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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 '글쓰는 판사’의 인생 견문록
문유석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 '글쓰는 판사’의 인생 견문록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08.26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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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사람들에게 법원은 두렵고 생경한 장소다. 하지만 매일같이 법원을 드나드는 판사들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장막에 가려져 먼 나라 이야기로만 느껴졌던 법원의 이야기가 최근 인천지방법원 문유석 부장판사에 의해 공개됐다. 법 적용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같은 고민을 하는 판사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이용관

“앞으로도 법정에서 벌어지는 많은 이야기들을 소설이나 에세이, 시나리오 등의 형식으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며 ‘글 쓰는 판사’로 살아가고 싶어요”

 
문유석 판사가 쓴 <판사유감>을 보면 외부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성된 글과는 거리가 멀다. 판사들끼리 자신의 경험에 대해 수다를 떨듯이 솔직한 생각과 느낌을 적은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어서 형식적이고 건조하기보다는 내밀하면서도 감성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판사의 글이라고 해서 판사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 내부에서도 부끄러워하는 자화상 또한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법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판사도 기계가 아닌 인간이다

‘판사유감’은 중의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판사 역시 법정에서 느끼는 것이 있다는 의미이지만 판사에 대한 유감 즉, 국민들의 아쉬움이나 불만을 의미하는 숨은 뜻도 있다. 문유석 판사는 책을 통해 판사들의 인간적인 고민, 그리고 판사를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에 관한 속내를 털어놓기 위해 ‘판사유감’이라는 제목을 택했다고 말했다.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달리 판사들 역시 재판하면서 법정에서 느끼는 것이 참 많습니다. 판사에게도 인간적인 느낌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고, 판사에 대한 국민들의 아쉬움이나 불만에 대해 판사들 역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드리고자 이번 책을 썼어요. 책 속에 담긴 내용은 무거울지 모르지만 문체나 글 자체는 재밌게 쓰려고 했습니다. 책을 읽은 독자들로부터 ‘문 판사, 느낌 있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문 판사의 말대로 책의 주제가 가볍지만은 않다. 주로 언론을 통해 접했던 판결문에 얽힌 뒷이야기를 그의 의견과 감정을 담아 쓴 것이기 때문이다. 그중 대표적인 화두가 바로 양형 문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부 중범죄에 대한 이른바 ‘솜방망이 처벌’을 두고 국민들의 여론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엄벌주의로 일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현재 과도기에 놓여 있는 만큼 조금 더 지켜봐 달라”고 언급했다.

“사실 형을 정하는 양형의 문제에는 원칙과 예외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칙은 무조건 엄벌주의로 일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는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합니다. 꼭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비교적 형이 강한 미국의 사례와 비교하는데, 우리가 따라야 할 선진국은 미국이 아니에요. 형이 강하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불행한 사회를 의미합니다. 미국은 흑백 갈등이나 총기 소유 허용 등으로 강력 범죄가 많아 중형 주의를 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형벌은 필요 최소한대로 받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성범죄나 살인죄, 화이트칼라 범죄 등 몇몇 분야 있어서는 기존 관행인 양형이 국민감정과 괴리된 측면이 있어 2010년 4월에 유기징역 상한을 30년으로 대폭 확대했죠. 그러니까 변화의 과도기에 있어서 지금은 지켜봐 주시는 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국민감정에 의해 엄벌주의와 중형주의를 쉽게 택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판사들이 갖는 오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는 판사에 대해 ‘캄캄한 암실 속에서 무엇인가를 헤쳐 다니며 찾는 직업’이라고 비유했다. 부정확한 인간의 기억과 쉽게 왜곡되는 증인의 증언, 그리고 부족한 물적 증거만을 가지고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재판에서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 두려움이 나이가 들수록 가장 힘들다”고 고백했다.

“판사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건 오판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기억과 증언, 그리고 증거를 가지고 근본적으로 판단력과 기억력이 부족한 인간(판사)이 재판을 하는 겁니다. 국민들의 생각처럼 판사들의 구형이 엄하고 세지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근원적인 두려움에 있죠. 실제로 ‘무죄 프로젝트(Innocent Project)’라는 것이 있는데,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의 DNA를 판별해 보니 상당수가 판결이 맞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던 사례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재판 제도는 어떻게 보면 한계가 뚜렷한 제도입니다. 최선을 다해 오판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죠.”

국민들의 바람대로 법원은 변화하고 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하지 않다는 의혹을 제기한 대표적인 말이다.

민주화 이후부터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는 문 판사는 “단언컨대, 재판을 하면서 부당 압력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법치주의를 흔드는 전관예우나 청탁 등 법 테두리를 벗어난 요인들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적이 없다는 고백이었다.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과거의 일을 함부로 말하기는 어려워요. 다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제가 1997년부터 판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개인적으로 재판을 하면서 부당한 압력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저나 동료 판사들 역시 높은 법원 출신 변호사라고 해서 부당하게 대우해준 적도 없다고 자신합니다. 실제로 많은 판사들이 요즘에는 전관예우는커녕 ‘전관 푸대접’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판사를 했던 변호사들조차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 편승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부끄러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판사에 대한 나쁜 오해나 편견에 묻어가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변호사나 사무장, 브로커들이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겠죠.”

그는 최근 법원의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과거 서류 중심 재판에서 구술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법정 중심 재판으로의 변화가 대표적인 예다. 과거 경제 성장 일변도에 있던 시기에는 많은 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서류 위주로 재판을 준비했다. 때문에 재판까지 5분도 걸리지 않는 일이 적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토론 중심의 재판을 통해 사건에 대해 충분히 경청한 후 신중하게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 법정에 한 번 오시면 굉장히 놀라실 거예요. 마치 토론회에 온 것처럼 토론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하니까요. 이것을 구술주의라고 하는데, 형사와 민사 재판에서 공히 대폭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양보다 질적으로 충분한 이야기를 듣고 개별적인 만족까지도 추구하는 질 높은 재판을 위해 변화하는 법정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직은 출발 단계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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