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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방’에서 만난 영화평론가 이동진
‘빨간 책방’에서 만난 영화평론가 이동진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09.04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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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어주고 책을 들려주는 남자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와 예술 분야가 다양해졌다. 한 가지로 규정하기 힘들고, 때로는 여러 갈래로 해석해야 하는 평론가들은 자기만의 기준을 토대로 소신을 밝힌다. 따라서 문화와 예술을 즐기는 대중에게 평론가는 오피니언 리더 내지는 큐레이터일 수밖에 없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영화 속에 숨겨진 메시지들을 읽어내고 감독의 의도를 대신 분석해냄으로써 영화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인물이다. 차분하고 신중한 목소리 속에 칼날 같은 냉철함과 자신의 전문 분야를 좋아하는 ‘순수한 열정’을 지닌 이동진을 얼마 전 오픈한 ‘빨간 책방’ 카페에서 마주했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이용관

“거창한 목표보다는 하고 있는 잡다한 일들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의미가 있도록 성실히 하고 싶을 뿐입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요즘 3층으로 이뤄진 ‘이동진의 빨간 책방’ 카페로 출근을 한다. 카페 3층 한편에 그만의 사무실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팟캐스트 등으로 대중과 만나는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영화평론가이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낯선 시선에는 익숙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카페 손님들이 오가는 장소에 사무실을 들여놓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가 일을 하는 사무실이 카페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이곳만의 풍경이 되기 때문이다. 고차원적인 사고를 요하는 일의 특성상 불편함이 클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사실 어느 정도 각오한 부분이 있어요. 새로운 일을 할 때는 장단점을 따져 보게 되는데, 플러스적인 요소가 마이너스보다 많으면 그 일을 하는 건 맞는 거죠. 물론 불편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상하고 각오했던 것보다 오시는 분들이 예의가 바르셔서 저에게 함부로 하시지 않아요. 예의 바르게 사인을 요청하시고 최대한 제 일에 방해 안 되게끔 도움을 주시죠. 그렇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수준의 불편함 정도라고 말씀 드릴 수 있겠네요.”

새로운 카페 트렌드를 담다

 
합정동에 문을 연 이동진의 빨간 책방 카페는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과 달리 이동진이 운영자는 아니다. 카페는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에서 운영하고 이동진은 카페 안의 문화 콘텐츠를 직접 챙기고 있다. 그러니까 그의 역할은 카페가 추구하는 전체적인 북 카페 이미지에 그만의 콘텐츠를 더하는 것이다.
“제가 카페의 운영자는 아니에요. 물론 카페를 열기 전부터 완성되기까지 전 과정에 직접 참여했지만 카페의 사장은 아닙니다. 저는 카페의 문화 콘텐츠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죠.”
그가 운영하는 팟캐스트의 이름을 카페 이름으로 사용한 만큼, 그는 카페를 꾸미는 일에 상당 부분 관여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음악 선곡이었다. 매일 다르게 순환되어 카페 안에서 흐르는 60곡을 그가 직접 고르고 있다. 카페에서 나오는 음악을 유심히 들어 보면 그의 음악 취향도 살짝 엿볼 수 있다. 
“빨간 책방 카페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책하고 음악입니다. 카페 음악은 제가 직접 선곡하고 있어요. 하루 60곡 정도인데, 선곡 리스트를 매일 바꾸고 있죠. 그런 면에서 음악은 카페에 오시는 분들을 고려하는 측면도 있지만, 개인적인 취향과도 관련이 깊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그래서 음악을 고르는 일 또한 중요해요.”
팟캐스트를 통해 ‘책 들려주는 남자’답게 카페 속 책 콘텐츠를 챙기는 비중은 더 크다. 이곳을 운영하는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의 ‘리퍼브 도서’ 즉, 재고 도서를 판매하는 섹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의 주관적인 선택과 판단에 의해 정해지는 콘텐츠가 대부분이다. 상업적인 용도로 세워진 카페이지만 자본과 인기에 휘둘리지 않는 평론가로서의 원칙은 벗어나지 않으려 한 것이다.
“카페 곳곳에 마련된 신간 도서, 빨간 책방 스테디셀러, 이달의 빨간 책방, 추천 도서 등 네 가지 정도의 항목을 직접 맡아 챙기고 있습니다. 이곳의 경영 주체인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와는 전혀 관련 없이 제 선택과 판단에 의해 결정됩니다. 매 항목마다 영화에 대한 20자평처럼 제가 어떤 책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직접 쓰고 있기도 하죠.”
그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작은 전시 공간도 마련돼 있다. 그의 3층 사무실 앞에 위치한 유리상자로 된 작은 전시 공간에는 고양이 관련 수집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소장품을 주제에 따라 전시하는 공간이 있어요. 2~3주 만에 한 번씩 전시 주제를 바꾸고 있는데, 두 번째 전시로 고양이와 관련된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죠. 제가 영화와 관련된 여행들을 많이 다녀서 그곳에서 사온 것들, 그리고 평소 좋아해서 수집했던 것들을 앞으로 작은 전시 공간 안에 담을 계획입니다.”
영화적인 요소 또한 빼놓지 않았다. 3층 한쪽 벽면에 마련된 이동진이 뽑은 베스트5를 통해 장르별 베스트5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그가 설명하는 카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카페를 이루는 핵심 요소는 인테리어나 외관이 아닌, ‘이동진식 콘텐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쪽 벽면을 가리키며) 저기 보시면 이동진이 뽑은 베스트5라고 해서 제가 주관적으로 뽑아놓은 영화들이 있어요. 이번에는 ‘슈퍼히어로 베스트5’를 선정해 놓았죠. 영화뿐만 아니라 비틀즈의 명반을 소개하는 코너도 있고요.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제목만을 나열하는 방식은 아니에요. 작품 밑에 보시면 제가 직접 작성한 선정 이유를 써놓았으니까요.”

빨간 안경테에 숨겨진 의미

이동진 하면, 보통 빨간 안경테가 떠오른다. 방송 등 대외적인 활동에서 빨간 안경테를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느 순간 빨간 안경테가 그를 상징하는 물건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빨간 안경테에 대한 애착이나 편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누구나 선망하는 신문사 자리를 박차고 프리랜서 활동에 도전했던, 복잡하던 그 당시 심경과 ‘잘해 보자’는 결기가 빨간 안경테 속에 숨어 있었다.
“사실 빨간 안경테에 큰 의미는 없어요. 제가 빨간색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으니까요. 지금 쓰고 있는 안경테는 2006년경에 산 것이죠. 그 당시에 사직서를 내고 직장을 그만두려 했는데, 그 과정이 원만하지는 않았죠. 한창 마음이 복잡한 상황에서 안경테가 부러져 동네 안경 가게에 갔는데 이 안경테가 있었어요. 이것을 써 봤는데 의외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불현듯 ‘내가 무슨 빨간색이야’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러자 다른 한편에서 ‘직장까지 그만뒀는데 뭐가 겁나서 그 안경을 못 쓰겠는가’라는 오기가 들었어요. 그 이후로도 쭉 빨간 안경테를 쓰고 다닌 건 프리랜서로서 일종의 결기 같은 것이었죠.”
놀라운 건 쉽게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것만 같은 그 역시 빨간 안경을 떠올리며 일종의 자기 최면을 걸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거나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면 수줍음을 잘 탄다는 그는 빨간 안경을 통해 프리랜서로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의지를 다시 곧추세운다고 했다.
“저는 막 스포트라이트를 받거나 누군가가 저를 쳐다보면 수줍어하는 타입이에요. 그럴 때마다 이 빨간 안경을 생각해요. 세상 속에 저 혼자의 이름과 얼굴, 노력으로 살아가는 단 한 명의 프리랜서로서 ‘움츠러들지 말자’는 다짐 같은 게 그 안에 담겨 있죠. 그렇게 일이 전개되어서 팟캐스트를 시작했을 때 ‘빨간 책방’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고, 그게 이번 카페로도 연결이 된 것이죠. 의도치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일이 커진 셈이에요."

책 들려주는 남자가 독서하는 방식

 
그가 소개하는 영화나 책들은 대부분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 모은다. 평론가로서 그에 대한 부담감이나 두려움은 없었을까.
“물론 그런 부담감이나 두려움이 있지만, 그 일을 20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면 이미 다른 밥벌이를 선택했을 겁니다. 세상 모든 일이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잖아요. 평론가라는 직업은 그 정도의 부담과 두려움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는 영화와 책 등을 개인의 기호와 관계없이 무조건 봐야 한다고 말한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강추’든 ‘비추’든 간에 비평해야 할 대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라디오와 팟캐스트 등 최근 들어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그가 부족한 시간을 쪼개 책과 영화를 보는 방식이 궁금해졌다.
“사실 저는 시간을 쪼개서 활용하는 방법을 잘 몰라요. 더구나 책을 빨리 읽는 편도 아니고 책 읽는 요령을 갖고 있지도 않죠. 하지만 하나의 일을 오래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권태를 느끼지 않아야 하는데, 그 방법만큼은 아는 것 같습니다. 책을 방만하게 읽어서 소위 말하는 목적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냥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하나의 책을 15페이지 정도 읽다가 다른 책으로 넘어가 50페이지를 읽고, 책장에 넣어놓고 또 다른 책을 보는 식이죠. 이렇게 비효율적인 독서법을 쓰는 것은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는 부담감이 오히려 책을 못 읽게 만드는 주요인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이 책, 저 책을 집적대면서 보는 게 책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것은 저만의 독서법이라 무조건 옳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자기만의 영화를 즐기는 방식이 있듯, 자신에게 맞는 독서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죠.”
외모나 말투에서 풍기는 이미지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워 보이고, 원칙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의 프로필에는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라고 적혀 있다. 바로 그것이 그의 인생관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기자 생활을 벗어던지고 영화평론가의 삶을 선택했을 때부터 그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만큼, 그저 매일 성실하게 사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신념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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