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2:05 (금)
 실시간뉴스
조선 후기 ‘기술도’로 알아보는 조선시대 미술의 서양화 과정
조선 후기 ‘기술도’로 알아보는 조선시대 미술의 서양화 과정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9.04 15: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술 인문학

조선 후기 서양 과학과 미술 사이의 상호 영향력을 알아보는 ‘조선 후기 기술도’에 대한 강의가 6월 27일 겸재 정선 미술관에서 열렸다. 이번 강의는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맡아 조선 미술의 서양화 과정을 양식사적, 문화사적 맥락에서 살펴보았다.

글 이선용(독문학박사·문화칼럼니스트 sunny658@hanmail.net)

과학과 미술은 서양에서 16~17세기에 서로 영향을 주며 발전했고 중국과 일본에 먼저 소개된 이후 중국을 통해 조선에도 서양풍의 과학 ‘기술도(감상용이 아닌 기술과 지침을 담은 실용적인 그림)’가 소개되었다.

서양 과학의 중국, 일본, 한국의 전파 과정

▲ 정약용 <기중도설-녹로1>
중국에는 한(漢)대에 비단길을 통해 지중해의 문물이 소개되었고, 명(明) 말과 청(淸)대에 예수회의 신부가 중국에 서학을 전파하면서 서양의 과학문물이 전해졌다. 중국에는 2세기부터 ‘예기도식’이라는 기술도가 있었고, 송(宋)대에는 활이나 농작물을 경작하는 방법에 대한 기술도가 있었지만, 당대 중국의 기술도는 실용성보다는 왕의 치세를 칭송하는 서적으로, 과학적 측면보다 사후 기록물의 성격이 강했다. 중국의 서광계(徐光啓)는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와 함께 유클리드 기하원본을 번역하였고 세계 지도를 편찬했으며, 강희대제는 그들의 과학 연구에 많은 후원을 하였다. 한편, 일본은 중국과 조선이 유교적인 영향으로 서양 과학의 실용적 중요성을 뒤늦게 받아들인데 반해, 사무라이들이 적극적으로 서양 문물의 실용성을 받아들였다. 조선의 실학자들은 중국으로부터 기술서적을 수입하였다. 건륭 황제 때의 <사고전서(四庫全書)>의 일부가 정조 때 수입되기도 했는데, 이미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과학 서적이 유포되는 것을 꺼려 차단시키는 바람에 전권이 수입되지 못했다고 한다. 정약용의 <거중기전도>, <지구도설>등이 중국의 과학 서적을 보고 저술된 기술서적들이다.

조선 후기의 서양 과학과 미술의 만남

▲ 김홍도 <주부자시의도>
조선 후기에는 서양의 과학과 문물 도입 과정에서 지도, 천문지리서, 의서, 병서, 종교서, 농서, 기기도설 등 실용서를 도해(圖解)한 회화가 다수 등장했다.
정약용은 화성을 축조하는데 실제 기계 및 축성 방법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고, 서유거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는 땅, 농사, 정원에 대한 저서로, 중국의 <기기도설> 등이 한 권을 쓰기 위해 무려 893권의 도서를 참고했다고 밝혀 이들의 학문적 깊이를 가늠하게 한다. 김홍도의 풍속화에서 기술도의 면모를 찾는다면, 그가 주자(朱子)의 시를 그림으로 표현한 <주부자시의도(朱夫子詩意圖)> 중 수입한 농서를 보고 그린 디딜방아를, <풍속화첩(風俗畵帖)에선 대장장이의 모습을 들 수 있다. 윤두서의 <선차도(旋車圖)>는 윤두서가 재미로 그렸다는 첨부 설명이 그림에 있는 것을 보더라도 그 당시 기술에 대한 선비들의 의식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다. 최한기(崔漢綺)는 <기기도설>을 참고로 인문학적 측면을 더 강조한 <심기도설(心器圖說>)을, 안경에도 관심을 보여 <원경설(遠鏡說)>을 저술했다.

<조선 왕실의 의례 기록물,  의궤>
기술도는 감상용이 아닌 기술과 지침을 담은 실용적인 그림을 말한다. 프랑스가 약탈해 간 후 오랜 투쟁 끝에 되찾아 온 우리의 문화유산 ‘의궤’ 역시 기술도의 측면에서 연구될 수 있다. 의궤는 왕의 행차 시 모든 과정에 그림을 덧붙여 제작한 역사 기록물로, 그 과정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된 사항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약용의 탐독 도서 <원서기기도설(遠西奇器圖說)>
책의 제목에서부터 먼 서양에서 온 기이한 기계를 그림으로 풀어 설명한 책이라는 <원서기기도설>은 정약용이 수원 화성 축조에 참여할 때 그가 탐독했던 도서로, 예수회 신부 소속의 독일인 요한 슈렉(Johann Schreck)과 중국학자 등옥함이 저술했다. 어떻게 물을 끌어올리며, 무거운 물건을 옮기려면 어떤 장치를 사용할 것인가를 그림과 함께 설명하는데 서양 기술도와 동양 기술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후 기록물인 동양의 기술도에 비해 서양의 기술도는 사전 지침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강의 및 자료제공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주요 저서로는 <조선 후기의 기술도>, <근현대 한국미술과 동양 개념> 등 다수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