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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실미도’의 작가, 김희재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실미도’의 작가, 김희재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10.22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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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은이 만난 Queen 2

김희재, 죽을 때까지 섹시하기를 꿈꾸다!

 
여성은 언제까지 섹시하게 살 수 있을까? 20대까지? 결혼 전까지? 출산 전까지? 아니면 갱년기 전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1억 원짜리 시나리오 작가 타이틀을 가진 김희재 씨의 대답은, 죽을 때까지이다. 거칠고 금기시된 남성의 세계를 거침없이 넘나든 영화 ‘실미도’ ‘공공의 적2’ ‘한반도’의 작가인 김희재 씨는 40대 중반에 <죽을 때까지 까지 섹시하기>라는 매력 프로젝트를 책으로 출간한 바 있다.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일 뿐만 아니라 ‘올댓스토리’ 대표이자 추계예술대 영상시나리오과의 교수인 그녀는 이야기산업을 개발하기 위해 누구보다 도전적이고 치열한 삶을 살아온 여성이다. 죽을 때까지 섹시하기를 꿈꾸며, 어떻게 그런 성공적인 커리어 우먼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일까. 김다은 교수가 삼성동 ‘올댓스토리’에서 그녀를 만났다.  

글 김다은(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사진 이용관

김다은 : 카페가 아니라, 당신의 일터를 인터뷰 장소로 택한 이유는? 
김희재 : 내 일터가 나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여겼다. 글을 쓰는 작업실은 나에게 전략사령부나 다름없다. 이곳은 전략을 짜는 곳이고 내 일의 전쟁터다. 지켜야 하는 식구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김다은 : 얼핏 제목만 보면 <죽을 때까지 섹시하기>는 이성을 유혹하는 간단한 레시피가 들어있는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 안에서 그런 류는 찾아보기 힘들다. 40대 중반의 당신이 생각하는 ‘섹시’의 의미를 정의해 달라. 
김희재 : 무인도에 홀로 남게 되면 섹시하고 싶을까? 홀로 있으면 섹시할 필요도 섹시의 의미도 없다. 섹시하고 싶다는 욕망은 누군가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을 때 생긴다. 그러므로 매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성이 먼저 담보되어야 한다. 매력적으로 다가가고 싶어도 상대방이 매력을 느끼는 기준을 알지 못하면 소용이 없지 않은가. 나이가 들수록 자기 기준에만 맞추어 옹고집의 늙은이가 되기 쉬운데, 매력을 발산하기 위해서는 나이가 들수록 더 상대방의 기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상대방의 기준에 맞추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서다. 

김다은 : 섹시한 사람,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여성들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김희재 : 여성들이 한번 형성되고 고착된 관계에 근거해서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가령,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해서, 남편에게 영원히 사랑받을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딸에게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상황에 네가 처해 있건 엄마니까 뒷바라지를 감당하겠지만, 엄마의 의무로써만 그 일을 하게 되면 너무 힘들 것이다. 너를 궁금해 하며 그 매력에 반해 응원할 수 있게, 나에게 마케팅을 할 생각은 없니?”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명령하거나 요구하면 상사니까 다 들어준다. 하지만 고용기간이 끝나는 순간, 모든 관계가 끝나버릴 수도 있다. 섹시하게 산다는 것은, 남편이니까, 딸이니까, 상사니까, 이미 정해진 관계를 벗어나도 서로 매력적인 사람으로 남고자 하는 태도다.

김다은 : 말은 쉽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싶지 않다.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달라.    
김희재 : 액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체력이다. 체력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낮에 일에 시달리고 야근까지 한 남자는 애인과 즐거운 데이트를 할 체력이 남지 않는다. 밤새 아이를 돌보느라 소진된 여자는 아이를 부드럽게 대하거나, 부모를 부양하거나, 남편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하기가 쉽지 않다. 체력이 약하면 상대방을 배려할 수가 없다. ‘문제’가 정말 문제가 아니라 체력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필요한 액션이 유머감각이다. 살아가면서 문제에 봉착했을 때, 무조건 심각하게만 받아들이면 상황이 더 나빠진다. 유머스럽게 바라보면 휠씬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고, 상대방도 배려해줄 수 있고, 결국 좋은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

김다은 : 체력을 섹시의 기본으로 인식하게 된 개인적인 경험이 있는가?
김희재 : 20대부터 온갖 종류의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했다. 서연(딸)을 가졌을 때는 임신중독증으로 몸이 하마처럼 부풀었다. 게다가 작가 생활을 하다 보니 커피와 초콜릿을 달고 살고 잠을 제대로 자지 않았다. 몸에 마비 증상이 와서 숟가락도 제대로 들지 못했고, ‘과긴장 상태’로 두뇌에 혈압이 올라 두 번 정도 쓰러졌다. 서울대 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응급실의 베드는 모두 찬 상태였다. 머리를 어디에 대고 눕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이미 베드가 없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했는데도 간호사에게 베드를 내놓으라고, 해서는 안 될 요구를 하면서 내 스스로 인격을 저버렸다. 몸이 고통스러우면 인간의 존엄을 버릴 수도 있음을 그때 깨달았다. 내가 쓰러진 것보다, 고통 속에서 내가 선택한 태도가 더 충격적이었다. 그 후부터 내 몸을 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김다은 : 체력이 중요하다고 많이들 강조하지만, 체력을 몸에서 인격까지 연결해서 이해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다. 체력은 운동으로 단련하면 되지만, 유머는 어떻게 단련해야 하나?
김희재 : 유머는 코미디가 아니다. 웃기는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유머감각을 지녀야한다. 유머감각은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나오는 면이 있다. 상대방이 어떤 지점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지, 어느 지점에서 민망해하는지, 어떤 지점을 권력이라고 생각하는지, 상대방의 욕망의 코드를 잘 읽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도리어 상대방을 민망하고 곤란하게 만든다. 여성들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단순해지면서 이런 감정이입의 단계에 대한 훈련이 덜 되어 있는 편이다. 때로 풍자하고 싶은 핵심을 잘 파악하여 전달할 수 있도록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해 다양한 감정의 단계를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김다은 : 당신의 목소리를 독자들에게 직접 들려주지 못해서 아쉽다. 목소리 자체에 말이 주는 그 이상의 느낌이 전해져 온다. 그만큼 당신은 대화를 잘 풀어낸다. 당신 책에서 말한 ‘섹시한 대화법’에 대해서 알려 달라. 
김희재 :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과 언어를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돈을 좋아하는데 속물로 보일까봐 본심을 숨기게 되면, 말이 장황해지고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 섹시한 대화를 하고 싶으면 본심과 언어를 맞추면 된다, “나는 돈이 좋아.” 그리곤 덧붙인다. “내가 속물처럼 보이지. 안 감춰지네.” 그러면 상대방은 “돈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딨어?” 라며 그 솔직함에 도리어 호감을 갖는다. 자신의 본심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섹시한 대화법의 기본이다. 자신의 마음과 언어를 맞추는 것이다. 타인의 마음에 맞추라는 것이 아니다.

김다은 : 호의를 가진 사람에게 솔직한 대화를 하긴 쉬운데, 적의를 가진 사람 앞에서조차도 섹시한 대화법이 가능한가? 이미 어려워진 관계에서의 대화법은?
김희재 : 먼저 결정해야 한다. 관계를 풀 것인지, 일을 할 것인지. 아니면 둘 다 할 것인지. 많은 여성들이 미움받는 것에 대한 공포가 커다보니, 한꺼번에 두 가지를 풀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 경우 둘 다 잃기 십상이다. 일만 풀든지, 일을 먼저 풀고 나중에 관계까지 풀든지 선택해야 한다. 직장이나 공동체 안에서 계속 만나야 하는 사람과 불편한 관계에 있을 경우, 나는 직구를 던지는 편이다. “제가 싫죠?” 그러면 상대방은 화들짝 놀란다. “제가 생각해도 그 상황의 저는 싫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서 상대방에게 공격 의사가 없음을 알려준다.

김다은 : 그래도 상대방이 잘 받아주지 않으면?
김희재 : 상대방이 약하여 도리어 공격받았다고 생각할 때는, 말없이 그 사람을 섬기는 쪽을 택한다. 편한 자리도 비켜주고, 물도 떠다주고, 몸을 움직여 봉사하는 사람에게는 상대방도 험하게 대하지 못한다. “하하, 그래서 체력이 필요해요.” 이쪽에서 봉사해도 받아주지 못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나도 그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엿 드시겠어요? (김희재 씨가 내민 것은 ‘올댓스토리’에서 이야기를 입혀 개발한 엿 브랜드 ‘엿츠Yutts’였다.)

 
김다은 : 체력이 엿 먹일 때, 야근이 엿 먹일 때, 여자라서 엿 먹일 때, 세월이 엿 먹일 때… 산뜻한 포장봉투에 덧입혀진 이야기 때문인지, 자꾸 엿으로 손이 간다. 그런데 요즘 한국 영화에는 필요 이상으로 욕설이 많은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나?
김희재 : 영화는 현실의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현실에서 욕설이 많아지다 보니, 영화가 현실을 반영해서 그렇다. 서로 부추기는 면도 있다. 요즘 어린 친구들이 욕설을 많이 하는 편이다. 욕설의 본질이 무엇일까? 상대의 영혼을 훼손시키기 위한 것이냐, 아니냐를 생각해보면, 요즘 어린 친구들은 서로 친해지기 위해 욕설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언어가, 관계를 친하게 할 단어가 빈곤하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가 아닐까. 우리가 압축 성장의 과정을 거치면서 은유와 상징 그리고 여유를 많이 잃어버렸다. 우리나라는 문인이 500년을 통치했던 나라이니, 노력하면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그러면 영화의 언어도 달라질 것이다.     

김다은 : ‘실미도’ ‘공공의 적2’ ‘한반도’ 등 영화의 규모가 클 뿐 아니라 너무나 대범하게 사회의 금기를 건드리는 면이 있는데, 대가를 치른 적은 없는가? 
김희재 : ‘실미도’이후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했다 하여 강남경찰서에서 수사를 받았고, 당시 대검 중수부에도 수사를 받았다. 법에 저촉되어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그래야겠지만, 그런 의도가 없었으니 괜찮았다. 아마 이 부분은 신앙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끝내 진실을 아시는 분이 계신다는 것과 아무도 내 억울함을 모른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인생의 궁극적인 책임이 내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내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이라고 믿어서 내 삶에 있어서 용감할 수 있었다.

김다은 : 보통 여성들이 한 가지도 가지기 힘든데, 시나리오 작가와 CEO와 교수라는 세 가지 일을 모두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은? 그리고 세 가지 직업 중에 한 가지만 선택하라면?
김희재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기보다 내가 해야 하는 소명, 즉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했다. 올댓스토리를 운영하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다. 그때마다 나에게 맡겨진 포도원, 성경적으로 일꾼들이 와서 일할 수 있는 포도원이라 생각했다. 이곳에서 한 사람에게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싶다. 나는 이곳의 주인이라기보다 청지기다. 하나님으로부터 멈춰도 된다는 사인을 받기 전까지는 계속할 것이다. 하게 하실 것이면 할 수 있게 해주실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하게 하실 것이다. 세 가지 직업 중에 한 가지만 선택하라면, 작가로 남겠다. 

김다은 : 하나님 외에 인간 멘토가 있는가?
김희재 : 엄마. 아주 부잣집에 태어났지만, 일찍 결혼해서 대학을 중퇴하셨고,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야반도주도 하고 전기가 끊길 정도로 지독한 가난을 겪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활이 어렵고 아버지와 갈등이 있어도, 엄마는 자식들에게 그 짜증을 전가한 적이 없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중년이 되어 보니, 자식 세 명을 대학에 보내면서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어떻게 짜증 한 번을 내지 않았을까 놀라울 따름이다. 기적 같다. 엄마는 정신상담 대학원을 다니셨고, 킹 제임스 영어성경을 끼고 사셨고, 베이비시트 공식자격증, 다도선생 자격증 등 지금처럼 교육의 기회가 별로 없을 때도, 배울 기회만 있으면 배우셨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베푸셨다.

 
김다은 :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가?
김희재 : 세금에 관한 드라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국가에 삥을 뜯기는 것으로 여기는데, 세금은 정부와 국민간의 약속이다. ‘세금을 잘 내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약속은 맺으면서 시작되고 지키면서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금을 걷는 자와 세금을 내는 자 그리고 세금을 쓰는 자, 세 주체간의 신뢰를 다뤄보고 싶다. 아직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다뤄본 적이 없는 소재다. 준비하는 과정이 싶지만은 않다.  

김다은 : 인터뷰하고 싶은 퀸(Queen)이라고 했을 때, 당당하게 받아들여서 좋았다. 자신 안에 퀸의 면모가 있다고 여겼기에 가능한 태도다.
김희재 :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퀸의 뜻에 왕비와 여왕이 있다면 나는 여왕 쪽이고 싶다. 왕비는 왕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지만, 여왕은 자신의 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 자, 승계 혹은 혁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퀸이라는 명칭에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내가 책임지고 결단을 해나가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산업을 개척하는 일이 혁명 쪽에 가깝다.

김다은 : 마지막으로, 직장여성이건 주부이건 여성들이 퀸이 되려면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김희재 : 내가 나를 퀸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조금 더 길고 넓게 보면, 이해 못 할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악하다고 하는 사람이 실상은 약한 경우가 많다. 약하기 때문에 악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이해하면 자기 자신에게도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상대방에게도 연민과 긍휼을 가지고 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사람을 수용하기가 쉬워진다. 내 인생이라는 영역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더 많이 긍휼할 수 있을 때, 그만큼 여왕의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닐까.

작가 김다은은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이화여대 불어교육과와 동 대학원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파리 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제3회 국민문학상에 장편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가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및 창작집 '금지된 정원' '쥐식인 블루스' '모반의 연애편지' '훈민정음의 비밀' '이상한 연애편지' '러브버그' '위험한 상상' '푸른 노트 속의 여자'와 문화칼럼집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을 출간했으며, 서간집 '작가들의 연애편지' '작가들의 우정편지' '작가들의 여행편지' '해에게서 사람에게'를 엮어냈다. 프랑스어 소설 'Imagination dangereuse' 'Madame'을 발표했으며, 번역서 '다른 곶' '에쁘롱' '모데르니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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