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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만화 속 그 맛집들이 한자리에 - ‘식객촌’
‘식객’ 만화 속 그 맛집들이 한자리에 - ‘식객촌’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10.15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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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현실이 되다

현실이 만화가 되고 만화가 다시 현실이 됐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과 4월 말 문을 연 식객촌 이야기다. 식객촌은 만화 <식객>과 연관된 맛집 중 9곳을 옛 피맛골 거리 한 자락에 모아놓은, 말 그대로 맛집 ‘촌(村)’이다. 이제껏 한국에 이렇게 만화를 소재로 한 맛집촌이 형성된 적은 없었다. 식객촌으로 떠난 미각 여행.

취재 이시종 기자 | 사진 박천국 기자

 
서울 종로구 종로 33길, 옛 피맛골 자리에 들어선 그랑서울이 미식가들의 입소문을 타며 트렌디한 음식 촌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하 7층~지상 24층 규모로 지어진 그랑서울은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피맛골의 명성에 걸맞게 다양한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특히 1층에는 만화 <식객>에 등장한 맛집이 한데 모여 있는 1층의 ‘식객촌’이 자리 잡았다. 만화에 소개된 전국 맛집 중 메뉴가 겹치지 않는 9곳을 엄선해 입점시켰다. 평소 맛집 투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야 하는 필수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거리, 피맛골

‘피맛골’은 말을 피해 다녔다는 서민을 위한 거리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대한민국 대표 골목길이다. 피맛골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가 교보생명빌딩 뒤부터 종로구 수송동 종묘공원까지를 가리킨다. 또한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수동 국일관부터 종로구 장사동 세운상가까지의 거리도 피맛골이다. 이 일대를 피맛골이라고 부르며 사이 골목길은 피맛길이라고 칭했다. 이 일대는 역사적으로 서민들을 위한 거리다. 그 이유는 ‘피맛골’이라는 명칭의 유래에서 출발한다. 피맛골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알기 위해서는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가 지은 <동명연혁고 종로구편>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종로는 광화문 등과 가까워 많은 관리가 지나가던 곳이다. 관리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을 타고 이동했다. 그런데 당시 풍습은 하관(下官)이 말을 타고 지나가다 상관(上官)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길가에 엎드리고 있어야 했다. 상관에 대한 예의를 지킨 것. 이 예절을 지켜야 하다 보니 하관들은 실제 이동하는 거리보다 엎드려 있는 시간이 더 많아 관아에 지각하는 사태가 생기고 업무가 지체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일반 서민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이러한 비효율성을 줄이기 위해 종로 큰길 뒤쪽으로 겨우 말 한 마리만 지나다닐 수 있는 거리를 만들었다. 상관을 만나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서다. 하관들은 관아로 향할 때 이 거리를 통하거나 큰 길에서 상관의 행차를 보면 말머리를 아예 이곳으로 돌렸다. 때문에 말을 피한다는 의미의 피마동(避馬洞)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결과 피마동에는 하위직 관리들과 일반 서민들이 자주 오가는 거리가 형성됐다. 이들을 상대로 한 장사가 번창하기 시작했다. 목로술집, 모주집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상점들이 생긴 골목을 피맛골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청진동에 자리 잡은 피맛골에는 서민을 위한 싸고 푸짐한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성업을 이뤘다. 조선시대에는 국밥집이 많이 들어섰고 1930년대 중반에는 종로1가에서 동대문까지 선술집이 성행했다. 청진동 해장국골목으로 유명한 SC은행(구 제일은행) 서쪽 근처는 1940~1950년대부터 해장국집들이 영업을 했다. 1960년대 초반에는 낙지요리가 성행했다. 피맛골 일대 오래된 음식점들은 100년 넘게 영업한 곳도 있으며 30~40년 된 집들이 대부분이다.
음식의 종류는 빈대떡, 막걸리, 생선구이, 해장국 등 서민들이 즐겨 찾는 먹을거리다. 이렇게 서민들
의 애환이 서린 골목길, 맛집 골목으로 더 친숙했으나 청진동 개발로 사라진 피맛골에 대한 추억을 음미할 방도가 생겼다. 바로 ‘식객촌’을 통해서다.

피맛골로 떠나는 팔도 미각 여행

▲ ‘밥차(이동 식당)’로 전국의 영화 촬영장을 누비던 ‘전주밥차.
▲ 잡곡밥과 제철재료와 지역특산물로 지은 반찬을 제공하는 무명식당.
“거친 물살을 헤치고 기어이 태생지로 돌아가는 연어처럼 우리는 귀소 본능을 가지고 최초의 맛을 찾아 헤맨다. 맛을 느끼는 것은 혀끝이 아니라 가슴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 가장 처음 나오는 말이다. 기억은 잊어도 맛은 잊지 못한다는데, 마음이 헛헛할 때 고향음식을 찾는 것도 맛으로 그리움을 달래고자 함이다. 2002년 9월 2일 일간지 일일 연재만화로 시작한 허영만의 <식객>은 이후 27권의 책으로 엮어 출간됐고, 동명 드라마와 영화로도 나왔다. 이제 실제로 그 음식점들이 한데 모여 식객촌을 이루게 됐다. 허 화백이 14년 전 머릿속으로 구상했던 <식객>이 발전을 거듭해 ‘장인의 맛’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된 것이다.
식객촌에는 <식객>에 등장한 9개의 맛집이 입점해 있다. 오픈 한 달 만에 넘쳐나는 손님 덕에 9개 음식점의 총 매출이 하루 평균 3천만원을 넘어섰다. 이곳을 한 바퀴 돌면 마치 만화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식사시간이 되자 이곳으로 인근 직장인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온다. ‘벽제한우 설렁탕·봉우리한정식·오두산 메밀가·만족오향족발·부산포어묵·무명식당·전주밥차·han6gam by참누렁소·수하동’ 등 각 음식점이 지닌 독특한 스토리는 이곳을 찾는 또 다른 묘미다.
만화 속 인물들이 실제로 걸어 다닌다. <식객> 1권 4화에 등장한 곰탕집 장석철 대표는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만화에서와 생김새가 똑같다.
장 대표는 옛 수하동 ‘하동관’의 셋째 아들로 하동관 강남 분점을 연 이후 새롭게 내는 가게 상호를 ‘수하동(秀河東)’으로 쓰고 있다. 하동관의 빼어난 부분만 따오자는 의미로 ‘빼어날 수(秀)’자를 썼다고 한다. 만화에서 빈대떡집의 사고뭉치 큰아들로 등장했던 ‘오두산 메밀가’의 이승하 대표는 실제로는 주먹질을 하지 않는다. 용인대 유도학과 출신의 다부진 체격이란 점을 바탕으로 만화의 재미를 위해 허구적 요소를 추가한 것이라고 한다.
‘밥차(이동 식당)’로 전국의 영화 촬영장을 누비던 ‘전주밥차’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건물에 식당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때 영화 프로덕션 대표였던 채수영 대표는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밥을 제대로 못 먹는 것을 보고 15년 전 현장에서 조리해 식사를 판매하는 밥차를 만들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식객촌 내의 구내식당을 자처하고 있다. 한 끼 8천800원 하는 뷔페식 식사를 이웃 식당 직원들에게 7천원에 제공한다. 같은 식당이라도 메뉴에 따라 ‘밥’을 먹기 힘든 곳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직원이 많은 ‘무명식당’은 마감 시간이면 골목길에 놓인 무거운 식탁을 치워야 하는데 체격 좋은 이승하 대표가 달려와 정리를 도와준다고 한다. ‘촌’이란 이름 그대로 상부상조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은 2~3주에 한 번씩 식객촌 번영회를 연다. 이 자리에선 ‘골목길의 미관을 위해 입간판은 전부 철거하자’, ‘계절별로 주력 메뉴가 다르니 업체별로 돌아가며 해당 달의 쿠폰을 붙은 달력을 만들자’, ‘식객촌의 날을 만들어 소외계층에게 무료 식사나 도시락을 제공하자’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온다. 식객촌이 이런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게 된 데는 새로운 경영 모델도 한몫 했다. 식객촌 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이들 매출은 모두 (주)식객촌으로 모인다. 회사는 이 매출에서 식당의 입지 조건에 따라 평균 20%의 수수료를 떼고 나머지 금액을 각 매장에 돌려준다. 대신 회사는 이 돈으로 임대료와 관리비·마케팅비 등을 충당한다고 한다. ㈜식객촌 관계자는 “수수료로 얻는 수익보다는 식객
촌을 하나의 브랜드로 키워 포장·온라인 사업, 관광 상품화하는 게 실질적 목표”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이 밑작업으로 <식객>에 등장하는 만화 중 식객촌과 관련 있는 편만 묶은 <식객, 종각에 모이다>를 영어·중국어·일본어판으로 출간했다.

철저한 사전 기획과 사후 임대관리가 성공 비결

▲ 식객촌 골목에는 만화 <식객>에 대한 소개에 대해 씌어져있다.
식객촌의 성공 비결은 철저한 사전 기획과 사후 임대관리다. 식객촌은 인기 연예 프로그램이었던 신동엽의 러브하우스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탄 건축가 양진석 박사가 기획했다. 성신여대 입구에 있는 유타 몰이나 헤이리 더 스텝, 포스코 더 샵 스타파크, 청담 파라곤 등의 건축에도 참여한 양 박사는 그랑서울의 총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아 설계부터 상점 구성 등 비즈니스 모델 기획까지 진행했다.
양 박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랑서울에는 사무실, 임대오피스 상가 등 굉장히 복잡한 시설이 들어가기 때문에 경영자가 판단하게 되면 전체적으로 볼 수 없다”며 “건물주 입장뿐만 아니라 사용자 입장에서 누군가 한명이 통합적으로 관리할 사람이 필요해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가 처음 식객촌을 입점시켜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우리나라 그 어디에도 없다는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양 박사는 옛 피맛골 자리에 들어선 그랑서울에 식객촌을 형성해 옛 추억을 재현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옛 피맛골 정서에 걸맞은 테넌트를 고르다 보니 식객에 나오는 전통 맛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북이기 때문에 현대식이나 서양식보다는 한국의 맛집이 어울리고, 매출로 연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식객촌은 종로 한복판인 종각역, 그것도 ‘그랑서울’이라 불리는 최신식 빌딩 내에 위치하고 있다. 주차 걱정 없이 식사를 하고 주변 관광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모 대학의 도시건축학과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도심의 인구공동화 현상(중심 시가지의 인구 감소)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중심지에 고급 브랜드나 맛집을 유치하고 있다”며 “공간에 스토리를 입히고 주변의 휴식·관광 시설과 연계돼 있는 식객촌이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식객촌은 구로 2호점을 비롯해 앞으로 부산, 제주를 포함해 전국에 5군데 식객촌을 만들고 해외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이제까지 ‘한식 세계화’를 외친 이들은 많았지만 제대로 성공한 업체를 찾기는 힘들었다. 각각의 스토리를 가진 한국 고유의 맛집이 세계에서도 통할지 스토리와 맛이 결합된 식객촌의 앞날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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