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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언어로 시를 짓는 여자, 문정희 시인
일상의 언어로 시를 짓는 여자, 문정희 시인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10.20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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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각적인 콘텐츠에 지배되는 이미지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반대급부로 듣고 읽는 것의 감성은 메말라 가고, 디지털 문명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허우적대는 현대인들에게 사색과 명상보다 검색과 소통이 중요해졌다. 감성의 계절 가을에 만난 문정희 시인을 통해 지금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들어 봤다.

취재 박천국 | 사진 이용관 | 장소협찬 청담동 더갤러리스페이스

“삶 속에서 시심을 표출할 수 있는 어떤 상황과 사물을 포착하는 능력만 있으면 시인에 절반 정도 근접해 있다고 봅니다”

요즘 사람들은 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쉽게 생각해 보면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일부분 시심(詩心)을 가지고 있다. SNS에 ‘좋아요’를 얻기 위해 인상 깊은 문구나 자신의 남다른 생각을 올리는 행동이 대표적인 예다. 문정희 시인은 “그런 공감을 얻기 위해 하는 일반인들의 행동이 시인의 마음과 비슷한 일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확히 같지는 않지만, 그런 일면이 있습니다. 좋은 구절이나 생각이라 하더라도 많은 이들의 공감이나 감동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소통이나 공감을 일으키고 싶어서 그런 노력을 한다는 것은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시를 쓰는 마음이 상당 부분 있다고 봅니다.”
일상의 언어로 문학적 감수성을 완성시키는 문 시인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아도 사람들의 마음에 무엇인가를 불러일으킬 만한 힘이 있다면 시가 될 수 있다”며 일상 속에 무수히 존재하는 시를 이야기했다.

삶이라는 것은 시의 좋은 소재

 
문정희 교수의 시를 보면 일상적인 언어지만, 시 속에서 독특한 느낌의 시어로 완성시킨다. <남편>이라는 시에서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나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라는 표현을 예로 꼽을 수 있다. 이처럼 문 교수의 시어는 평범하지만 시 안에서 보면 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언어가 된다.
“정식으로 등단한 지는 45년이 안 되었지만 시는 쓴 지는 50년쯤 됐어요. 어린 시절부터 썼으니 문학소녀로 잔뼈가 굳은 편이지요. 저는 항상 갖고 있던 고민 중 하나가 시를 쓸 때 ‘나 지금 쓴다’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니 일상적인 내 삶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나 정서보다 시 속에서 표현되는 감성이나 정서가 지나치게 복합 구조를 가지거나 지나차게 과장·미화되는 문제가 늘 고민이었죠. 오랜 수련과 실험 끝에 한 10여년 전부터 제가 숨 쉬고 있는 삶의 언어, 시 속의 표현하고자 하는 언어가 상당히 일치되는 기쁨이랄까, 그런 것을 맛보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래서 일상의 언어를 시 속에서 개성과 문학의 언어로 읽는 이가 있었다면, 저로서는 성공이고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시인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적절히 표현하는 시를 쓰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그이가 쓴 <러브호텔>을 보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을 자기 고백적인 언어로 표현해 낸다. ‘러브호텔에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 / 교회와 시인 속에 진정한 꿈과 노래가 있을까 /(중략) 그러고 보니 내 몸 안에 러브호텔이 있는 것은 / 교회가 많고, 시인이 많은 것은 / 참 쓸쓸한 일이다 / 오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며 / 나는 오늘도 러브호텔로 들어간다’ 양 극단에 놓인 이미지인 러브호텔과 교회를 찾는 외로운 현대인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을 향한 연민의 정서를 차분하고 세련되게 그려냈다.
“한 현실의 모습을 들이댐으로써 심성 속 욕망이나 그것의 반대 방향에 있는 기도나 시라는 것이 심성 속에 다 있다는 점을 표출하고자 만든 시예요. 물론 기도나 교회, 시인의 마음을 읽기보다 제목만을 보고 반응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비둘기 한 마리로 떼를 잡은 것처럼 시를 읽게 하는 장치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죠. 얼마 전에 프랑스 최고의 교양 방송국인 아르떼라는 곳에서 저를 촬영하면서 이 시가 최근 한국 사회의 모습을 아주 적절히 드러낸 좋은 메타포라고 하더군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일상에 산재되어 있는 사물과 마음, 욕망은 예술 작품화할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죠.”
이처럼 시인에게 외로움에서 비롯된 사랑을 갈구하는 정서는 시의 영감을 얻는 좋은 재료가 된다. 하지만 고독할 권리조차 마음대로 누릴 수 없는 현대사회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자유와 고독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과도 같다는 게 그이의 생각이다. 기쁘고 즐거운 순간에서조차 외로움과 처절한 슬픔을 찾는 것이 시인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시인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시인이 먹어야 할 유일한 음식이 외로움이고 시인이 마셔야 할 유일한 공기는 자유’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자유와 고독을 일상에서 지켜내기가 어려워요. 자유롭고 고독할 권리가 너무 없는 것이죠. 각종 소음과 소란,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고 돈, 가족, 도덕, 전통, 윤리 등 부자유 속에서 자유를 찾아야 하니까요. 이 테마를 가지고 끙끙 앓다가 얼마 전에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바로 자유와 고독은 완벽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시인의 한 모습이라는 것을요.”
일상에서 시를 찾는 시인의 특성상 시상이 떠오르는 순간은 평범한 하루의 연속선상에 있다. 그렇다 보니 그이에게 시를 쓰는 작업은 일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삶이라는 좋은 소재를 시로 작품화하기 위해서 그이는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생활화하는 편이다.
“결국 삶이라는 것은 시인에게 좋은 소재입니다. 그리고 문학의 기본은 구체적이어야 하죠. 너무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두루뭉술한 언어로 표현하면 공감을 얻어낼 수 없죠. 저는 삶 속에서 시심을 표출할 수 있는 어떤 상황과 사물을 포착하는 능력만 있으면 시인에 절반 정도 근접해 있다고 봅니다. 언제나 끊임없이 메모지를 들고 다니면서 텔레비전 뉴스를 보거나 설거지를 하다가, 또는 식당에서 어머니와 같은 분이 식사를 하는 뒷모습을 보며 시를 씁니다. 산재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시적인 소재로 삼으면서 예술화, 작품화, 형상화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죠.”

내 문학적 토대는 사춘기 문학소녀의 감성

문정희 시인은 어렸을 때부터 시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일찍이 시를 쓰기 시작했고, 젊은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인은 주어진 재능뿐만 아니라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린 날의 아픔들로 시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생명의 덧없음과 비극을 절감한 그이는 “외로움에 문학이 저절로 밀려왔다”고 표현했다.
“고향이 전남 보성인데 아버지께서 저를 도시 학교로 유학을 보내서 12살 때 고향을 떠났어요. 그래서 내면에는 보성의 풀밭, 바람과 어린 날의 아픔들이 기저에 깔려 있죠.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제가 보기에는 하늘처럼 권위 있고 힘이 막강하던 아버지가 작은 관에 담겨 묻히는 것을 14살에 보고는 생명이 얼마나 덧없고 비극적인 것인지를 느낀 것 같습니다. 너무 외로워서 문학이 저절로 밀려왔고, 이후로도 문학에 심취하지 않을 수 없었죠.”
당시 시인의 문학적 재능이 사회적으로 알려지면서 대학 입학과 함께 당대 최고인 서정주 시인에게 시를 배울 수 있었다. 등단 이후 지금까지 시인의 삶을 꾸릴 수 있었던 비결로 “그 당시 절감했던 문학의 힘에 있다”고 시인은 말했다. 개인적인 아픔을 문학으로 단련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거침없이 일어나는 강렬한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서정주 시인에게 넘치는 총애와 신뢰를 받으면서 대학 생활을 했어요. 등단 이후 지금까지 시인의 삶을 잘 꾸려온 것을 보면 굉장한 행운과 축복을 받은 삶이라고 생각하죠. 시인으로서 상을 받았거나 명성을 얻은 것보다 계속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삶을 유지해 나간다는 점에서요. 오랜 타지 생활과 사춘기 때 아버지를 여읜 아픔을 겪으면서 물론 힘들고 고통스럽고 허둥거렸지만, 결국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그 경험들이 좋은 소재가 되었고 거침없이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강렬한 힘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꿈을 꾸어야 할 나이에 한 가지 목표만을 좇아 살아온 것에 대한 후회는 없었을까. 시인은 “만약 시인이 되지 않았다면 배우나 화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얼마 전에 한 문학 잡지에서 버킷 리스트를 써보라고 해서 여배우가 되고 싶다고 쓴 적이 있고, 만약 글을 안 썼다면 배우나 화가가 됐을 겁니다. 나중에 ‘이걸 했으면 잘했겠다’라고 생각한 게 있는데, 바로 영화감독과 건축가예요. 특히 한창 영화에 관심을 갖던 시절에는 카메라를 사서 직접 제작하려고 했다가 두 아이들 때문에 포기한 적도 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공동 작업에 익숙지 않은 시인이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일해야 하는 영화감독이 되었다면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림책 <새 신발>에 이어 시집 <응> 발표

문정희 시인은 얼마 전 그림책 <새 신발>을 발표했다. 아이들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담긴 동시집이다. 시인은 ‘손자들에게 읽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출판사의 원고 청탁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번에 낸 동시집은 새 신발을 신은 아이가 신발을 신고 걷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비행기를 타고 세계의 꿈을 꾸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동시집이 우리 손자들뿐만 아니라 새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큰 선물이 되길 바랍니다. 내년에 이탈리아 볼로냐 아동 도서전에 <새 신발>이 출품이 된다고 하는데, 저에게는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얼마 전 한국시인협회의 회장을 맡게 된 문 시인은 작품 활동은 물론, 대외적인 활동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시인은 “9월 말 새 시집 <응> 발표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번역 작업을 통해 한국 시인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 시인을 대표해 국제적 행사에 참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학 단체는 세속에 나서서 단체로 움직이는 정치적 단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시인협회의 캐치프레이즈가 ‘날자 한국시여, 세계 문학에 점화를 하자’인데 매주 10편 정도 한국 시를 번역하는 것은 물론, 한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많은 한국 시인들이 프랑스에서 자신의 시를 낭송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9월 말에 민음사에서 <응>이라는 시집이 나와요.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인 미셸 메나셰가 ‘문정희는 국경을 초월한다. 그녀는 세계적인 반항아이다’라고 유럽지에 쓴 서평이 책 표지의 띠지로 붙어 있어서 저에게는 영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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