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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중심’ 미술품 감정학을 말하다
‘논란의 중심’ 미술품 감정학을 말하다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09.03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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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최병식 교수에게 듣는 미술 감정의 세계

‘천경자 미스터리’의 발단이 된 미술품 감정학

 
최근 이른바 ‘천경자 미스터리’로 불리는 천경자 화백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불거지고 있다. 위작으로 주장한 자신의 작품이 감정 결과 진품으로 판명되자 절필 선언을 한 천 화백은 그해 4월 도미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예술 발전에 기여한 30년 이상 경력의 예술가에게만 회원 자격이 주어지는 대한민국예술원을 탈퇴해 재차 천 화백에 관한 풀리지 않는 논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천경자 미스터리’의 발단이 된 미술품 감정학은 작품의 진위를 결정하는 난해하면서도 정밀한 학문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 처음으로 미술품 감정학을 한 권의 책으로 발표한 경희대 최병식 교수를 통해 미술 감정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류병문 | 장소협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 | 참고도서 미술품 감정학(동문선)

“국내 미술품 감정 체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미술품 감정학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야 합니다”

 
천경자 화백은 한국 미술계의 거두로 손꼽힐 만큼 예술성과 작품성, 대중성을 두루 갖춘 최정상의 미술가다. 하지만 1991년 4월경 국립현대미술관 ‘움직이는 미술관’에 전시된 한 점을 위작으로 판명한 천 화백은 미술관 측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항의서를 전달했다. 하지만 미술관 측은 천 화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화랑협회 감정위원 9명의 전원 일치로 천 화백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 감정위원들은 작품의 출처가 확실하고 필적과 안료 검사 결과에 따라 진품이라고 판명했다. 하지만 천 화백은 이 같은 감정 결과에 대해 “내가 낳지도 않은 자녀를 남들이 당신 자녀라고 윽박지르면 어떡하느냐”며 용인하지 않았고, 결국 천 화백의 절필 선언에까지 이른다.
결국 그해 4월 16일 천 화백은 미국으로 향했고, 미술계에서는 저작인격권 등에 기인한 작가의 생각을 존중해야 하는 입장과, 미술품 감정은 개인의 주장이 침범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의 영역이라는 첨예한 논란이 일어났다.

미술 작품의 진위 논란 이제는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7년간의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거쳐 완성한 <미술품 감정학>은 난해하게 얽혀 있어 모호했던 미술품 감정품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리한 책이다. 국내에 ‘미술품 감정은 있지만, 미술 감정학은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 만큼, 미술품 감정학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 최병식 교수의 시도는 미술계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국내 미술품 감정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최 교수는 과거 천 화백이 제기한 위작 논란에 대해 “작가와 감정가가 함께하는 공동 감정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그런 경우 분명한 것은 작가와 감정가가 함께 감정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회적 통념상 작가의 판단을 가장 우선시할 수밖에 없잖아요. 물론, 그런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감정가들이 아무리 ‘진작이 맞다’고 하더라도 작가 의견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는 만큼, 소통에 의해서 진본을 놓고 함께 감정이 이뤄지는 과정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천 화백이 작품을 실제로 확인하지 못하시고 프린트물을 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위작이라고 주장했는지 감정위원회에서도 연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봅니다.”
진실에 가까운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감정(感情)에 매몰된 감정(鑑定)이 아닌, 전시된 자신의 작품을 위작이라고 주장한 천 화백의 판단 근거와 진작이라고 판단했던 감정가들의 소견까지 고려한 중립적인 감정이 이뤄져야 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국내 미술품 감정계가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학문적인 연구가 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동 감정과 같은 감정 방법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지만 미술품 감정의 표준 혹은 기준이 될 수 있는 학문적 연구가 선행되어야 미술품 감정 분야의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천경자 화백의 사례에도 볼 수 있듯이 국내에서의 위작 논란의 상당수는 결론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술 감정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이를테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체계화된 기준으로 더욱 객관화된 미술품 감정을 한다면 소모적인 논쟁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술품 감정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해요. 하지만 문제는 위작 자료에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에요. 아무래도 범죄 행위로 인식되기 때문에 위작과 연관된 자료를 쉽게 공개하지 않으려 하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프랑스 파리에는 위작만 모아 전시해 놓는 가짜 박물관이 있는데, 위작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고, 위작에 대한 연구도 활성화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밀도 있는 과학적 분석과 감정의 전문성 갖춰야

미술품 감정은 미술품의 진위와 가치 가격을 판단하는 일로, 크게 진위 감정과 가격 감정으로 나뉜다. 작품의 진위 감정은 위작과 진작만이 존재한다. 따라서 진작과 위작 판명이 어렵다고 판명되면 판단 유보 상태가 된다. 특히 진위 감정에 대한 소견서나 의견서는 효력을 갖지 못하여, 오로지 감정서만이 공신력을 갖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집단 감정이 다수를 이루지만, 외국에서는 개인 감정가들이 99%에 달한다. 따라서 권위를 가진 개인 감정사의 서명이 있으면 진작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유럽은 카탈로그 레조네라고 해서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정리해 놓은 책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카탈로그 레조네 제작자는 해당 작가의 감정 전문가로 활동하기도 하죠. 그만큼 외국에서는 평생 한 작가의 작품만을 연구한 개인 감정사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이죠. 하지만 국내의 경우 5~7명 정도의 집단 감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감정에 따른 책임 소재가 불명확한 측면도 있어요. 개인 감정사가 활발한 유럽의 경우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감정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러 각도에서 면밀한 감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것이 당장 해결할 문제라기보다 아직 우리나라는 미술품 감정이 초보 단계에 있기 때문에, 조금씩 변화되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국내 미술 시장의 거래량이 외국에 비해 많지 않지만,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확보한 개인 감정사들이 많이 나와야 해요.”
특히 진위 판단이 육안으로 불가능할 경우를 대비해 심도 있는 과학적 분석 방법도 활발해져야 한다. 실제로 2012년 9월 27일에는 스위스 취리히 기반의 모나리자재단에서 35년간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1913년 발견된 <아일워스 모나리자>가 루브르박물관 <모나리자>보다 10년 정도 먼저 그려진 진작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당시 많은 미술가 인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재단은 치밀한 과학적 연구 자료를 제시했다. 자외선, 발광적외선, 방사선 사진, 탄소연대측정 등의 과학적 분석법을 동원해 제작 연대, 다빈치의 흔적, 물감과 캔버스 성분을 분석한 결과 앞서 제작된 진작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물론 과학적 분석이 미술품 진위 논란의 결정적 기준이 될 수 없지만, 객관적 정보를 토대로 한 작품을 다각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국내 미술품 감정의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엑스레이 분석 등 과학적 분석을 통해 감정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 본격적으로 활용되지는 못하고 있어요. 과학적 분석은 진위를 판가름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되기 때문에 주관적 감정을 보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죠. 국내 미술품 감정 체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술품 감정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고, 또 앞서 말씀드렸던 미술품 감정학 즉,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야 합니다.”

<최병식 교수는…>
경희대 미술대학 교수이자 철학 박사인 최병식 교수는 미술 평론 박물관 및 미술관 예술경영, 미술품 감정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술품 감정 분야에서는 한국미술품감정발전위원회 부위원장, 사단법인 한국화랑협회 미술품 감정원회 운영위원 등을 지냈다.
최 교수는 <미술품 감정학>을 집필하기 위해 7년에 걸쳐 세계 10여 개국의 전문가와 관련 단체 및 기구들을 직접 방문해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했으며, 항공료와 체류비 등으로 1억원에 가까운 비용을 사비로 충당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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