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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심연식의 ‘My Collection’ 이야기
미술사 심연식의 ‘My Collection’ 이야기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11.24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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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터의 집

관심과 열정으로 수집한 작품만 100여점

수집은 취미나 연구를 위하여 여러 가지 물건이나 재료를 찾아 모으는 일이다. 연구를 위한 수집이라면 목적이 분명할 테지만, 취미라면 다르다. 취미로 뭔가를 부지런히 모으는 사람에게 ‘왜 모으느냐?’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좋아서’라고 답할 것이고, ‘왜 좋으냐?’고 물으면 ‘그냥 좋다’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미술사 심연식 씨 또한 그랬다. 미술계 거장들의 작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단순히 ‘좋아서’였다. 그로부터 미술의 관심은 높아졌고, 100여 점 이상의 그림을 수집하기에 이르렀다.

취재_ 이시종 기자 사진_ 맹석호(유니크하우스)

“미술에 대해 깊게 알고 싶다면 일단 작품을 사라. 그럼 안목과 노하우가 배가될 것이다”

 
서울 도곡동에 있는 심연식 씨의 집은 흡사 중형 갤러리였다. 집안 복도에 걸린 그림 작품들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이곳이 갤러리인지 집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갤러리 하우스를 콘셉트로 한 집들도 여러 취재해봤지만, 다양한 한국 작가들의 컬렉션으로는 단연 발군이었다. 저명한 화랑뿐만 아니라 경매사와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그이는 현재 100여 점이 훌쩍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작품들을 보관할 수장고를 따로 마련해야 할 정도로 그이의 컬렉션은 방대하다. 그러나 취재진을 놀라게 한 것은 작품 수가 아니라, 작품의 수준과 질이었다. 이우환, 김종학, 오치균, 최욱경, 양만기, 신흥우, 김경우, 유영교 등 한국의 10대 작가의 작품부터 중견 작가 그리고 젊은 작가의 회화와 조각에 이르기까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방대하다. 그이의 집은 미술경매 프리뷰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30년 전 우연히 산 그림, 매력에 푹 빠지다

이화여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심연식 씨는 동양화 수집이 취미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미술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미술 작품을 수집하게 된 계기는 30여 년 전 우연히 구입한 그림 한 점에서 비롯됐다.
“그림을 처음 샀던 것은 제 나이 서른 즈음이에요. 인사동을 지나는데 한 그림이 계속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계속 눈에 밟혀 결국은 당시 1만2천원인가를 주고 샀어요. 집에 걸어두고 나도 보고 어린 두 아이에게 보여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10년인가를 집에 걸어 두면서 행복해했죠. 그러다 이 그림으로 다른 그림을 살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한 화랑에 갔는데, 그림 값이 65만원으로 껑충 올라 있었어요. 그림은 예술적 충만함도 느끼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것이란 걸 처음 알게 됐죠.”
그때부터 마음 가는 작품을 하나둘씩 수집하기 시작해 지금은 1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게 됐다. 그이의 집안 곳곳에는 분위기에 따라 여러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집에 걸려 있는 작품은 때때로 다른 작품으로 교체되면서 집안은 또 다른 분위기로 변신한다. 그이는 그림으로 공간을 디자인하고 휴식을 얻는다고 했다. 
“그림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예술 같아요. 그림을 처음 샀을 때와 지금의 취향도 달라지는 것을 보면요. 솔직히 저도 처음부터 대단한 안목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저 보면 마음이 끌리는 작품을 사곤 했어요. 그렇게 마음에 끌리는 작품을 샀는데, 그 작품이 뜻하지 않게 가격이 훌쩍 뛴 경우가 더러 있긴 했어요. 15년 전 마음에 이끌려 구입했던 오치균 작가 역시 당시에는 무명의 작가였는데, 몇 년이 지나자 개인전을 열고 작품을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최근에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이 많이 간다며 취재진을 안내한 곳은 신흥우 작가의 작품 앞이었다. 2012년 새누리당 대선 경선 당시 경선이 이뤄지는 장소에 ‘함께’라는 문구 옆에 하나의 커다란 그림이 배경으로 걸려 있었는데, 이 작품이 바로 신흥우 작가의 <콘서트>라는 작품이다. 그이는 이 작품을 보며 큰 감흥을 느꼈다고 했다.
“팝아트를 잘 모를 때 신흥우 작가의 작품을 보고 마음이 동해 구입했어요. 작품을 선정할 땐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우선 선택하는 편이에요. 조각가 유영교의 모자상은 따뜻하고 풍만한 여유로움이 느껴져서 아이들에게 물려 주어도 거부감이 없지요. 외국 작가의 작품을 구입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독일 작가 랄프 프레시의 작품도 우리 정서에 맞는 작품이었기에 선택했어요.”
문득 직접 그리고 싶은 욕심은 없는지 궁금해졌다. 그이 역시 미술을 전공했고 미술과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고 있으니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좋은 작품들을 많이 보다 보니 그런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욕심만큼 그려지지가 않더라고요. 수준 높은 작품을 자주 보다 보니 눈은 높아졌는데, 제 실력이 눈높이만큼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직접 그리는 욕심은 접었어요.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있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미술투자? 일단 사라!

 
미술 작품은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순수하게 예술로서의 미술이고, 하나는 투자 대상으로서의 미술이다. 미술 투자와 미술 수집, 같은 활동인 듯하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두 활동은 만나게 되어 있다. 미술 수집이나 미술 투자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대상이 그림 혹은 미술품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 대상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이에게 미술 투자나 미술 수집에 관심을 가지려는 사람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일단 작품을 사세요. 그럼 안목과 노하우가 배가될 것입니다. 미술과 함께하는 사회생활을 젊은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처음부터 값비싼 작품을 구입하기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작품부터 시작해 보세요. 미술에 대한 관심이 투자이든 수집이든 간에 ‘구입하는 순간’ 색다른 경험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미술 투자나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림을 좋아하다보니 수집하게 되고 오랫동안 수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과적으로 투자가 되는 경우도 있겠고, 오로지 투자처를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저평가 되어 온 미술시장을 알게 되었고, 그림은 하나도 모르지만 투자라면 일가견이 있다고 자신하던 터에 의외로 미술 투자에 쉽게 재미를 느껴 빠져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결국 미술품에 빠져들어야만 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미술의 관심사 중 무엇이 먼저이든 그것을 도덕성과 결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미술은 나름의 순수함이 있지만 이런 미술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것을 중시하든 간에 미술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미술계에는 바람직한 일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수집가와 투자자를 이원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대부분의 수집가가 투자자이고, 대부분의 투자자가 수집가이다. 그이 역시 기자와 비슷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그림이 좋아서 그림을 모으다 보니 어떤 그림은 구입할 당시보다 생각 이상으로 가격이 오르는 그림도 있었어요. 어쨌든 저는 예술작품으로의 미술이든 투자 대상으로의 미술이든 두  가지 다 만족하고 있고, 미술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어요.”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으로 안목 키워

자명한 사실은 좋은 수집가나 투자자가 되기 위해서는 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두 집단은 과정은 달라도 결국은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는 것이 많은 미술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수집가는 큰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본인의 안목에 따라 작품  구매를 결정짓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안목이 일취월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체적으로 한 단계 한 단계 밟으면서 성장해가지만 이러한 과정 자체가 수집의 즐거움이기 때문에 수집가에게 매우 소중한 시간이자 자산이 된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취향에 대한 고려가 필요 없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은 구매 결정에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편입 작품의 가격 상승 가능성이다. 가격 상승 가능성이 있는 작품은 대체적으로 수준 높은 작품이기 때문에 감상의 과정이 없는데도 안목이 높아진다.
수집가와 투자자는 결국 안목의 향상과 함께 그림을 고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까다롭게 되고, 이런 과정을 거쳐 수집가는 자연스럽게 투자자로 투자자는 자연스럽게 수집가로 변모한다. 이러한 변모는 의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그 대상이 그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림은 다른 투자 대상과는 달리 온전히 소유하는 유일한 투자이기도 해요. 내가 소유한 그 작품은 이 세상에 오직 한 점뿐이니까요.”
그이의 말처럼 이 때문에 미술 수집과 투자는 은밀한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느 한 작품을 소장하면 소장자는 그 작품의 족보에 오르는 것이며 그 작품의 전설 속에 한 부분을 차지한다. 작품을 위해서라면 소장자가 좋은 명성을 가져야만 한다. 수집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점할수록 작품의 가치는 더더욱 상승하며, 좋은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네트워크는 더욱 견고하게 구축되는 것이다.
“요즘에도 미술사와 작품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어요. 관련 서적과 강의를 들으면서 배우고 있죠. 알면 알수록 신비롭기도 하고, 더더욱 흥미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이가 좋은 컬렉션을 보유할 수 있었던 건 미술에 대한 열정과 관심, 그리고 연륜이 준 심미안 때문일 것이다. 그이는 앞으로 한국의 젊은 미술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쏟을 예정이라고 했다. 조만간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단장될 이 집의 모습을 상상 속에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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