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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상' 속 주인공을 말하다-주선희 인상학 박사
영화 '관상' 속 주인공을 말하다-주선희 인상학 박사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4.09.06 2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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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읽어주는 여자 주선희 인상학 박사

 
사람의 얼굴만 봐도 훗날 그 사람의 인생을 훤히 들여다본다는 ‘관상학’을 주제로 한국 영화계에 또 한 번 지각변동을 일으킨 영화 <관상>. 기존의 영화와는 달리 상영 내내 배우들의 얼굴이 자주 클로즈업되는데 그때마다 세밀하게 달라지는 얼굴을 비교해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캐스팅부터 심혈을 기울였다는 한재림 감독. 우리나라 제1호 인상학 박사인 주선희 교수가 말하는 영화 <관상> 속 주인공들의 모습을 살펴봤다.

취재 도수라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머리는 하늘이니 높고 둥글어야 하고 해와 달은 눈이니 맑고 빛나야 하며, 이마와 코는 산악이니 보기 좋게 솟아야 하고, 나무와 풀은 머리카락과 수염이니 맑고 수려해야 한다. 이렇듯 사람의 얼굴에는 자연의 이치 그대로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 담겨져 있으니 그 자체로 우주이다. -<관상> 내경의 대사 中

사람의 생긴 모습, 눈빛, 입술 모양 등 잠깐의 시간으로도 성격과 운명, 미래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이 ‘관상’이다. 관상이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는 신라시대라 전해지는데 그 이후 활발하게 유행하며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혹자는 이를 ‘좋지 않은 것이라’ 보기도 하는데 주선희 교수는 “관상학이야말로 모든 학문의 근간이 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현대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BC460~BC377)는 관상학을 의술에 적용했는데 몸의 건강 상태가 얼굴 등 신체에 나타나며, 신체 형태에 따라 질병이 따라온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깨달았던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관상을 믿고 영향을 받으니 이보다 오래도록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온 학문도 드물 것이다.
최근에는 기업 면접 등에서도 신입사원을 뽑을 때 관상을 본다고 할 정도다. 아마도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관상학과 같은 근간을 이루는 학문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본다.
영화는 ‘사람의 운명은 얼굴 생김새에 따라 정해져 있다’고 전제해 흥미롭게 전개된다. 얼굴 한 번만 보면 심연의 모습까지 꿰뚫는다는 천재 관상가 내경(송광호)은 첩첩산중에 처남 팽헌(조정석)과 아들 진형(이종석)과 칩거하고 있다. 관상 보는 기생 연홍(김혜수)은 그들을 찾아내 한양으로 데려오고 내경의 솜씨를 전해들은 김종서(백윤식)는 그를 궁으로 들인다. 수양대군(이정재)의 역모 계획을 알게 된 내경은 어린 임금을 지키고 조선의 운명을 바꾸고자 한다.

세상이 변하면 관상도 변하기 마련이다

영화에서 조선 최고의 관상가로 나오는 내경은 결국 아들 진형을 살리지 못했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저작에 주저앉아 미친 사람처럼 한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의 눈은 영화 내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뚫어보던 눈이 아니었다. 그렇게 말리고 말렸건만, 결국에는 팔자대로 가고 마는 아들의 죽음 앞에 무너져 내린다.
만약 진형이 과거길에 오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주 교수는 그 결과는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진형이가 만약 아버지의 말을 들었다면 죽지 않았을 거예요. 그의 모습을 보면 총명한 머리와 뛰어난 글재주를 타고난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끝이 뾰족한 피자 턱으로 유독 약해 보이죠. 반면 이마는 둥그스름하게 생겨 좋아요. 진형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이마에 비해 턱이 약하면서 목에 복숭아씨가 톡 튀어나와 있죠. 이는 머리가 좋고 과거운은 있어도 만년(晩年)이 좋지 않아 지구력이 떨어지고, 뱃심이 약합니다. 맷집이 좋지 못하다고도 하죠.”
결국에는 진형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되어버린 내경의 처남 팽헌은 영화 속에서도 남의 말을 잘 듣고 매사 긍정적인 캐릭터로 비쳐진다. 산골에서 진형, 내경과 살 때도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청했는데 한양에 내려와서도 그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내경의 명성이 점차 높아지자 그는 덩달아 흥이 난다. 이렇듯 내경과 진형을 끔찍이도 아끼지만 결국 그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팽헌이다.
 
“팽헌은 얼굴이 통통하고 동글동글해서 서비스나 영업직에 잘 맞아요. 환경의 변화에도 쉽게 적응하는 성격이고요. 하지만 리더로서는 적합하지 않으며 얼굴 가득 장난기가 가득해 오랜 기간 인내하며 한 가지 일을 해내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대신 사람과 잘 어울리고 사람들이 잘 다가오기도 하는 상이죠.”
이 둘의 정신적 지주인 내경은 앞선 두 사람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우선 얼굴이 전반적으로 둥글넓적하고 눈빛은 또 깊어 안 보이던 것까지 잘 보는 눈으로 심연을 꿰뚫어볼 수 있다. 눈썹이 너무 올라가 있지도 않고 입도 큰 편이며 얼굴이 넙대대한데, 이는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쯤에서 나타나는 인물이 연홍이다. 앞선 세 남자와 달리 얼굴이 선명하고, 목소리가 곱다. 연홍이 처음 내경을 만나러 갈 때에도 연홍은 셋을 마치 자신의 손안에 넣고자 하는 듯이 보였다.
 
“연홍은 욕심이 있는 여자예요. 한양에서 고관대작들이 드나드는, 관상 봐주기로 유명한 기생집을 운영하고 있는 안주인다운 상을 하고 있죠. 갈색의 큰 눈동자에 피부가 희고 입술이 빨간데, 이런 여인들은 대부분 표현이 풍부해 로비스트로서는 적격입니다. 하지만 가끔씩 스치는 그이의 어두운 낯빛이 안타깝기도 하죠.”

얼굴이 바뀌면 관상도 바뀐다

 
영화 속에서 역심을 품은 이정재의 이마에 붉은 점을 찍어 상을 바꾸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에는 반란을 막지 못했지만 주 교수는 그들이 누군가의 관상을 바꾸려고 했던 것처럼 실제로도 관상은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의 얼굴, 성격, 분위기까지도 모두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번 관상이 영원히 가는 것은 아니다.
이어 주 교수는 김종서 역에 열연했던 백윤식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김종서는 역적을 도모하는 수양대군을 견제하기 위해 관상가 내경을 궁으로 불러들이는 조선 최고의 권력자다. 어린 단종을 보위하고 왕권의 정통성을 지키려는 올바른 선비이자 무장이기도 한 김종서는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는 수양대군에 팽팽하게 맞서면서도 절대 기선을 제압당하지 않는 당당함과 기품, 그리고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이다.
“얼굴이 갸름하니 본래 문관의 얼굴인데 수염을 풍부하게 해 무관으로 분장을 잘 했어요. 수염이 없으면 영 문관이었을 텐데(웃음). 그의 두터운 코에 수염을 풍부하게 만들어서 문무를 겸비한 사람으로 연출해냈어요. 보기 어색하지 않게 무관인 김종서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죠.”
 
반면 수양대군은 김종서와는 정반대다. 단명한 문종의 동생으로, 어린 조카 단종을 없애고 권력 찬탈로 조선의 새 왕이 되고자 한다. 힘과 능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왕으로 책봉되지 못한 데 자격지심을 안고 산 인물이다. 둘을 두고 영화에서는 김종서를 호랑이, 수양대군을 늑대에 비유했는데 인물의 생김새도 마치 그들을 닮은 듯 날카롭고 매섭다.
주 교수는 “수양대군을 맡은 배우 이정재는 맞춤 캐릭터였다”며 “수양대군에 그를 캐스팅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별다른 분장 없이도 수양을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을 만한 인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얼굴에 살이 없으면서 뼈가 강하고 눈은 보더라도 정시하지 않고 옆으로 흘깃한다.
그리고 눈이 전체적으로 내려왔는데 이는 숨어서라도 인내하면서 원하는 것을 취하고자 하는 성격을 드러낸다.
 
영화 <관상>은 단순히 조선 최고 관상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천재 관상가가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관상이라는 큰 기둥을 중심으로 시대를 뒤흔든 역사적인 사건과 역사의 광풍 속으로 뛰어든 어느 한 사람의 기구한 운명, 그리고 뜨거운 부성애를 여실히 보여줬다.
영화 속 주인공의 얼굴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을 마친 주 교수 또한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욕망까지 하나의 거대한 스토리가 담겨 있는 영화였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며 한동안 그들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
영화의 끝은 비극이었다. 하지만 이 비극은 이미 애당초 결정된 일이었다. 아들의 관상을 본 이후 내경이 깊은 산으로 들어왔던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다른 이의 생김새, 얼굴 모습 등을 보고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요. 그런데 관상이라는 것이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더라고요. 자주 웃으면 행복한 얼굴로, 자주 인상을 쓰면 들어오는 행복도 돌려보내는 것이죠. 결론적으로 관상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말이에요. 내경이 마지막에 했던 말처럼요. ‘나는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봤을 뿐 바람은 보지 못했다. 파도를 일으키는 건 바람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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