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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황재복이 전하는 ‘웨딩 코칭’
디자이너 황재복이 전하는 ‘웨딩 코칭’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10.13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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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도 디자인할 수 있다

 
황재복. 그이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다. 대한민국 1%의 재벌도, 미스코리아의 화려한 드레스도, 톱스타의 웨딩드레스도 그이를 거쳐 가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그이가 최근 책을 하나 냈다. <너의 결혼을 디자인하라>(라이스메이커). 이 책은 그이가 25년간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 일하고 30년의 결혼생활을 해오며 보고 듣고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쓴 결혼 지침서다. 그이가 생각하는 행복한 결혼이란 무엇일까.

취재 이시종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황재복 디자이너는 긴 생머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유난히 검고 풍성한 긴 생머리가 그의 세련되고 열정적인 이미지와 잘 어울렸다. 그이는 여전히 열정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다. 25년간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 일해 오면서, 수많은 신부들이 그 앞에서 꽃이 됐다. 한가인·연정훈, 이승엽·이송정, 가수 김창렬 부부 등 그이의 손을 거쳐 간 스타들을 일일이 세기도 힘들다.
그이가 최근 결혼 지침서 <너의 결혼을 디자인하라>라는 책을 냈다고 연락이 왔을 때 놀라지 않았다. 그이는 ‘결혼’을 일상으로 지내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얼마 전 결혼 30주년을 맞기도 했고, 결혼 적령기의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그이는 엄마로서, 먼저 결혼한 선배로서, 그리고 현명한 신부들을 만나온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서 느껴왔던 것들을 이 책에 담았다고 했다.

이 땅의 모든 엄마와 딸들에게 보내는 편지

▲ 황재복의 '너의 결혼을 디자인하라'
“저는 스물일곱 살에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됐어요. 딸아이를 볼 때면 솔직히 그냥 제 곁에서 계속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하지만 제가 딸을 끝까지 지켜주며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죠. 어느 날 문득 엄마로서, 먼저 결혼한 선배로서, 그리고 현명한 신부들을 만나온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서 의미 있는 결혼 선물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됐어요. 고민 끝에 25년간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 일하고 30년의 결혼생활을 해오며 보고 듣고 겪은 일을 바탕으로, 딸아이가 결혼해서 사는 동안 함께해 줄 지침서를 써보기로 마음먹게 된 거죠.”
그이는 이 책을 딸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애틋한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써내려갔다.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물론, 결혼 후 배우자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많은 어려움에 부딪힌다.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 단 하나의 정답은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결혼으로 인해 생기는 수많은 일들을 처음 겪게 될 이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내가 살아 보니까 이런 방법도 있더라’라고 말해주는 일종의 조언이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아쉽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바로 엄마예요. 딸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싶은 제 마음 또한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과 같은 것이죠. 따라서 이 책은 제 딸뿐 아니라 제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수많은 사람들과 앞으로 만날 누군가의 딸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행복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 결혼을 디자인하다

▲ 사진=황재복웨딩 제공
25년간 많은 이들의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한 그이는 자신의 옷에 주술을 건다는 생각으로 디자인을 한다고 했다. 자신의 손을 거쳐 건네진 행복의 기운이 드레스를 입는 사람의 삶에 전이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래서인지 그를 두고 ‘행복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언젠가 디자이너 랄프 로렌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그는 자신이 만드는 옷에 주술을 건다는 생각을 한다고 해요. 기사를 읽으면서 그가 참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결혼이야말로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일이 자연스러워진 듯 보이는 세상에서 결혼에 대한 개념도 바뀌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행복과 안정을 찾고자 결혼을 선택해요. 그러나 결혼을 한다고 해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열정을 가지고 자신이 상상했던 삶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행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그이의 웨딩드레스에는 시간을 뛰어넘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이는 지나치게 유행에 따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순수함과 청순함을 강조한다”며 “드레스를 입었을 때 그 느낌이 배어 나오게 디자인하고, 동시에 세련돼야 한다”고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말했다.
그이는 전체적인 모양을 구상하고, 그에 맞는 원단을 고르고, 마름질하고 꿰매어 옷을 완성하듯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결혼을 디자인하여 스스로가 원하는 행복을 찾으라고 말한다. 결혼이란 단순히 한 사람의 아내와 남편이 되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며느리와 사위가 되는 일이기도 하며, 누군가의 엄마와 아빠가 되는 일이다. 결혼하기 전보다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지고, 그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속에서 갖게 되는 배려심과 책임감은 개인을 보다 성숙한 사람으로 만든다.
“결혼은 다시 한 번 성인이 되는 기회이자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것을 포기하고 남을 배려한다는 것은 쉽지 않고, 나 아닌 사람을 책임진다는 것은 버거운 일이죠. 하지만 그런 삶을 통해 느끼는 감동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벅찬 것이에요.”
그이는 ‘결혼생활=개인적인 삶의 끝’이라는 공식은 없으며, 옳지도 않다고 말했다. 기존에 해왔던 ‘개인적인 삶’이 모조리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이어져야 ‘함께하는 삶’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둘이 함께하는 것이 아무리 즐겁다 한들 아내 때문에 축구나 게임도 못 하고 남편 때문에 친구 만날 시간도 갖지 못한다면 그 부부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그이의 지론이다.
“배우자의 책임은 모든 것을 같이 해주는 게 아니라 상대의 행복을 찾아 주는 것입니다. 주말 아침에 축구를 하거나 하루에 한 시간 게임을 하는 것, 가끔은 친구를 만나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떠는 것에서 남편과 아내가 행복을 느낀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배우자의 삶에 모든 것을 맞출 필요도, 배우자를 자신의 삶에 완전히 맞출 필요도 없어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부부는 함께할 수 있어요. 토요일 밤 반바지 차림으로 동네 극장에 가서 심야 영화를 볼 수 있고, 먹고 싶은 음식이 생겼을 때 함께 나가서 사 먹을 수 있고, 갑작스레 무슨 일이 생기면 주저 없이 연락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있는 사람과 무려 같은 집에 사는 거죠. 사랑하는 사람을 넘어 동반자라는 존재로 내 곁에 있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그이가 결혼 생활에서 중요하다고 꼽는 것은 바로 ‘말’이다. 서로에게 건네는 한마디는 두 사람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흔한 속담을 알지만, 생활 속에서 입에서 나오는 말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이는 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그이의 거래처 직원에 관한 이야기다. 이 직원은 남편과 무슨 정으로 사는지 모르겠다고 습관처럼 푸념한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밥부터 한 다음 구석구석 청소를 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만 들으면 ‘좋은 남편이네’하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아내에게 한소리 들을 게 빤하니 억지로 하는 일이란다.
그이는 이 부부의 대화 패턴을 들어 보면 두 사람 모두 안으로 곪아버린 상처가 많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직장생활과 살림, 육아에 지친 아내는 항상 남편을 향해 “애는 나 혼자 낳았니? 내가 혼자 먹고 사는 거야? 대체 네가 하는 건 뭔데?”라고 몰아붙였고, 매번 듣는 아내의 원망이 지겨운 남편은 기계처럼 집안일을 끝낸 뒤 “이제 됐지? 내 할일 다했으니까 더 이상 나 건드리지 마”라는 말만 남긴 채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퇴근 후 집안일을 마치면 혼자만의 공간으로 다시 퇴근해 버리는 것이다.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도 마음속에 서운함이 남아 있으니 계속 곱지 않은 말을 하게 됐고, 그 말을 듣는 남편 또한 좋게 반응할 리가 없다.
“저는 말의 힘을 믿어요.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듣는 이의 인생이 달라진다고도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든 부족한 면을 지적하기보다는 뛰어난 점을 칭찬하려 노력하죠. A라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 솟아오르는 불만이나 분노 때문에 B라는 말을 해버리는 까닭은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상대를 해치기 위해 말을 하면 상대는 상처를 입어요. 그리고 나에게 한층 더 공격적인 말이 돌아오기 십상이죠. 결국 모두에게 상처뿐인 싸움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밖에서는 친절하면서 정작 아끼고 사랑해야 할 가족에게 유난히 무뚝뚝한 경우가 많다. 그이는 “말을 내뱉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투에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이 세상 모든 부부들의 싸움 횟수가 절반으로 뚝 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매순간 열정적이었던 30년 결혼 생활

그이는 이번 9월로 결혼 30주년을 맞았다. 30년 동안 그이는 어떤 아내였고, 어떤 엄마로 살았을지 궁금했다.
“글쎄요, 어떤 아내인지는 남편에게 물어봐야 겠네요(웃음). 개인적으로는 콜라 같은 아내이고 싶었어요. 콜라를 좋아하진 않지만 물과 다르게 톡 쏘는 아내이고 싶었어요. 물론 우리 남편은 그런 제 모습 때문에 지루할 겨를 없이 살았죠. 하지만 때로는 맹물을 먹고 싶을 때도 있었을 거예요. 물 같은 아내가 지니고 있는 장점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저는 세상 그 누구보다 친구 같은 엄마이기도 해요. 자식 입장에서 보면 능력 있는 엄마는 든든하겠죠. 그래서 독립심을 키워 주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엄마이기 이전에 인생 선배이고, 세상에서 가장 딸을 사랑하는 사람이죠.”
그이를 표현하는 많은 수식어 중에서 대표하는 키워드는 바로 ‘열정’이다. 힘이 느껴지는 거침없는 말투며 활기찬 몸짓에서도 그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 그리고 디자이너라는 자리 등 그는 어느 자리에서든 열정적인 사람이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주부라는 포지션이에요. 단지 제 직업이 디자이너일 뿐이죠.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포지션이 철저하게 달라져요. 대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았어요. 항상 열정적으로 살수 있게 도와준 가족에게 항상 고마워요. 비판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가까이에서 저를 응원해 준 든든한 남편과 딸아이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요즘 같은 시대에 30년 동안 온전하게 가정을 지켜온 제게도 대견하다고 칭찬해 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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