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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과 소비자가 유기농을 인증하는 참여자 인증 시스템, PGS
농민과 소비자가 유기농을 인증하는 참여자 인증 시스템, PGS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4.10.29 0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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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선진 유기농

▲ 전 세계 PGS 현황 지도
백화점이나 고급 유기농 전문 매장에서만 유기농산물을 살 수 있는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은 유기농이 ‘부자들의 밥상’을 위한 것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를 포함하여 전 세계 만 명 이상의 소농 농민은 로컬 푸드 시골 장터에서 일명 풀뿌리 인증 유기농산물을 팔고 있다.

글·사진 | 이민호(국립농업과학원 유기농업과)

대안 유기농 인증

우리는 정부나 국제기구에서 엄격하고 복잡한 체계로 인증한 유기농산물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상의 거의 모든 농부가 길러낸 농산물이 유기농이었다. 이는 시대적 역량과 세태가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는 코덱스와 같은 국제적인 규범을 따라야하고 정부가 규정해 놓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농사를 짓고 인증 라벨을 붙여서 시장에 내 놓아야만 비로소 자신의 농산물을 제대로 팔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인증 체제는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전문가들이 끌고 가는 길을 따라 간다. 그래서 결국 다시 유럽과 북미 선진국의 전문가 그룹에 의해 세계 유기농산물 시장의 판도가 결정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전 세계 모든 농민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농민 운동이나 자연보호 활동을 해온 각국의 단체들이 스스로 가꾸어온 농민과 소비자와의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대안 인증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전문가들로부터 유기농 인증의 주체를 농민과 소비자에게 돌려주자는 취지에서 고안된 참여자 인증 시스템(PGS, Participatory Guarantee System)이다.
농민이나 소비자와 같은 이해관계자가 직접 농장에 방문하여 이 농장에서 진짜 믿을 수 있는 유기농산물을 재배하고 있는지 조사하고, 인증에 필요한 비효율적인 서류 작업을 줄여서 저비용으로 유기농 인증을 운영하자는 것이다.
현재 미국, 프랑스, 인도, 브라질 등 전 세계에 이렇게 운영되는 인증 시스템이 20개가 넘고 1만 명 이상의 소농이 참여하고 있다. 이런 인증 덕분에 이제 시골 장터에서 농부들이 ‘이거 진짜 유기농산물이야’라고 말하는 대신 인증 로고를 보여줄 수 있다.

PGS로 소농과 로컬 푸드를 보호하는 인도

▲ 참여자 인증 시스템(PGS)이 발달된 인도에서는 농민과 소비자들로 구성된 15명의 방문객이 농가를 방문, 유기농 인증에 필요한 항목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인도를 대표하는 매튜 존은 아이폼 세계이사회 이사이자 인도 PGS위원회 멤버로 인도에서 PGS의 설립과 정착을 이끈 사람이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흰 수염이 매력적인 매튜 존은 내게 친절하게 PGS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다른 나라에 비해 인도에서 왜 PGS가 빠르게 발전했나.
“인도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운영하는 NPOP라는 유기농인증이 있다. 그렇지만 국가인증시스템은 절차가 너무 까다롭고 전문적인데다 인증을 받기 위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전통농법을 고수해온 가난한 소농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오직 수출업자만 유기농인증을 받고 있다. 그래서 유기농인증도 인도에서는 통상부에서 주도하고 있다. 인도 소비자를 위한 유기농산물은 없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도의 9개 농민, 소비자 조직이 모여 PGS위원회를 만들고 공동으로 PGS 인증을 운영하고 있다.”

PGS로 인증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인도의 소농 중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농법으로 유기농을 하고 있다. 농민 또는 농민과 소비자들로 구성된 15명의 방문객이 PGS 인증을 받으려는 농가를 방문한다. 인증 신청 농민과 방문객은 서로 친분이 없는 관계다. 방문객은 농가 현장을 둘러보고 인증에 필요한 서류와 설문지를 갖고 간다. 신청 농민이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을 대신해서 응답 내용을 서류에 기록할 수 있다. 유기농 인증에 필요한 모든 항목을 준수하는 것이 확인되면 이런 간단한 절차로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이런 방문은 1년 중 부정기적으로 반복 수행된다.”

그런 간단한 절차로도 유기농인지 신뢰할 수 있나.
“아시아나 남미,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 농민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어차피 화학비료와 농약 없이 농사를 지어오고 있다. 자연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이 유기농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은 서구 유럽 중심적인 관점에서 그들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도시텃밭에서도 가능한 PGS

▲ 아이폼의 글로벌 PGS 인증 로고
아이폼(국제유기농운동연맹)에서는 PGS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지원하고 있다. 아이폼은 각국 시민단체의 자발적인 PGS 설립을 독려함과 더불어 글로벌 수준에서 PGS를 통일적으로 운영하려고도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PGS 시스템이 없지만,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도시텃밭에서 가꾸는 채소를 진짜 유기농산물로 인증해주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내가 직접 가꾸는 텃밭 채소에 유기농 인증 로고를 붙일 수 있다면 신나는 일일 것이다. 물론 정부에서 운영하는 유기농인증보다는 덜 전문적이겠지만, 맛은 더 좋지 않을까?

 
이민호
고려대 환경생태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유기농업과에서 농업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국제유기농학술상인 오피아(OFIA)상의 코디네이터. 한국응용곤충학회 평의원.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유기농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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