실한 바람이었다.
“현진이가 여태까지 정말 잘해왔으니까 한국에서처럼 편하게 즐기면서, 아프지 않고 선수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야구는 야구잖아요. 미국 야구 역시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 무대와 다를 게 없다는 자신감과 배짱으로 미국에서도 류현진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려나갔으면 좋겠어요.“(Queen 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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