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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둘레길-법정사에서 돈내코계곡까지 동백길 9km
한라산 둘레길-법정사에서 돈내코계곡까지 동백길 9km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4.10.12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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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 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신비의 숲 

▲ 한라 생태 숲과 제주축산진흥원 목장 지대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들을 볼 수 있다
한라산은 150㎢가 넘는 넓은 면적임에도 불구하고 6개 구간 정규 탐방로의 총길이가 39.2㎞밖에 되지 않는다. 제주시와 산림청은 2014년까지 한라산 허리를 도는 80㎞의 둘레길을 조성할 계획인데, 지난 4월 말 제1구간인 동백길이 개방되었다. 올레길이 제주 해안선을 따라 골목골목을 이은 친숙하고 정다운 길인 반면, 한라산 둘레길은 좀처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원시의 숲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글/사진·안병식 제주주재기자(월간 마운틴)

민족의 아픈 역사가 새겨진 길

▲ 1100도로에서 서귀포자연휴양림을 지나면 나타나는 ‘한라산 둘레길’이정표. 여기서 2.2km 더 가면 둘레길 입구인 법정사가 나온다
 
한라산 둘레길로 가는 1100도로. 숲이 우거진 도로를 따라 40여분 정도 달려 서귀포자연휴양림을 지나니 ‘한라산 둘레길’이라고 쓰여 있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거기에서 다시 2.2km 더 가면 둘레길 입구인 법정사가 나온다. 넓은 주차공간이 있어 차를 주차하기에 불편함은 없다.
둘레길을 걷기 전 마지막 화장실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길 중간에는 화장실과 매점이 없기 때문에 출발하기 전 물과 약간의 간식 등 모든 준비를 미리 해두어야 한다.
법정사에서 100m 정도의 아스팔트 길을 지나니 오른쪽으로 전망대와 쉼터가 있다. 전망대에서는 서귀포 앞바다에 홀로 외로이 서있는 범섬이 보인다. 전망대를 지나면 무오법정사항일운동기념탑이 나타난다.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은 1919년 3.1 운동보다 5개월 먼저인 1918년(무오년) 10월에 일어난 제주도내 최초 최대의 항일 운동이자 1910년대 종교계가 일으킨 전국 최대 규모의 항일 운동이다. 무려 700여명이 집단으로 무장하여 조직적으로 일본에 항거했다니, 그 규모가 과연 놀랍다. 기념탑 옆의 울창한 소나무 거목들은 그 뜨거운 항일의 현장을 지켜봤을지, 노송은 아무 말이 없다.
출발 장소인 법정사에서 약 3km를 걸으면 숯가마터가 나타나고 곧이어 시오름 주둔소가 나타난다. 이곳은 4.3 당시 한라산에 남아있는 무장대에 대한 방어와 효율적인 토벌을 하기 위해 1950년 초 만들어졌다. 1954년 무장대의 토벌이 완료될 때까지 한라산 밀림지대와 중산간 마을의 주요지점에는 이와 같은 주둔소가 25개나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제주도의 산과 바다, 마을에는 이렇게 제주 역사의 아픈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내 발자국 소리도 낯선 무인지경

▲ 한라산 둘레길 1구간 동백길을 걷는 사람들. 짙은 숲 그늘이 드리운 자연 그대로의 길이 이어진다
▲ 동백길이란 이름처럼 동백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지난다
숲속으로 접어드니 고요하고 신비로운 기운으로 가득했다. 내 발자국 소리만이 태곳적 고요를 깨는 듯했다. 여기 숲길은 다른 곳과는 달리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닌 돌과 흙, 나뭇잎들을 그대로 밟으며 자연의 숨결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길이다. 이 길은 ‘동백길’이라 불린다. 숲길을 걷다보면 이름만큼이나 동백나무들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봄에 가면 흐드러지게 떨어져있는 붉은 동백꽃을 볼 수 있으리라.
길을 걷다보니 계곡이 여러 번 나타난다. 제주도의 계곡은 대부분 물이 없는 건천이지만 비가 많이 오는 여름철에는 계곡물이 갑자기 불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길을 관리하고 있는 제주도에서는 비가 오는 날과 비가 온 후 2일 까지는 이 길을 통제한다. 비가 오거나 아침이슬과 습기에 젖어있는 바위들은 미끄러워서 계곡을 지날 때 특히 주의해야 하고 가급적이면 전문 트레킹화를 신는 것이 좋다.
시오름 주둔소를 지나니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곳이 나타난다. 제주에서는 참나무를 말려 그늘진 울창한 숲속에 세워놓고 표고버섯을 재배한다. 표고버섯 재배지 입구에는 표고버섯 무인 판매대가 있는데, ‘표고버섯을 가지고 간 후 입금을 하거나 나무상자로 만들어진 저금통에 직접 돈을 넣어 달라’는 ‘산골소년’의 글이 적혀 있다. 제주의 착한 신들이 산책할 법한 무인지경의 길을 걸은 후 나타난 가게다운 판매방식이 아닐 수 없다.
조금 더 걸어서 시오름 입구에 도착하면 길을 선택해야 한다. 시오름으로 내려오면 1115번 산록도로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곳을 지나는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에 출발한 곳으로 돌아가려면 조금 번거롭다.
▲ 한라산 둘레길 1구간 동백길에서 볼 수 있는 삼나무 숲. 오랜 시간 사람의 발길이 닿질 않아 원시성이 그대로 살아있다
▲ 동백길을 걷는 동안 볼 수 있는 다양한 식물들
시오름 입구에서 돈내코 방향으로 약 500m정도만 더 가면 울창한 삼나무 숲길이 나타난다. 삼나무는 제주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제주의 나무다. 하지만 이 숲의 삼나무는 오랜 세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을 형성하며 서 있었다. 수십 년 외로이 비바람과 싸우며 의연하게 서 있었을 삼나무의 기개와 아름답고 신비로운 숲속 풍경들이 마치 꿈속에 있는 듯한 환상을 느끼게 만들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이 숲속 풍경들을 나 혼자만의 가슴에 숨기고 싶은 이기적인 욕심을 가득 품고 왔던 길로 발길을 돌렸다.

사람의 동네로 조금 더 내려온 친절한 길

▲ 송이라고 불리는 제주 화산돌이 깔린 사려니 숲길은 경사가 거의 없어 누구나 간편한 차림으로 걸을 수 있다
‘동백길’에서 다 걷지 못한 아쉬움을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사려니 숲길에서 채워보는 건 어떨까.
‘동백길’을 나와 차를 타고 산록도로를 따라 40분 정도 이동하면 사려니 숲길에 도착할 수 있다. 사려니 숲길은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로에서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의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한남리의 사려니 오름까지 이어지는 총 15km의 숲길이다.
한라산 둘레길 역시 이곳 사려니 숲길로 이어진다. 해발고도 500~600m에 위치하고 있는 사려니 숲길은 완만한 평탄지형으로 ‘동백길’과는 달리 송이(제주도의 화산돌)로 포장되어 있어서 누구나 간편한 차림으로 쉽게 걸을 수 있다.
숲길을 걷다보면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과 노루들이 뛰노는 풍경들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또한 이 지역은 날씨의 변화가 심한 곳이지만 맑은 날, 비가 오늘 날, 안개가 끼어 있는 날, 눈이 내리는 날 모두 그 나름대로의 신비롭고 다양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다시 되돌아오는 길, 5.16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한라산 둘레길이 이어질 한라 생태 숲과 제주축산진흥원 목장 지대가 보인다. 초록의 숲과 목장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의 여유로운 모습에서 비로소 휴식이 주는 편안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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