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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옥인동 박노수 가옥 이야기
종로구 옥인동 박노수 가옥 이야기
  • 이윤지 기자
  • 승인 2014.10.09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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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 생가 탐방 1

도심 속 박노수 화백의 작업실을 만나다

▲ 박노수 가옥 미술관 전경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있는 박노수 가옥은 최근 복원된 수성동 계곡과 통인시장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얼마 전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이 집은 남정 박노수 화백이 평생 작업해 온 화업과 40여 년간을 거주하며 가꿔 온 정원, 골동품 등 작품 1천여 점을 종로구에 기증해 꾸며졌다.

취재 이윤지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 전통 가옥으로서의 의미를 함께 담고 있는 박노수 미술관에 대한 안내
▲ 박노수 미술관 개관 기념석
박노수 가옥은 1937년경 건축가 박길룡이 지은 집으로, 서울시문화재자료 1호이기도 하다. 조선 말기 관료이자 친일파 윤덕영이 그의 딸을 위해 마련했다고도 전해지는 이 집은 벽돌 몸체와 지붕기와, 서양식 창 등으로 한국식과 서양식이 절충된 건축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절충식이라고 하지만 주로 한식으로 지어진 주택으로 1층은 온돌과 마루로 돼 있고, 2층은 마루방 구조이다. 총 3개의 벽난로가 있고 현관은 포치를 설치해 아늑한 느낌을 주며 벽돌을 사용해 포치의 벽을 꾸며놓았다. 지붕은 서까래를 노출한 단순 박공지붕으로 돼 있어 장식적인 요소와 단순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70여 년간의 긴 세월동안 풍파를 겪으며 증축, 수리를 거쳤고 남정 박노수 화백이 소유해 2011년 말까지 거주했다. 박노수 화백 소유 이후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자료로 지정돼 보존하고 있다.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박노수 가옥의 집에 들어서면 아담한 정원과 빨간색 2층 벽돌이 눈에 띈다. 정원에는 엄나무와 향나무, 살구나무, 매화나무 등 각종 나무들과 여러 개의 수석들, 석등 등이 정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박노수 화백의 작품 ‘사색의 순간’에 담긴 백모란의 실제 모습도 볼 수 있다. 박노수 미술관은 서울시 제1종 미술관으로, 박노수 화백의 작품을 비롯한 컬렉션 총 1천여 점(작품 500점, 수석 379점, 고가구 및 애장품 115점)을 볼 수 있는 예술품의 보고다. 종로구는 박 화백이 오랫동안 살던 집에 이들 작품을 들여놓아 아름다운 미술관을 만들었고 미술관 소장품을 활용한 전시와 다양한 연계 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 1층 응접실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함께 화가 개인의 기억이 깃든 이 장소는 그 예술적 의미를 넓게 확장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 집 안으로 들어가면 홍송으로 만든 마룻바닥과 노란 장판이 박 화백이 지냈던 공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아치형 포치가 설치되어 있는 출입구를 지나면 응접실이 나타난다.
1층에는 응접실과 거실, 안방, 식당과 부엌이 있고 2층에는 화실 겸 서재와 공부방, 다락방, 지하 1층에는 방이 2개 있다. 1층은 적벽돌, 2층은 회벽에 수성페인트를 칠했고, 지붕은 기와를 얹은 데다 2층에 발코니가 달려 있다.
1층 전시관에서는 강가에서의 사색을 표현한 작품 ‘고사’, ‘수변’, ‘강변’을 볼 수 있다. “동양의 산수화는 자연의 재현이 아니고, 무한히 생동하는 작가의 세계를 희구하는 것이며 작가는 그림 속 산수에서 노닐고자 한다”는 생전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 1층 전시실
화선지에 수묵담채로 그린 ‘고사’는 거의 투명하게 처리한 강가를 기준으로 따뜻한 색감의 주변 풍광이 조화롭다. 특히 작품 ‘고사 1’은, 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둔덕의 은은한 황금빛이 인상적이다. 고사와 수변, 강변의 화면 위쪽으로 뻗은 나뭇가지의 빛깔은 모두 선명한 푸른빛이다. 사람은 가운데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는데, 작은 점 같은 얼굴에 표정이 없지만 어쩐지 내다보는 먼 방향으로 함께 고개를 돌리게 되고 유유히 떠 있는 긴 배 한 척은 편안한 여유로움을 가져다준다.
오른쪽으로 완만하게 깎인 언덕과 언덕 위의 빨간 지붕 집이 인상적인 ‘고사 2’는 가운데에 곧은 나무를 배치해 배와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고 있어 독특하다. 이외 연작과는 달리 사람이 강에 뜬 배를 등지고 오른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으며, 푸른빛으로 칠한 나뭇가지들도 오른쪽으로 늘어져 있다. ‘고사’ 연작, ‘강변’과 ‘강’ 연작 등 수변을 그린 연작들에서 그 구도의 변화폭을 크게 주지 않은 박 화백에게 이 그림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대체적으로 이 연작들은 멀리 바라보고 느리게 생각하는 사색, 산책을 표현하기 위해 인물의 시선을 먼 곳에 두도록 하고, 배에 올라 있거나 바라보는 쪽에 띄워놓아 일상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고사 2’는 다소 선명한 대비를 써서 배와 인물을 서로 등지게 두고 인물이 강을 바라보지 않고 있어 남다르다. ‘세마도’의 경우 밝은 연둣빛의 언덕이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다른 작품과 비교할 때, 조금 작은 판형에 세로로 뺀 구도와 봄을 맞은 듯 한껏 투명한 산수가 오랫동안 마음을 사로잡는다.

▲ 박노수 화백의 인물 드로잉
1층 안쪽 복도 벽에는 박 화백의 인물 드로잉 작품이 걸린 작은 액자들을 볼 수 있다. 세월이 깃든 나무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한다. 아담한 다락방과 화실 겸 서재로 썼던 방, 침실이 있다. 이 공간은 박 화백의 독특한 산수화가 펼쳐져 있는 전시 공간이 됐다. 아담한 베란다와 서양식 벽난로도 보인다.
박노수 화백의 막내딸이자 이 미술관의 학예사인 박이선 씨는 “햇빛이 쏟아지는 이곳의 창문을 열어 정원을 내려다보며 화탁에 서서 그림을 그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평생에 걸친 산수화 작업은 산을 사랑해 가까이 두고자 했던 작가의 마음과 닿아 있다”고 소개했다.
수목이 우거진 한국화 속으로 사람이 빨려 들어가는 장면인 1980년 작 ‘류하’에는 파란 버드나무 밑으로 이제 막 그림 속에 들어온 듯한 소년이 서 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소년의 발걸음을 따라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이곳에 걸려 있는 그의 산수화는 산을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꾸며 강렬하게 표현한 반면 주변은 담백하게 색을 입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 박 화백은 전통적인 소재를 취하면서도 간결한 운필과 강렬한 색감, 대담한 터치로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했다.

▲ 박노수 화백의 모습이 담긴 사진
1927년 충남 연기에서 태어나 1940년 청전 이상범의 문하에 들어간 박 화백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후 근원 김용준, 월전 장우성을 사사했다. 1953년 대한민국 국무총리상, 1955년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한편 대한민국 예술원상, 5·16민족상, 3·1문화상, 대한민국 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1956년부터 7년간 이화여대에서, 1962년부터 20년 동안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한 박 화백은 1982년 교수직에서 물러나 전업 작가의 삶을 선언했다. 그 뒤 ‘달과 소년’, ‘고사’, ‘월화취적’ 등 그를 대표하는 수많은 대작을 완성했다. 도쿄, 스웨덴, 미국 등 다수의 국제전과 10여 차례 국내외 개인전을 가졌으며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회원으로 선정됐다.
전통적인 화제를 취하면서도 간결한 운필과 강렬한 색감, 대담한 터치 등의 독자적인 신화풍을 구축해 전통 속에서 현대적 미감을 구현한 작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1년 사회 화원에 뜻을 품고 종로구와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 설립을 위한 기증 협약을 맺었다.

▲ 박노수 미술관 정원
▲ 박노수 화백이 만든 정원석
“형태가 아름다운 정원석이나 수석을 많이 취하여 주변 정원수와 조화를 이루어지게끔 조원했다. 이는 동양의 사상 때문이라 하겠으며 대자연의 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조원자(造園者)는 무릉도원이나 봉래선경에서 노닐고자 한다. 이는 아름다운 낙원을 동경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또 사람이 보다 사람답게 살자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박노수 화백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정원’의 의미에 관해 이와 같이 밝혔다. 집 주변에 심은 대나무, 감나무, 배롱나무, 단풍나무, 목련, 두충나무, 백일홍, 모란, 작약 등의 갖가지 식물, 화가가 직접 수집해 정원 곳곳에 배치한 각양각색의 정원석과 수석, 석등, 석상, 향로석 해태상 등은 그의 ‘낙원’에 대한 표현을 증명한다. 집 앞의 정원은 박 화백의 정갈하면서도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철학과 미감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직접 제작한 정원석은 단순하면서도 안정적인 구조가 인상적이다.

▲ 미술관 뒤쪽 돌계단
▲ 뒤뜰 계단으로 올라가 바라본 박노수 미술관의 모습
집 뒤뜰로 난 계단을 따라 동산으로 올라가면 선비의 상징인 대나무가 군데군데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작은 벤치가 놓여 있어 아래를 내다보며 사색을 할 수 있다. 자연을 동경했던 화백은 그의 이상향을 화폭에서 뿐 아니라 살던 공간 곳곳에서도 추구해 온 것이다. 현대식 미술관과는 다른 차원의 감상을 가져다주는 박노수 미술관은 화백의 뛰어난 작품들을 그의 생활이 녹아 있는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박 화백의 작품처럼 쪽빛이 물드는 광경을 보며 아담한 정원길을 산책할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앞으로 종로구는 박노수 미술관과 함께 주변 ‘윤동주 문학관’, 겸재정선의 장동팔경첩 중 ‘수성동’ 그림의 배경이 된 수성동 계곡, 한옥마을, 골목, 공방과 갤러리 등을 연계한 프로그램들을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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