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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본 '사랑과 음악'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본 '사랑과 음악'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9.23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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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그래픽과 화려한 스펙터클로 북적거리는 여름 극장가에서 사람과 사랑이 주인공인 영화가 개봉했다. 악한 인물도, 비관적인 세계관도, 냉소주의도 없는 무공해 청정에너지의 영화다. 영화 속에 흐르는 로맨틱한 음악은 현실의 상처를 치유할 만큼 아름답다. 영화 속 사랑과 음악에 관한 이야기.

글 이시종 기자 | 사진 판시네마 제공

 
<비긴 어게인>은 영화 <원스>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아일랜드 감독 존 카니의 신작이다. 신드롬과도 같던 <원스>의 흥행 이후 감독 존 카니는 어떠한 고민을 했을까. <비긴 어게인>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그 해답이다.
음악 영화만 하는 감독이 되기는 싫겠지만 그렇다고 잘하는 것을 굳이 안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이 영화는 음악을 활용해 만든 제법 괜찮은 드라마다. 음악을 통한 '루저 갱생 드라마'라는 점에서 두 영화는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남녀 주인공이 이루는 구도도 토박이 대 이주자, 연인에게 버림받은 미혼자 대 결혼생활에 상처가 있는 기혼자로 비슷하다. 언뜻 <원스>에 상업적 요소를 좀 더 가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따라서 <원스>만큼의 기대치로 극장에 들어선다면 초반 20~30분간은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지점을 참아낸다면 <원스> 못지않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일상의 평범함도 진주처럼 변하게 하는 것이 음악

 
할리우드로 건너가 귤화위지(橘化爲枳)의 위기에 몰린 영화를 살리는 것은 결국 음악이었다. '너와 내가 함께 음악을 한다'는 점이 <원스>의 연장선이기 하지만 이런 조합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영화 속 댄(마크 러팔로)의 대사처럼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평범함도 갑자기 아름답게 빛나는 진주처럼 변하게 하는 것이 음악'이란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영화는 유명 인디 음악 제작자였던 댄(마크 러팔로)과 록스타가 된 남자 친구(애덤 리바인)에게 차인 무명 작곡가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자기가 차린 음반사에서 해고된 날, 댄은 고주망태인 채 들른 바에서 그레타의 노래를 듣고 그에게 음반 제작을 제안한다. 아내와 이혼한 뒤 딸에게도 무시당하는 댄은 그레타와 뉴욕의 거리를 스튜디오 삼아 음반을 만들어 가며 자신감을 얻기 시작한다. 실연당한 무명의 싱어송라이터가 한물 간 알코올중독자 프로듀서를 만나 음반을 만든다는 뻔한 스토리인 듯하지만 영화는 묘하게도 진부하게 전락하지 않을 정도의 품격을 유지해 나간다.
무엇보다 그레타와 댄 사이의 존경과 매혹으로 얽힌 음악적 관계가 인상적이다. 센트럴파크,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옆, 차이나타운 등 뉴욕 곳곳의 현장음을 반영한 합주 장면은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다.
싱어송라이터 그레타 역의 키이라 나이틀리는 '카디건스'의 보컬 니나 페르손을 연상시킬 정도로 개성적인 음색을 선보였다. 처음 영화에 출연한 '마룬5'의 애덤 리바인의 연기도 의외로 자연스럽다. '뉴 래디컬스'의 리더이던 그렉 알렉산더가 작곡한 노래들은 감성적 순간을 만들어내며 서사에 기여한다.
<원스>에서처럼 노래를 통한 마법과도 같은 순간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드라마가 매혹적 공간과 유기적으로 어우러진다. <비긴 어게인>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영화다. 이 행복이 가짜 위안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영화가 신뢰하는 음악의 진정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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