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9:10 (토)
 실시간뉴스
오랜 역사의 화음악기, 생황(笙簧)
오랜 역사의 화음악기, 생황(笙簧)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10.13 11: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악기, 우리소리

글 이선용(문화칼럼니스트sunny658@hanmail.net)

'생황', 이 악기 이름을 들었을 때 '아! 그 악기!'라는 대답을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우리 국악에 대한 상당한 관심과 사랑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생황이 천년의 역사를 지녔으며, 세종문화회관 정면 벽의 부조 형태 ‘비천상(飛天像)’에서 천녀(天女)가 부는 악기라면 금방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또한 오대산 상원사 동종에 생황 부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 악기라고 설명하면 바로 이해가 갈지도 모른다.
 
풍속도에 비친 생황의 연주 모습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의 그림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한 악기인 생황, 그 모습이 개성이 넘쳐서인지 그림을 보면 바로 생황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김홍도의 풍속화 <송하취생도>,<월하취생도>는 소나무 아래, 달빛 아래에서 생황을 혼자 불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신윤복의 <연당의 여인>에서는 여인이 연꽃을 바라보면서 생황을 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생황은 생김새가 만물이 솟구치는 형상을 닮아 ‘봄을 상징하는 악기’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개성 넘치는 외관을 지녔다. 생황은 길이가 서로 다른 17개의 대나무 관을 울림통에 꽂아 취구에 바람을 불어 그 소리가 관을 통과하여 소리를 내는 악기다. 그러므로 조율을 할 때도 그 관을 하나하나 떼어내어 음색을 점검한다.
삼국시대부터 연주된 생황은 원칙적으로는 ‘박’(匏)을 울림통으로 사용한다. 문헌과 그림에서도 옛 선비들이 풍류악기로서 생황을 연주하는 것을 즐겼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떨어뜨리면 깨지는 박(바가지)의 단점 때문에 요즘은 ‘박’ 대신 ‘나무’로 울림통을 제작한다. 그로 인해 악기 본연의 소리는 완벽하게 복원해내지 못했음에도 요즘 생황 연주가 국악계에서 새로이 각광받고 있음은 다행이다.
생황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금엽(金葉)으로, ‘쇠청(소리가 떨면서 울리게 하는 장치)’의 역할을 한다. 조선의 영조 대에는 금엽(金葉)제조법을 배우기 위해 동지사(冬至使)의 일행으로 장악원 악사를 보내게 한 기록도 있다. 제작의 까다로움 때문인지 현재 생황은 국내에서 제작되지 못하고 중국에서 수입한다.

국악기 중 유일한 화음악기

 
생황은 하모니카처럼 들숨, 날숨에서 각각 소리를 낼 수 있으며, 여러 음을 동시에 낼 수 있기 때문에 국악기 중 유일한 화음악기다.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 초기에만 하더라도 생황은 죽관(竹管)의 수에 따라, ‘화’ ‘생’ ‘우’ 3종류가 있었는데, 조선 후기에 이르러 17개의 죽관을 쓰는 ‘생笙’ 이 보편적으로 많이 연주되었다.
이렇듯 전통적인 생황이 17개의 죽관인 데 반해 오늘날엔 음역을 확대하기 위해 37개의 관을 쓰는 현대적인 생황도 등장했다.
생황의 음색은 하늘의 소리를 연상케 하는 신비한 음색이다.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은 생황의 무궁무진한 기교적 가능성과 다면적인 성격에 매력을 느껴 ‘슈’를 작곡했다. ‘슈’는 이집트의 ‘공기의 신’을 일컫는 말로 곡명에서 곡에 대한 느낌이 전해진다.
우리나라의 생황 연주자 김효영의 연주는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향가나 옛 설화가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문헌으로도 남아 있지 않은 향가의 세계를 3,000년 역사를 지닌 우리 악기, 생황이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