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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김언호 대표가 말하는 ‘책 읽는 사회’
한길사 김언호 대표가 말하는 ‘책 읽는 사회’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11.27 0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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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출판도시를 세우고 독서 부흥을 외치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국내 출판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다. 1975년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그는 자유언론 수호·실천운동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해직을 당해야 했다. 그 이후 출판사를 설립해 40년 간 한길만을 걸어온 인물이다. 한 권의 책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출판 현장에서 경험한 그에게 책의 의미는 남다르다. 3천여 종이 넘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음에도 그가 여전히 책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파주 헤이리마을과 파주출판도시 설립을 주도하고 최근 ‘파주북소리 2014’ 조직위원장을 맡은 김언호 대표를 만났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이용관

 
누군가 김언호 대표에게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주저 없이 “아이들 책 읽는 소리”라고 답한다. 그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바람 소리, 거문고 치는 소리와 마소가 풀을 뜯어먹는 소리도 아름답지만, 아이들이 책을 읽는 소리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생각으로 40년 가까이 독서운동에 앞장섰다.
그에게 독서운동의 의미는 희망이자 미래인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창의적인 사고를 심어주는 데 있다. 그가 파주 출판도시와 헤이리마을 조성, 그리고 최근 파주 북소리 축제를 여는 데 최선봉에 선 이유도 ‘책 읽는 사회, 책 읽는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그는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손을 잡고 와서 책을 보고, 책 향기를 맡고, 때로는 책들의 합창 소리를 들어보는 행사가 파주 북소리 축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책 읽는 소리가 지역과 국가, 사상과 인종 등 다양한 경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기를 희망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지식·콘텐츠 축제의 장

“출판사 모여 있는 출판도시는 독자들의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독자들이 책을 체험하고 책의 노래를 듣고, 책의 향기를 맡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한 시대에 책의 문화가 완성되려면 독자들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이는 김언호 대표가 파주 북소리를 여는 이유에 관해 언급한 말이다. 올해로 4년째를 맞은 파주 북소리는 해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매년 회를 거듭할수록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안정화되고 있고, 국제적인 행사도 펼쳐져 매년 방문객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
“파주 북소리는 에디터 스쿨, 국제출판포럼 등 이웃나라 출판인들과 함께 한다는 점에서 행사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아시아의 대표 축제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정도로 많은 프로그램을 보유한 축제도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거예요. 저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다양한 지식 축제’라고 표현합니다.”
실제로 파주 북소리는 명실상부한 전국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작년 한 해 50만 명이 다녀간 것은 물론, 올해는 축제 3일간 집계한 인원만 10만 명에 달했다. 그는 옅게 미소를 띤 얼굴로 파주 북소리 축제의 변화된 위상을 소개했다.
“우리 사회의 한 시민 축제로서 안정적인 위치에 섰다고 생각해요. 이번 행사 때도 온라인을 통해 행사가 많이 알려졌는데, 개막하는 날 도시가 마비됐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습니다. 심지어 합정동에서 파주로 가는 버스에 사람들이 몰려 차를 타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접했죠.”
행사의 주 타깃은 스마트 폰에 빠진 젊은 세대다. 스마트 폰을 잠시 내려두고 종이책으로 독서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지만, 여전히 종이책의 고유한 영역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책 속에 정제된 콘텐츠는 물론, 풍부한 감성과 상상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 나온 전자책이라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어린이들은 종이책으로 교육하고 읽혀야 합니다. 스마트 폰에는 몰라도 되는 정보들도 가득 차 있는데, 책의 경우 좀 더 선택되고 정갈한 지식과 정보, 그리고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삶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내용들이 담겨 있죠. 젊은이들의 독서량이 굉장히 떨어지고 있는데, 디지털 기기로 흡수하는 지식과 정보가 과도하면 패스트푸드를 다량 섭취하는 것처럼 해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을 가슴에 품자는 의도로 파주 북소리 축제를 열고 있죠.”
그는 책과 멀어지게 만드는 우리나라 교육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눈앞의 입시 경쟁에 시달려 장기적으로 사람에게 풍요로운 지혜를 선사하는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창의 교육’의 열쇠는 교과서나 문제집이 아닌 다독에 있는데도,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 현 세태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게 교육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창조적이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실제로 우리 교육이 잘 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도 고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왕성하게 책을 읽어야 하는데, 입시 문제가 고전 읽기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어요.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훈련하지 않으면 독서를 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이상주의에 불타는 출판인들의 유토피아

파주 출판도시는 김언호 대표의 주도로 1980년대 후반 출판인들이 모여 만든 공간이다. 그는 “이런 인프라는 전 세계에 없다”고 했다. 지금보다 독서가 활발했던 시절 ‘어떻게 하면 책이 우리 민족 공동체와 국가를 새롭게 건설하고 좀 더 도약시킬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파주 출판단지가 태동했다. 이른 바 그 당시 일부 출판인들이 모여 ‘책의 유토피아’ 같은 곳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것. 자유로가 건설될 무렵, 출판인들은 출판도시의 위치로 경기도 파주를 선택했다. 출판도시를 현실로 이루는 과정에서 헤이리마을도 구상이 됐다.
“파주 출판도시는 이상주의에 불타는 출판인들이 모여 유토피아를 만들어보자는 이상주의적인 사고의 발로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헤이리마을도 구상이 됐죠. 출판도시가 문화산업적이라면, 헤이리는 좀 더 문화예술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그러니까 헤이리는 여자, 출판도시는 남자로 비유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허허벌판에 세운 책의 도시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지 않았다. 교통이 불편한 데다 주변에 편의시설이 부족해 출판인들이 꿈꿨던 유토피아가 아닌, 고립된 책의 무덤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파주 일대가 개발되면서 상업 시설이 들어섰고, 자연스럽게 교통이 편리해기 시작했다. 그는 “출판도시 2단계 공사를 기점으로 점차 책의 도시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회상했다.
“허허벌판에 만든 책의 도시는 한동안 고독했습니다. 이곳이 사람들로 채워지기까지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죠. 세월이 흐르면서 교통이 편리해지고 주변에 상업시설도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파주 출판도시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대정신의 산물인 출판도시는 어찌 보면 출판업계의 암울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좋은 책만 만들어서는 출판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업계에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장소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가 기회를 낳는다’는 말처럼, 출판업계의 위기의식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책의 도시’를 조성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모든 제도가 잘 운영된다면,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좋은 책만 만들면 됩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했죠. 제가 출판단지에 책의 전당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책이 너무 일찍 죽어가고 있어요. 50~100년 간 책꽂이에 있어야 할 책이 10~20년 만에 사라지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산더미처럼 갇혀 있는 책들을 숨 쉬게 하자는 취지로 기존 공간에 새로운 개념의 책 읽는 놀이터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의 숲’인데 이곳의 많은 책들은 평생 읽고 연구한 학자들의 장서나 출판사에서 기증한 책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지혜의 숲’은 그런 점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동 서재 같은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출판도시를 통해 책의 빛나는 모습과 책의 합창 소리, 책들의 향기를 맡기를 바랐다. 책과 함께 한 좋은 추억만으로도 책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차세대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에게 책과 함께 한 추억들을 쌓아갈 기회를 준다면, 책의 존재감을 가슴 깊이 새기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책은 누구든지 만지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혜의 숲은 개방형 책 읽기가 가능한 곳이기도 하죠. 그렇게 책의 합창소리를 듣고, 책들의 향기를 맡으며, 책의 빛나는 모습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아이와 손을 잡고 이곳에 오는 게 중요해요. 어릴 때부터 책의 빛나는 모습이나 책의 향기, 그리고 책의 합창소리를 자주 경험하도록 하면 책의 존재감을 강하게 인식하게 되죠.”
그는 서점뿐만 아니라 공공 도서관이 더욱 늘어나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공공 비용으로 국가에서 한데 책을 모아서 누구든지 와서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 만약 도서관이 여의치 못하면 민간 차원에서 ‘지혜의 숲’ 같은 공간을 만들 필요성도 있다고 조언했다.
“안 팔리고 잠자고 있는 책들이 너무 많아서 발전소에서 책을 태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과거 역사에서 나치와 진시황이 책을 태운 것처럼, 책의 생명을 무분별하게 죽여선 안 됩니다. 책의 생명을 ‘리사이클링’하는 운동이 시급한 이유입니다. 지혜의 숲처럼 공동 서재 같은 공간이 생기면 책을 모아놓고 책 읽는 습관과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해요.”
책을 읽는 사람들만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믿는 김언호 대표. 책을 잃지 않는 사람은 독단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출판도시란, 민주주의의 기본 양식을 담은 그릇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민주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일상적으로 읽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아는 것에 관대하고 넓은 사고를 할 수 있으니까요. 때문에 책을 읽는 사람들만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위해 몸부림치는 인생은 계속된다

 
출판업계의 대표 인사인 김언호 대표에게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된 바 있던 출판계의 사재기 문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이런 문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경제학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어요. 좋은 책과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좋은 정책을 펼치면 사재기 문제는 저절로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자기만 살겠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좋은 일을 통해서 저절로 나쁜 일들이 소멸되게 만들자는 게 제 생각이에요. 파주 북소리, 지혜의 숲 등을 시작으로 좋은 문화가 확산된다면, 나쁜 현상들이 저절로 순화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16년이면 한길사가 설립 40주년을 맞는다. 그는 학창 시절 한길사 책을 구입한 독자들이 어느 덧 장년층이 된 모습을 보면, 새삼 출판사의 역사를 되짚어보게 된다고 했다. 그는 “사회의 중역을 해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책을 만드는 중요성을 재차 떠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금도 길을 가다 보면 한길사 독자들을 많이 만납니다. 어느 덧 장년층이 된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책 만드는 일이 새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회인들에게, 우리의 미래가 될 후배들에게 그들의 영혼을 밝게 만들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을 만들자는 각오도 다지게 됩니다.”
지금까지 그는 한길사의 이름으로 3천여 권의 책을 만들어 왔다. 앞으로도 그는 대중적인 책보다는 100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이 되고, 기록이 되는 책을 만드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한길사는 대중적인 책을 만드는 재주는 없다고 봐요. 수준 높은 인문학 서적을 중심으로 50년 아니 100년 후에도 기억이 될 만한, 기록이 될 만한 책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도 출판인로서의 생활을 일기로 적는다는 김언호 대표. 그는 3천여 권의 책을 만든 기업인보다는 한 권의 책을 빛나게 하기 위해 노력한 출판인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듯했다.
“얼마 전에 <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라는 책을 냈습니다. 2013년에 쓴 1년간의 일기죠. 그것을 통해서 출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왜 책을 만들고, 왜 독서운동을 펼치는지’에 대한 저 나름의 답을 내놓은 셈이죠. 외부에서는 출판의 심오한 가치를 잘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런 책들을 통해 출판인과 편집자 등 책 만드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역할도 하고 싶습니다. 사실 지금도 매일 일기를 쓰는데, 그러한 과정이 여전히 저에게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출판인으로서 책을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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