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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역사를 간직한 영사정의 재탄생
300년 역사를 간직한 영사정의 재탄생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11.26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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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최고(最古)의 민가를 복원하다

▲ 영사정은 'ㄷ'형 안채와 'ㅡ'자형 행랑채가 나란히 놓여 위치하고 있어, 전체적인 집 모양을 보면 'ㅁ'자 구조로 이뤄져 있다. 조선시대 후기 경기도 민가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폐가처럼 방치돼 있던 300년 된 고택이 최근 제 모습을 되찾았다.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에 위치한 영사정은 2010년 3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7호로 지정된 후, 정밀 해체 및 실측 작업을 거쳐 2013년 10월부터 안채 및 행랑채 복원 공사에 돌입했다. 올해 9월 복원식을 가진 영사정은 경주김씨 의정공파 종중의 뜻에 따라 고양시에 기부됐다. 시민의 품으로 돌아간 영사정은 조선시대 후기의 민가 구조를 잘 보존하고 있어, 옛 선조들이 지녔던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는 명소로 손색이 없다.

취재 박천국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한 순간의 무관심으로 폐물로 취급받았던 영사정,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300년 역사를 간직한 최고의 보물로 다시 우뚝 서다”

고양시의 도움을 받아 아직 시민에게 공개되지 않은 영사정 안채와 행랑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고택을 복원하기 위해 사용된 재료들이 새 것이어서 마치 새 한옥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영사정 곳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대들보나 상량문 등을 통해 오래 된 건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으로 본 복원 전 영사정의 모습과 비교하면,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불과 몇 년 사이 고택에 생명의 기운이 맴돌고 있는 듯했다. 제 모습을 되찾은 영사정은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한 시민의 문화공간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영사정을 둘러보고 나오다 우연히 만난 경주김씨 의정공파 종중회 김덕경 회장의 동생이자 영사정 복원의 내막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김순경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조선조 숙종 35년에 건립된 제사 건축

영사정은 조선조 숙조 53년(1709년)에 지은 한옥으로 숙종의 둘째 계비인 인원왕후의 부친 경은부원군 경주김씨 김주신이 아버지 김일진을 위해 지은 제사 건축물이다. 당호인 영사정(永思亭)은 ‘영원히 잊지 않고 생각한다’는 뜻으로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남달랐던 김주신이 지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김순경 씨는 “이곳은 김주신이 조선시대 숙종의 장인인 아버지 김일진 선생의 제사를 지냈던 장소”라고 설명했다.
“영사정은 조선 숙종의 계비인 인원왕후의 아버지 김주신이 살던 집입니다. 김주신이 아버지 김일진의 제사와 살림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1709년에 건립된 곳입니다. 따라서 유래가 명확한 제사 건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사정의 가장 큰 특징은 안채와 행랑채가 나란히 놓여 ‘ㅁ’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집 마당에 서면 사방에 위치한 건축물에 둘러싸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영사정은 300여 년 전 민가의 건축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집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림들이 고택과 더불어 빼어난 절경을 이룬다.
“규모가 대단히 큰 고택에 속하지는 않습니다만,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입지 조건이나 ‘ㄷ’자형 안채와 ‘ㅡ’자형 행랑채의 구조 등은 영사정의 가치를 높이는 요인들입니다. 이 집이 제사로 사용됐지만, 실제로 살림집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조선 후기 살림집의 구조를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자료도 됩니다.”
특히 영사정 안채 마루는 30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복원 전에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복원 전 사진을 보면, 대청마루에서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이 2짝 판문으로 되어 있는데, 그 판문 사이에 기둥이 서 있다. 방 한가운데 거슬리는 기둥이 있었던 셈인데, 후손들은 불편함을 이유로 가문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한옥에 손을 대지 않았다. 옛것을 지키려는 명문가 사람들의 정신은 영사정 곳곳에 배어 있는 듯했다.
“이곳은 최근 10여 년 전까지 문중 후손들이 생활을 했던 집입니다. 일부 종갓집을 보면 생활하는데 불편해 개조를 하는데, 영사정은 300년 전 원형 그대로를 간직한 한옥이었습니다. 비록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한 집을 관리하는 것이 어려워 제 빛을 내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원형을 지키려고 했던 문중의 노력은 반드시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기울어가는 영사정을 지켜내다

▲ 행랑채의 모습. 현재 영사정은 전면 개방되어 있지 않지만, 체험 프로그램이 본격 시작되면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영사정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날이 머지않았다.
▲ 영사정 안채 내부의 모습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영사정은 단순히 오래 된 건물에 지나지 않았다. 일부 전문가들이 영사정의 가치를 알아보기도 했지만, 고택을 복구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김순경 씨는 선조들의 힘으로 세워지고 보존된 영사정의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보존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했다. 큰돈을 들여 고택을 복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문화재 지정이 반려되자, 고택 소유 및 관리 주체인 경주김씨 의정공파 종중회 사람들은 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선조의 흔적이 밴 집이라 오랜 세월을 거쳐 낡고 허름해졌지만 한옥을 무너뜨리고 새 건물을 짓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집을 보존하기 위해 고양시와 협의도 해보고 대학 교수가 와서 고택의 사진을 찍어간 적도 있지만, 백방으로 알아본 노력들이 전부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시간들이 지루하게 이어지면서, 방치 아닌 방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허물어져 가는 고택을 그대로 놔두는 것은 조상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몇 차례 문중회의를 거쳐 한옥을 해체하고 우리의 힘으로 복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종중에서 마련한 돈으로 고택 복구에 필요한 나무를 사들여 쌓아두기 시작했고, 목공들은 본격적으로 나무 손질에 돌입했다. 영사정 복구공사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 고택을 눈여겨보고 있던 한 사람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바로 영사정 복원의 숨은 일등공신인 한겨레건축사무소 최우성 소장이었다. 이때 최 소장은 종중을 대표해 공사장 현장에 나서게 된 김순경 씨에게 ‘문화재 지정’ 후 복원 공사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사실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무엇보다 복원 공사에 필요한 비용이 첫 난관이었죠. 종중이 소유하고 있던 땅을 팔아서 가까스로 공사비를 마련해, 목재를 구입해서 쌓아두고 본격적인 해체 작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저에게 와서 신축 결정을 미뤄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 역시 ‘문화재 지정을 위해 많이 뛰어봤지만 매번 허사로 돌아가자 여러 차례 문중 회의를 거쳐 나온 결정’이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워낙 ‘해보겠다’는 입장이 강경했고, 문중에서도 문화재 지정 후 제대로 된 복원 공사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건물을 헐지 않기로 한 것이죠.”
한 무명 건축사의 포기를 몰랐던 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영사정을 지키려는 문중의 노력이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점차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고양시에 가장 오래된 300년 된 고택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처지가 되었다는 소식에 ‘문화재 지정’에 대한 긍정 여론이 형성되면서, 고양시에서도 영사정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제가 알기로는 최 소장이 많은 고생을 했을 겁니다. 종중 차원에서도 지난 10여년 간 영사정을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 지정 탄원을 수차례 냈으니까요. 고양시 관계자와 경기도 문화재위원들, 관련 학자들에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죠. 그러던 중 경기도 문화재위원회의 최종 단계 심의에서 영사정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간의 기다림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총 예산 8억원이 투입돼 복원에 심혈을 기울이다

▲ 영사정 현판의 모습. 영사정은 '영원히 잊지 않고 생각한다'는 뜻으로, 이 가문의 남다른 효심을 보여준다.
▲ 대청마루 위 천장을 보면 한 눈에 봐도 오랜 세월을 간직한 상량문이 있다. ‘歲己丑 四月初’라는 문구를 통해 한옥의 건립 연도가 1709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된 영사정의 복원 공사는 원형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졌다. 경기도 고양시는 2011년 12월 영사정을 복원하기 위한 정밀 해체 및 실측 조사를 실시했다. 이는 복원 설계를 위한 근간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으로, 영사정 원형 복원의 핵심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김순경 씨는 “한옥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해체하는 작업을 통해 원형을 찾아나가야 한다”며 “만약 우리 문중만의 힘으로 했다면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3월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고양시는 문화재 원형 복원을 위해 경기도 문화재 현상 변경 심의와 문화재 전문가가 참여한 자문회의를 6번 정도 열었어요. 특히 해체 부재 중 사용할 수 있는 옛날 부재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최대한 재사용하는 방향으로 결정해, 원형에 가까운 복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그렇게 몇 가지 작업을 거쳐 작년 10월 총 사업비 약 8억원이 투입된 지상 1층, 연면적 127.4㎡ 규모의 영사정 안채 및 행랑채 복원 공사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영사정을 지키고 싶어했던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비로소 지난 9월 2일 복원공사 준공식을 가졌다. 시민과 고양 600년 범시민추진위원회 위원, 향토 사학자들과 각 기관 단체장 등 총 100여명이 제 모습을 되찾은 영사정 앞에 섰다.
준공식에 참석한 최성 고양시장은 “문화재 복원을 통해 고양 600년 역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현대인들의 전통 역사 문화 체험과 문화유적 답사의 기회를 넓힐 수 있어 100만 고양 시민들이 600년 문화행복도시로 한걸음 더 나가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특히 이날 행사는 복원된 영사정을 관계자 및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자리였지만, 문중 소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이후 첫 번째 공식 행사여서 그 의미를 더했다. 도 지정 문화재로 등재된 만큼 더 이상 문중만의 소유가 아닌, 국민의 유산으로 남기를 바란 것이다.
“저희 종중은 문화재 복원의 원활한 추진과 복원 후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토지 및 해체 부재를 고양시에 기증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가문의 명예를 위해 영사정 복원 공사를 시작했지만, 영사정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합심해 땀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의 유산으로 내놓는 것이 더욱 가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시민의 품으로 돌아간 영사정이 앞으로 고양시와 경기도를 대표하는 역사적인 명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준공식을 마친 영사정은 본격적으로 시민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고양시의 지원을 받아 전통역사와 문화를 교육하는 체험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복원된 영사정 앞에 서서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던 김순경 씨는 “시민의 품으로 돌아간 영사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전통의 우수성과 조상들의 지혜를 알리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새로 지은 한옥처럼 보이지만, 곳곳에 우리 조상들의 멋과 지혜가 숨어 있는 영사정 앞에 서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기분을 앞으로 많은 국민들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고양시에서 본격적으로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면, 아이들에서부터 어른들까지 누구나 찾는 관광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영사정이 복원되기까지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영사정을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확신합니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아무로 모르게 본 모습을 잃을 뻔했던 영사정. 하지만 전통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영사정은 결국 원형을 간직한 경기도 고양시 ‘최고(最古)’의 한옥으로 남을 수 있게 됐다. 영사정 복원은 건물의 원형을 되찾았다는 점뿐만 아니라, 개발의 논리에 밀려 그동안 쉽게 간과해왔던 전통의 가치를 재조명하도록 이끌었다는 점에서 오래도록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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