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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명성산
포천 명성산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4.11.24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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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에 가고 싶다

6만평 은빛 물결은 슬퍼서 찬란한 가을의 서정시

▲ 산행 초입 명성산 계곡. 넓은 암반과 풍부한 수량이 인상적이다
경기 포천의 명물이자 한국의 100대 명산 중 하나인 명성산(鳴聲山)의 가을 풍경은 화려하다. 산 정상에 자리한 드넓은 분지에 바람을 따라 일렁이는 6만평의 억새 물결이 장관 중 장관이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웅장한 산세도 수려해 사시사철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 화려한 풍경과 달리 명성산의 한자를 풀어보면 '울음산'이다.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가 왕건에게 쫓기어 이 산으로 피신했다가 죽임을 당하기 전 통곡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명성산의 가을이 찬란하면서도 슬픈 이유다.

글 사진 | 유인근(스포츠서울 기자)

가을이면 산 정상을 수놓는 억새들의 향연

▲ 명성산 6만평 억새평원 전경
▲ 가을 분위기 물씬한 억새 속으로
명성산의 가을은 하얗게 찾아온다. 가을의 상징인 붉디붉은 단풍에 앞서 어른 키만큼 자란 억새가 온 산을 새하얗게 물들이며 전국에서 몰려든 손님들을 맞이하기에 바쁘다.
명성산은 정선의 민둥산이나 밀양 사자평과 더불어 전국 3대 억새 군락지 중 하나다. 물가에서 많이 자라는 갈대와 달리 억새는 산과 들에서 주로 자란다. 일명 '으악새'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아는 가요 '짝사랑'이란 노래의 "아아 으악새 슬피우는 가을인가요"라는 구성진 가락에서 '으악새'는 새 이름이 아니라 바로 억새를 가리킨다. ‘으악새가 슬피 운다’는 것은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를 말한다.
그 으악새 소리를 듣고 싶다면 명성산을 찾을 일이다. 억새를 감상하기 위해선 산을 오르는 수고쯤은 감수해야 한다. 억새란 것이 맨 바람을 맞는 높은 산꼭대기 부근에서야 군락을 이루기 때문이다.
경기 포천시와 강원 철원군 경계에 있는 해발 922m의 명성산은 전체적으로 암릉과 암벽으로 이뤄져 있다. 남쪽으로 뻗은 주능선을 기준으로 서쪽은 경사가 급해 산행이 조금 어려운 반면 웅장한 바위들로 빼어난 경관을 만날 수 있다. 동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흙이 많아 대체로 편안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 계곡을 보면서 걸을 수 있는 산길
산행코스는 세 가지다. 제1코스(8km)는 비선폭포-등룡폭포-억새군락지로 오른 뒤 다시 비선폭포로 내려오며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제2코스(10km)는 억새군락지에서 삼각봉을 더한 뒤 자인사 방향으로 내려오며 4시간 걸린다. 제3코스(14km)는 삼각봉을 지나 명성산 정상을 찍고 신안고개로 하산하며 6시간이 넘게 걸린다.
3코스의 경우 능선으로 오르는 암릉 코스여서 조망은 뛰어나지만 경사가 급해 위험하다. 억새 감상 산행은 보통 1, 2코스가 즐겨 이용된다. 하지만, 자인사로 하산하는 2코스의 경우 발 아래로 펼쳐지는 산정호수를 담기에는 좋지만,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노약자나 초보자에게는 부담스럽다. 가벼운 등산과 억새 감상이 목적이라면 1코스가 좋다. 1코스의 경우는 가족이 함께 산행을 즐겨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편안하다.

명성산이 울음산으로 불리는 이유

명성산은 왜 '울음산'으로 불리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명성산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와 뗄 수 없는 관계다. 1,0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궁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먼저 산 이름이 그렇다. 태봉국을 세운 궁예가 망국의 슬픔으로 이 산에서 통곡을 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 하여 '울 명(鳴), 소리 성(聲)'자를 붙여 명성산으로 불리게 됐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왕건에 패한 궁예가 도망칠 때 넘어갔다는 도마치고개, 왕건의 군사가 쫓아오는 것을 살피던 망무봉 등의 주변 지명이 그런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궁예가 마셨다는 궁예 약수터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졸졸졸 흐르고 있다.

▲ 억새평원 초입
명성산 억새 군락지로 오르는 가장 편한 1코스로 방향을 잡았다. 산정호수 주차장에서 비선폭포와 등룡폭포를 지나 산을 에둘러 올라가는 이 길은 경사가 완만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울창한 숲이 걷는 내내 그림자를 드리워주고,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크고 작은 폭포가 들려주는 경쾌한 물소리에 산행이 지루한 줄을 모른다.
등산로 초입부터 선녀가 노닌다는 비선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토해낸다. 거대한 암반 사이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하얀 물줄기는 옥색 물빛의 소(沼)를 만들고 있다. 비선폭포를 지나면서 천천히 경사로가 시작되지만 억새 군락지까지 이어지는 숲 터널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비탈길을 한참 오르면 물소리가 우렁찬 또 하나의 폭포가 반긴다. 매끄러운 바위 위에 직각으로 곧게 선 등룡폭포다. 이 폭포 밑에는 용이 한 마리 살았는데 소의 물안개를 따라 하늘로 올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등룡폭포를 지나면서부터는 경사가 제법 급해진다. 오른쪽으로는 군 사격장과 경계선이다. 훈련 때는 가끔 포 소리가 쾅쾅 울리기도 한다. 그렇게 푹신한 흙길을 따라 30여 분, 이마에 땀방울이 몽글몽글해지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정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평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맑은 햇살에 반사된 은빛 억새가 눈부시다.

산정호수와 어우러진 장쾌한 풍광

▲ 키보다 큰 억새길 산행
▲ 억새평원 한가운데 자리한 쉼터
명성산 삼각봉 동편 분지 6만 평은 온통 억새뿐이다. 평생 보았던 억새보다 많은 억새평원을 눈앞에 두고 그저 감탄사만 쏟아낼 뿐이다. 햇빛에 따라 보는 눈에 따라 그 색을 달리하는 억새꽃의 군무가 장관이다. 특히 바람결에 따라 일렁이는 모습은 잔잔한 물결에 흔들리는 거대한 호수와도 같은 느낌이다.
이 억새 군락지는 본래 숲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격전으로 나무들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억새들이 대신하게 됐다. 그 사이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억새밭 가운데에 궁예왕이 마셨다는 궁예 약수터가 있고, 능선에는 한눈에 억새 군락을 내려다볼 수 있는 팔각정이 있다. 궁예는 이 억새평원에 임시 거처를 만들고 왕건과 대적했다고 한다. 평원인데다 사방이 트여 조망이 좋고 물 조달이 쉬운 천하 요새다.
눈앞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억새평원을 내려다보며 잠시 궁예왕을 생각해본다. 기록에 의하면 궁예는 명성산에서 왕건의 군사에게 대패한 뒤 북쪽으로 쫓기던 중 평강의 갑천에서 갑옷 끈을 풀다 농민들에게 몰매를 맞아 죽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역사에서 궁예는 긍정적인 면보다 부하를 믿지 못하고 살인을 일삼는 폭군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역사가 승자인 왕건의 영웅담 위주로 기록됐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궁예의 사후에도 그를 따르는 성이 전국에 30여 곳이 넘었고, 이런 반란이 자그마치 17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보면 실제로 궁예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잔인하고 패역한 폭군만은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정말 잔인하고 타락한 왕이었다면 많은 병사들이 목숨 걸고 궁예를 따라 명성산에 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명성산 억새 평원 정상에는 주변의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팔각정이 서 있다. 그 옆에는 대형 '빨간 우체통'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 편지를 써넣으면 1년 뒤에 배달된다. 팔각정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길을 이어가면 삼각봉을 지나 명성산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다. 이제부터는 능선 길과 암릉이 시작된다. 제법 험하지만 사방으로 조망이 열려 산 아래 산정호수와 어우러진 장쾌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찾아가기>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에 자리한 명성산은 서울에서 승용차로 2시간 반이면 갈 수 있다. 의정부에 진입해 43번 국도를 따라 포천을 지나 운천에서 78번 국도를 타고 산정호수로 오면 된다.
*대중교통은 상봉·수유·동서울터미널 또는 의정부터미널에서 운천 행 버스를 이용한 뒤 운천터미널에서 산정호수 행 버스를 타면 된다.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에서 138-6, 138-9 좌석버스를 탄 뒤 종점인 산정호수에서 내려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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