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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 개그의 귀환-개그콘서트와 무한도전, 속 시원하게 웃긴다
풍자 개그의 귀환-개그콘서트와 무한도전, 속 시원하게 웃긴다
  • 이윤지 기자
  • 승인 2014.08.28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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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 개그의 귀환

 
암울한 현실, 대중의 마음은 얼어붙고 웃을 일이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 TV에서는 풍자와 비판 기능이 되살아나고 있다. MBC <무한도전>과 KBS <개그콘서트> 등 국민 예능 프로그램이 ‘단순하지 않은 웃음’으로 사랑받고 있다. 무의미한 박장대소가 아닌, 다시 생각할수록 가려웠던 곳이 시원해지고 답답했던 마음을 어루만지는 웃음이다.

취재 이윤지 기자 | 사진 KBS·MBC 제공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국민 정서가 불안해져 가는 가운데 예능 프로그램들은 속속 녹화를 취소했다. 3사 예능 방송들은 결방 소식을 전해 왔고, 녹화를 위해 모였던 제작진과 출연진들은 진행을 중단하는 일도 벌어졌다. 진도 세월호 사건이 본격적으로 보도되던 당시 약속됐던 녹화일에 모였다가 해산한 <무한도전>의 제작진은 “촬영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며 “녹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3사 이외에도 케이블 채널까지 이 같은 물결은 이어졌다. 국민들 역시 TV 예능의 침묵에 공감하며 조용한 애도를 표했고, 다시 돌아온 예능 프로그램들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대체로 가볍고 분명 변함없는 큰 재미를 선사하되 절묘하게 지금의 웃지 못 할 세태를 영리하게 짚고 있다.

개그 프로그램 속 뉴스와 청문회

 
특히 <개그콘서트>가 본격적으로 ‘정치 풍자’에 나섰다. 이름부터 직설적인 ‘우리동네 청문회’는 대기업의 과장 광고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청문회 형식으로 다룬다. ‘진상’ 고객의 언행, 핑계로 일관하는 이른바 ‘검증 대상자’, ‘깐깐한 질문자’로 구성된 포맷 안에서 누구 하나에 치중하지 않은 채 현실을 그대로 이야기해 재미를 더한다.
비틀스의 ‘렛잇비’ 멜로디에 맞춰 “첫 월급날이죠. 적금 펀드에 연금까지 들었죠. 차곡차곡 열심히 모아 내 집 장만할 거야”라고 노래하다 “이대로만 계속 모으면 60년. 내 집 장만하면 내 나이 92”라고 노래한 코너 ‘렛잇비’는 신선한 반전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이렇게 근사한 휴대폰 대리점 차리신 것 참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속여 가면서 장사하시면 안 되죠. 요새 허위 광고들 너무 많습니다. 모두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거 맞습니까? 속였잖아요. ‘따라 오라’ 해서 따라갔는데 집 못 들어가고 경찰서 들어갔잖아요.”
“그것은 기계의 문제라기보다는…”
-KBS <개그콘서트> ‘우리동네 청문회’ 중에서

 
질문마다 시종 거짓말을 일삼거나 얼버무리는 검증 대상자와 억지에 가까운 이야기를 펼치며 대상자를 비난하는 질문자 모두가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끌어와 웃음으로 승화시킨 것 이상의 깊은 여운이 남게 된다. 조치를 요청하고 언쟁을 일으키는 과정은 마냥 웃기만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인한 이 같은 사건들은 실상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요인들이기 때문. 애초에 불안한 사회를 사는 서민으로서의 괴로움은 한 판 재미있는 쇼에서 마무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은 방송 중 직접적으로 대통령을 언급하는 과감함을 선보였다.

“이러한 문제로 국민들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박근혜 대동령은 과연! 조카 은지원한테 용돈을 줄까요?”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LTE 뉴스’ 중에서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뉴스 코너에서는 강성범이 앵커로 분해 뉴스를 전한다. 특히 최근국무총리 후보자의 망언을 비롯한 크고 작은 해프닝들을 주제로 삼아 화제를 일으켰다.
강성범은 “국무 총리 문창극 씨는 망언으로 시끄럽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이라고 운을 떼 시청자들을 긴장하게 했다. “조카 은지원 씨한테 용돈을 주는지 궁금하다”고 마무리 지으며 폭소를 자아냈다. 이 코너는 또한 사교육비를 많이 쓸수록 학생들은 명문대를 가고 명문대를 간 학생들은 대기업에 가는, 사교육에 좌지우지되는 대한민국 교육은 산으로 간다고 말하며 우리 교육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정치권력의 행보, 가여운 생명들이 죽어간 안타깝고도 어처구니없는 세월호 사건, 암울한 시간들이 개그 프로그램의 시사적 요소를 통해 거듭나니 논의는 더 활발해졌다. 그간 멈춰있었던 우리의 비판의식, 각종 참사에 대한 통찰은 이렇게 툭 터지는 웃음을 매개로 쉬운 연결고리를 찾았다. 정통 시사, 보도 프로그램에서 다루기 힘든 민감한 표현과 주제가 다시 풍자를 통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것.

2014 지방선거에 도전한 ‘무한도전’

 
<무한도전>은 언제나처럼 새로운 방식의 ‘도전’을 시도해 2014년 지방선거를 더 뜨겁게 달궜다. ‘현실과 예능을 절묘하게 접목시킨다’는 풍자의 속뜻이 가장 잘 반영된 예가 아닌가 한다. 선거 독려, 그 이상의 효과와 ‘시사적 재미’를 선사했다.
참사 이후 장기 결방했던 예능국의 분위기를 총대 메고 깨며 나타난 무한, 도전! 출연자들은 애도를 표하는 진실된 인사로 오랜만에 인사를 했고 프로그램의 리더를 뽑는다는 취지로 ‘선택 2014’, 선거 패러디로 새 시작을 알렸다.
세월호 사건의 충격이 곧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6·4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을 높이겠다고 선언했고, 3주간 ‘선택 2014’는 <무한도전>의 재기발랄한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진행됐다. 시뮬레이션 정도인 것 같던 시작은 운동원까지 동원돼 유세가 펼쳐지는 현장을 담았고 급기야 <100분 토론>의 자리를 만들었다.
얼토당토 않은 출연자들의 캠페인은 빠져서는 안 될 개그 포인트였다. 제작진이 출연자들을 속여, 출연자들이 규정을 어기고 불법을 자행하는 모습까지 빠짐없이 담았다. ‘딴 주머니를 차지 않겠다’, ‘시청자가 부모다’ 같은 선거 슬로건 역시 황당한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재래시장에서 ‘먹방’을 찍는 정준하가 무엇을 패러디하고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뻔했다. “상대 후보를 떨어뜨리려고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하는 박명수 역시 그렇다. 철새처럼 여기저기 기웃대며 지지하다 당일 운동하는 불법을 자행하는 모습은 이 프로그램의 진짜 의도를 제대로 알려줬다.
그간 수없이 치렀던 선거판에서, 우리는 이 같은 행태를 눈살 찌푸리며 봐야 했다. 이 뻔한 구조가 전부 패러디되면서 시청자들은 과거를 심각하게 상기했고 46만 명이 참여한 ‘무한도전 선거’는 이미 성공이었다. <무한도전>의 여러 도전 중 영화 <워낭소리>를 패러디한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국회의사당 앞을 지나며 ‘소들아 일 좀 해라’고 외치는 박명수와 정형돈의 얼굴. 이 결과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한국PD연합회가 시상하는 ‘이달의 PD상’까지 수상했다.

‘비비 꼬며’ 활약했던 그 시절의 풍자

1980년부터 개그 프로그램은 ‘풍자 코미디’라는 이름으로 정치와 정치인을 소재로 삼아 큰 바람을 일으켜 왔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재벌 임원 회의실을 배경으로 사회 전반의 상황을 꼬집는 내용), ‘네로 25시’(로마 제국의 이야기를 포맷으로 권력을 거머쥔 황제가 민심을 읽지 못하고 활개 치며 황제를 모시는 이들이 백성들의 원성을 대변해 주는 내용) 등은 지금의 어떤 프로그램들보다 신랄했고 과감했다. 대부분의 코미디는 정치 풍자로 꾸며졌고 대본은 그야말로 정치적 토론 현장을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다.

“미국에서 이번에 우리나라에 호텔용 수입 쇠고기, 양담배, 생명보험 등 시장 개방하라고 압력이 대단합니다. 우리가 우리 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 걸 사랑해 주나. 이러니까 우리 국산품 애용이 잘될 턱이 있나.”
-1988년 <유머일번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중에서

당시의 개그맨들은 방송 이튿날이면 여기저기서 회자될 만한 ‘강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이야기했고 웃기기 위한 것 이상으로 사회현상에 대한 토론의 강도를 높이며 프로그램들을 준비했다.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지금까지 심의와 제약은 더 심해졌고 이런 방식의 개그 프로그램들은 잠잠해졌다. 최근 다시금 시사 개그가 등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우리는 그때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개그의 본바탕은 국민에게 웃음을 주는 데 있다. 물론 그 웃음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에게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은 바로 풍자와 해학에서 비롯된 웃음이다. 큰 웃음을 주는 것이 예능, 개그 프로그램의 본래 역할이다. 다양한 포인트에서 웃음이 나오고 독특한 색깔이 보여질수록 시청자들은 집중한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 또한 단순한 집중만을 원하는 시대를 지나온 것 같다. 더 의미 있는 웃음을 주기 위한 본질적인 고민을 하는 도전과 콘서트의 현장을 열렬히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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