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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5일의 기록 & 어록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5일의 기록 & 어록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09.24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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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특집

1.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5일의 기록 

약자와 소외된 자를 위한 낮은 행보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한 이후 처음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찾았다. 교황은 방한 전부터 간소한 준비를 강조했을 만큼 평신도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종교를 불문하고 상당수의 국민들은 진정한 종교 지도자다운 태도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세월호 참사로 갈등과 불신의 벽이 견고해진 때에 교황은 위로와 화해의 메시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전 세계인들이 주목한 교황의 4박 5일 방한 일정 중 주요 행사를 스케치해 봤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서울신문, 류병문 | 자료제공 교황 방한준비위원회

#1. 이탈리아에서 출발한 전세기가 도착하다
8월 14일 10시 15분경 서울공항을 통해 환영단 앞에 도착한 이탈리아 국적 전세기인 알리탈리아 비행기의 문이 열렸다.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와 최종현 외교부 의전장이 기내로 올라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았다. 짧은 인사를 나눈 교황은 트랩을 내려와 한국 땅을 밟았다.
30여 년 만에 찾은 교황의 방한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교황의 방한을 몇 차례 요청한 바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국빈 방문답게 계단 아래까지 걸어와 교황에게 인사를 건넸다. 교황과 박 대통령은 정제천 신부의 통역으로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이후 교황은 환영단 구성원을 한 명씩 소개받고, 차례로 인사를 나눠 눈길을 끌었다. 특히 밝은 표정으로 신도들과 인사를 나누던 교황은 환영단에 포함돼 있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소개받자, 왼손을 가슴에 얹고 어두운 표정으로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말로 유가족을 위로했다.
교황의 바람대로 조촐한 환영 행사를 마친 후, 대형 세단의 방탄차가  아닌 준중형차를 타고 청와대로 이동했다. 교황은 방한이 결정된 후 "방탄차 대신 가장 작은 한국산 차를 타고 싶다"는 뜻을 교황 방한준비 위원회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2. 역사적인 광화문 시복 미사를 집전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 5일간의 방한 일정 중 총 4번의 미사를 공개적으로 주례했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8월 16일 광화문에서 거행된 시복 미사에 쏠렸다. 국내 천주교 신도는 물론, 교황을 보기 위 해 방문한 사람들로 백만 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 대형 행사였다. 새벽 4시부터 미사 참석자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버스와 기차를 타고 도착한 천주교 신자들은 줄을 지어 입장을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교황의 안전을 고려해 신분 확인과 보안 검색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고층 빌딩에는 번호를 매겨 혹시 모를 위험에 철저히 대비한 움직임도 포착할 수 있었다.
광화문을 배경으로 설치된 제대에는 높이 4.6m의 십자가가 8m 높이의 제단 위에 놓여 있었고, 제대 왼쪽에는 한복을 입은 한국 사도의 모후상이 설치돼 있었다. 특히 신자들과 눈을 맞추며 미사를 봉헌하고 싶다는 교황의 요청에 따라 높이가 낮은 제단과 제대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교황은 시복 미사에 앞서 124위 시복자 가운데 가장 많은 27위가 탄생한 서소문성지를 찾았다. 1천여 명 신자들의 환대를 받으며 서소문성지 현양탑 앞에 선 교황은 헌화한 뒤, 고개 숙여 1분간 기도를 올렸다. 이후 광화문으로 향한 교황은 서울시청 광장에서 오픈카로 갈아탄 뒤 카퍼레이드 행사를 통해 신자들과 만났다. 시종일관 환한 미소로 신자들을 향해 십자성호를 그으며 축복하는 것은 물론, 이동하는 도중 갓난아이를 발견하면 차를 멈추고 직접 안수기도를 해주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모인 장소를 지나자 차에서 내려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인사를 건넸다. 세월호 사건으로 딸을 잃은 김영오 씨가 건네는 편지를 수행원에 주지 않고 자신의 주머니에 직접 넣기 도 했다. 한편, 세월호 유가족인 이호진 씨는 8월 17일 아침 주한 교황 대사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호진 씨는 25 년 만에 처음으로 교황에게 직접 세례를 받은 한국인으로 기록됐으며, 교황으로부터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3. 평화와 화해를 위한 명동성당 미사
교황 방한 일정의 마지막 날이었던 8월 18일 9시 40분경에는 명동성당 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가 진행됐다. 이날 미사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더불어 정진석·염수정 추기경, 주교단, 각계 종교 지도자는 물론, 위안부·장애인·새터민·다문화 가족 등 사회적 약자와 갈등 지역 주민들, 용산참사 피해자·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참석했다.
교황은 제의를 갖춰 입고 대성전 입구에서부터 제단까지 이동하는 입당 행렬을 했다. 맨 앞줄에 앉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자 허리를 굽혀 한 사람씩 인사를 건네며 대화를 나눴다. 이들 가운데 89세의 김복동 할머니가 교황에게 나비 모양의 배지를 건네자, 교황은 당황하지 않고 건네받은 배지를 제의에 달아 눈길을 끌었다. 이외에도 강정마을 주민, 쌍용차 해고노동자, 밀양 주민, 용산 참사 유족 등에게도 위로를 건넸다.
이날 미사는 당초 계획보다 30분 정도 짧은 1시간 30분 만에 끝이 났다. 교황방한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프란치스코 교황 자신이 긴 행렬과 거창한 예식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4.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탑승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 5일간의 모든 방한 일정을 마치고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당초 교황이 공항에 도착하는 대로 환송식을 가 질 예정이었지만 우천으로 인해 교황은 주 교황청 한국대사와 추기경, 주교단과 차례로 인사를 나눈 뒤 비행기에 바로 탑승했다. 교황은 아시아청년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끈 유흥식 주교와 방한 일정 내내 곁에 서 통역을 담당한 정제천 신부에게도 감사의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2. 프란치스코 교황, 그는 누구인가? 

가난하고 소외된 자의 친구

 
권위를 버리고 낮은 곳으로 향하는 소탈한 행보가 방한 내내 화제가 된 프란치스코 교황. 이번 방한 기간 내내 교황은 시민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잡아주는 것은 물론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연일 위로하고, 장애인들을 만나는 등 낮을 곳을 찾는 소탈한 행보가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누구이고, 그의 리더십의 비결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취재 이시종 기자 | 사진 서울신문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8일 한국을 떠났다. 4박 5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가 남기고 간 울림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정견의 차이, 종교의 차이를 떠나 온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 짧은 일정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들은 그의 진실한 말에서 깊은 위로를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유의 '리더십'으로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프란치스코 효과(effect)'란 말이 나올 정도이다. 신자는 물론 비신자 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1282년 만의 비유럽 출신·첫 예수회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본명은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다. 1936년 아르헨티 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가정의 회계사 아버지와 다섯 아이를 낳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지만 종교적 소명에 따라 1958년 예수회에 입회해 1969년 서품을 받았다.
이후 예수회의 아르헨티나 관구장으로 일했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좌주교와 부교구장, 대주교로 임명받았다. 이듬해에는 대교구장에 취임하고 2001년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2013년 2월 11일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직을 사임한 뒤 소집된 콘클라베(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선거회)에서 2013년 3월 13일 카톨릭교회의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그는 1282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 출신 교황이며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 됐다. 공식 교황명인 프란치스코는 청빈, 겸손, 소박함의 대명사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따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 결연한 의지에 따라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는 목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평생을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살아온 프란치스코 성인을 교황 명으로 따르기란 꽤나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비로소 그 청빈한 성인의 이름을 택한 것은 매우 상징적 의미의 사건으로 평가된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부조리와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하는 '이 시대를 위한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완벽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서민 교황'이자 '정의로운 교황'의 모습으로 세계인들의 머 릿속에 각인되고 있다.

권위와 격식 버린 가톨릭교회 위해 노력

 
교황 프란치스코가 불과 약 1년 반 동안 이룩한 업적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 최대 업적은 '권위와 격식을 버린 가톨릭교회'다. 교황은 빈자의 교회, 행동하는 교회, 포용하는 교회의 가치를 다시 세웠다. 교황 자신도 노숙자·병자·난민·미혼모 등에게 가리지 않고 다가갔다. 심지어 동성애자에 대해 "내가 뭔데 심판하겠는가"라고 하고, 무신론자에 대해선 "양심에 따라 살면 된다"고 말해 교단 보수 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교황은 신도와 일반인에게는 더없이 인자하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하지만, 교회의 관료주의와 형식주의에 대해서는 혹독할 정도로 비판적이다. 교황이 이른바 '이미지 정치'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받는 이유다.
교황은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 출신 추기경들을 대거 새로 임명했으며, 국무원장 교체 등 교황청 대규모 인사를 단행해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 정·재계는 물론 바티칸과도 뿌리 깊은 인연이 있는 마피아를 향해 공개적으로 파문하기까지 했다. 이같은 교황의 파격 행보는 전임 베네딕토 16세는 물론, 지금까지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도 하지 못 했던 것들이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리더십에 주목하면서 "그의 리더십 스타일을 세속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배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특히 문제가 많은 거대 조직의 책임자 자리를 넘겨받은 사람이라면 '교황 리더십'을 눈여겨보라고 했다.
교황 리더십의 첫 번째 특징은 소박함이다. 교황은 즉위 직후부터 전임자들이 신었던 명품 브랜드 프라다의 붉은색 구두 대신 평소대로 검은색 구두를 착용하고 있으며, 교황궁 대신 바티칸 내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내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서류가방을 직접 들고 다니며, 자동차 역시 전임 베네딕토 16세가 타던 메르세데스 벤츠 대신 포드사의 중형차 포커스를 탄다.
FT는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이같은 행동들이 일반 대중들의 신뢰를 얻는 데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지도자의 소박함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다.
FT에 따르면, 미국 국민들이 1970년 말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사건 등으로 깊은 회의주의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의 소박한 리더십은 오히려 역효과를 냈고, 후임자인 로널드 레이건에게 쏠리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보와 반응을 볼 때 교황이 제2의 카터가 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FT는 덧붙였다.
두 번째는 신속하고도 대담한 과오 인정이다. 교황은 연설에서 "교회가 딱딱한 공식의 죄수가 돼 버렸고, 과거에 매달려 새로운 문제에는 답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하곤 한다. 교황은 이처럼 교회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출발의 명분과 힘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FT는 평가했다.
세 번째는 겉치레를 버리고 조직의 세부 사항에 집중하는 점이다. 첫 번째 '소박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지도 하지만, 교황은 겉치레를 과감히 타파하고 조직을 꼼꼼히 챙기며 장악하는 리더십을 보여 주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난 1년 반이 일종의 '허니문 기간'이었다면, 본격적인 도전은 이제부터이다. 교회 개혁 과제가 아직도 산더미인 데다가, 가톨릭 사제 성추행 스캔들에 대해 보다 과감히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여성, 피임, 낙태, 동성애 역시 교황이 앞으로 풀어내야 할 난제들로 꼽힌다.

3.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전한 메시지

"분열의 간격을 메우고 모든 상처가 치유되길"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 5일 방한 기간 동안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에서부터 청와대 및 외교부 관계자는 물론, 세월호 유가족과 쌍용차 해고 노동자까지 이념을 넘어선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방한 기간 동안 한국 국민들에게 남긴 교황의 특별한 메시지들을 모아 봤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서울신문 | 자료제공 교황 방한준비위원회

교황은 방한 기간 동안 종교적 메시지에 국한되지 않은 많은 어록을 남겼다. 정치 지도자에게는 "진보와 발전은 궁극적으로 사람 중심"이라 는 메시지를 전했고, 청년들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사랑하라"며 이타적인 삶의 방향을 추구할 것을 조언했다. 특히 공식적인 만남의 자리를 계획하지 않았지만 공항에 마중나온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나자 손을 잡고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며 심심한 위로의 메시지를 건넸다. 교황은 사회 갈등 해소, 인본주의적 사랑의 가치, 통일의 희망, 미래 세대의 가능성 등 종교와 이념을 뛰어넘은 메시지로 한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방한 기간 동안 교황이 남긴 어록들

 
지혜롭고 위대한 민족은 선조들의 전통을 소중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젊은이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저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평화라는 선물의 필요성을 성찰하는 것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4일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공직자, 외교단을 만난 청와대 공식 행사에서)

경험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점점 더 세계화되는 세상에서 공동선과 진보와 발전을 단순히 경제적 개념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람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 합니다."
(14일 청와대 연설문 중)

가난한 자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가난한 자를 잊으면 안 됩니다. 교회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 가난한 자를 잊는 경향이 있습니다."
(14일 한국 주교들과 만난 자리에서)

희망은 외적으로는 부유해도 내적으로 쓰라린 고통과 허무를 겪는 사회 속에서 암처럼 자라나는 절망의 정신에 대한 해독제입니다… 오늘날 우리 곁에 있는 젊은이들이 기쁨과 확신을 찾고, 결코 희망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15일 성조 승천 대축일 강론 중)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삼종기도 중 세 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애도하며)

한 가족이 둘로 나뉜 건 큰 고통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하나라는 아름다운 희망이 있습니 다. 그 중에서도 북에 있는 형제와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이 희망의 첫 번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15일 제6차 아시아청년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박지선 씨가 남북의 분단 현실에 관해 묻자)

오늘은 모든 한국인에게 큰 기쁨의 날입니다. 순교자들의 유산은 선의를 지닌 모든 형제자매들이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 서로 화합하여 일하도록 영감(靈感)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와 온 세계에서 평화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16일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미사 강론 중)

봉헌 생활에서 청빈은 '방벽'이자 '어머니'입니다. 봉헌 생활을 지켜주기에 '방벽'이고, 성장하도록 돕고 올바른 길로 이끌기에 '어머니'입니다. 청빈 서원을 하지만 부자로 살아가는 봉헌된 사람들의 위선이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해칩니다."
(16일 한국 수도 공동체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감하고 진지하게 수용하는 자세로, 상대방에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 수 없다면 진정한 대화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의식하고 다른 이와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대화의 출발점이라 하겠습니다. …우리의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과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17일 충남 서산 해미읍성에서 아시아 주교들과 만난 자리에서)

8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떠났지만, 한국에는 그가 남긴 행적과 어록들은 긴 여운을 남겼다. 교황이 신도들에게 설파한 메시지는 종교계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이 되었으며, 교황의 행보는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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