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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 & 헬렌 오이예미가 말하는 ‘창작의 숙명’
작가 김영하 & 헬렌 오이예미가 말하는 ‘창작의 숙명’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11.30 1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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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작가와 영국 신예 작가의 문학 토크

 
파주 북소리 축제를 맞아 기존에 시도되지 않았던 재밌는 북 콘서트가 개최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김영하 작가와 영국의 신진 작가인 헬렌 오이예미가 한 자리에 만나 소설과 소설가의 삶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국적이나 인종, 세대도 다른 두 사람이지만, 소설가의 삶과 고충을 공감하는 모습에서 마음의 빗장을 풀게 만드는 문학의 힘도 엿볼 수 있었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맹석호

이번에 첫 방한한 헬렌 오이예미 작가는 2013년 영국의 유서 깊은 문예지 <그란타>가 선정한 ‘영국 최고의 젊은 작가들’ 20인에 선정돼 주목을 받았다. 오이예미 작가는 이중자아라는 존재를 통해 자신이 겪은 청소년기의 불안, 소외, 혼란을 다룬 첫 소설 <이카루스 소녀>로 영국 문단을 사로잡은 후 <와이트 이즈 포 윗칭>으로 셜리 잭슨 상과 서머셋 몸 상을 수상했다.
30세의 나이로 5권의 소설과 2편의 연극을 쓴 그녀는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 남부에서 자랐다. <이카루스 소녀>는 18세에 대학 입시를 준비하다 집필한 그녀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김영하는 오이예미 작가와 같은 신진 작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작가로 성장한 소설가. 대표작으로는 <검은 꽃>, <빛의 제국>, <살인자의 기억법>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대중성은 물론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은 많은 청취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각각 한국과 영국에서 인정받은 두 작가는 소설가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서로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나갔다.

문학 작품은 번역을 통해 완성된다

▲ 김영하 작가
김영하 작가는 첫 방한한 헬렌 오이예미 작가의 부담감을 덜어주려는 듯, 타 언어권 국가에서 작가로 선다는 것의 의미를 언급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문화와 언어가 다른 청중 앞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의미가 잘 전달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먼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문학의 속성은 집에서 혼자 책을 읽는 개인적인 행위입니다. 그런데다 모국어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언어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행사(작가 대담)를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오이예미 작가가 저에게 ‘떨리지 않냐’고 물었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저의 홈그라운드이고 모국어를 사용해서 제 말을 금방 알아듣는 청중들이 있기 때문이죠. 반면, 오이예미 작가는 영어로 하는 말이 잘 전달될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강연을 할 수밖에 없어요. 저도 외국에 나가서 제 소설을 이야기할 때면 머쓱한 기분이 듭니다. 제가 잘 드는 비유가 있는데, 외국어로 번역된 소설의 저자가 된다는 것은 오래 전에 헤어진 여자 친구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네 아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 일례로 폴란드어로 번역된 제 소설은 제가 읽을 수도 확인할 수도 없죠. 그러니까 저자는 모르고 청중은 다 아는 셈이죠. 이렇게 오이예미 작가처럼 외국인 앞에 선다는 것은 외로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하 작가는 소설이 타국어로 번역된 것의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번역된 소설이 있기에 문학의 지평을 넓힐 수 있고, 자국 문학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을 한다는 것, 그리고 번역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만약 번역된 소설이 없다면 읽을 수 있는 문학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겠죠. 다른 나라의 소설을 읽음으로써 문학과 상상, 이상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자국 문학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고, 작가 역시 타국의 문학을 통해 생각이 넓어지고 깊어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김영하 작가는 체코의 작가이자 시인인 밀란 쿤데라의 주장을 인용해 ‘문학 작품은 번역됨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고 했다. 모국어에 대한 과도한 맹신은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줄어들게 하는 반면, 번역된 작품을 통해 재발견과 가치의 재공유 과정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우리 문학의 경우 말을 잘 알고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자신감의 맹점에 빠질 수 있어요. 세계 문학사를 돌이켜보면 번역되어서 재평가를 받은 작품들이 있죠. 애드가 앨런 포는 미국에서 처음 나왔을 때보다 프랑스에서 재발견됨으로써 가치가 재공유된 경우입니다. 작가는 굉장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작품을 쓰는데, 자국 문학이라는 울타리 안에만 있다 보면 한 번에 빠른 판단을 내려 작품의 생명력이 쉽게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죠. 저는 쿤데라의 말에 동의하기 때문에 서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이런 행사를 통해서 독서의 의미가 더욱 풍성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는 이야기의 주인이 아니다

▲ 헬렌 오이예미 작가
두 사람의 공통점은 데뷔 초기부터 문단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차세대 주자로서의 부담감이 상당했을 터. 언론이나 독자의 관심 혹은 비판이 두 사람의 작품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는 것은 작가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수도 있다.
“만 26세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소설을 썼어요. 당시에는 뭘 쓰면 되고 뭘 쓰면 안 되는지 몰랐던 루키였던 시절이죠. 문학 수업을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나는 대로 적었던 것 같아요. 남성 호르몬이 충만할 때여서 죽음이나 섹스 등이 작품 속에 드러납니다. 굉장히 건조한 문체로 쓴다는 것에 집중했고, 그 작품이 주목을 받으면서 ‘소포모어 콤플렉스’를 의식해 다음 작품을 쓰기까지 힘들었어요. 다행스럽게도 1990년대 후반에는 사회적으로 새로운 문학에 대한 기대가 높았을 시기여서 제가 설령 작품을 허술하게 쓰더라도 인내하면서 다음 작품을 기다려주는 분위기가 있었죠. 그런 덕분에 소포모어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작가로 설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김영하)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보다>를 보면 대학 졸업 후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점을 보고 나서 진로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는 구절이 나오잖아요. 저도 첫 번째 작품이 나왔을 때 점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그 당시에 점술가가 저를 오랫동안 쳐다보다가 ‘No’라고 했죠. 언론 쪽으로는 괜찮겠다고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한 정치학 교수님이 제가 소설을 쓴다고 하니까 ‘그건 너무 경박하지 않나’고 말을 하셨던 적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어떤 면에서 보면 항상 문학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살았죠.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보고 살고 있었으니까요. 원하는 것을 하고 쓸 수 있는 자유를 느끼며 사는 방식이 작가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헬렌 오이예미)
대담 분위기가 모르익자, 문학과 작가의 범주 안에 속한 두 사람의 공감대가 대화 속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시대의 분위기와 나이에 따라 인생관이 변하는 것처럼, 작가가 작품 속 캐릭터를 설정하고 관계를 구성하는 원칙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작품의 이야기와 캐릭터는 결국 작가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저도 작가가 이야기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는 그런 생각이 안 들게 되더라고요. 인생에 대한 관점이 변한 만큼 이야기에 대한 관점도 변한 셈이죠. 자기 이야기의 주인이라는 생각보다는 글이 흘러가도록 잘 연결해주는 사람일 것 같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헬렌 소설을 보면 작가로서 그런 부분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이야기를 어떻게 다뤄야 하고, 가상의 인물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를 고민하는 것은 저나 헬렌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김영하)
“김영하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저는 책을 쓸 때마다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요. 하나의 묶음으로 보지 않고 개별적으로 본다는 말이죠. 책 하나를 쓸 때마다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어떤 캐릭터를 개발한 것인지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써요. 처음에는 캐릭터나 이야기 설정을 잘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글을 써 나갈수록 ‘메시지는 메시지일 뿐’, 즐기면서 쓰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헬렌 오이예미)

누구나 처음에는 어떤 작가가 될지 모른다

작가의 길에 들어서면 누구나 창작의 숙명에 맞서야 한다. 작가의 최대 화두가 쓰는 것, 즉 작화할 이야기를 놓고 고뇌와 갈등을 거듭해야 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위안과 힘이 된다. 두 사람이 지금까지 천착해온 문학적 주제와 표현 방식에는 차이점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결국 이들의 작가정신은 겉의 결과 무늬가 다를 뿐 본질적인 무게와 크기는 같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작가는 자신이 어떤 작가가 될지 모릅니다. 첫 작품을 썼을 때 어떤 작가가 될지를 안다면 거짓말이겠죠. 10~20년 정도 지나서 돌아봐야 어떤 작가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어떤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하지 않기 위해서예요. 마술사의 행동처럼 제가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시선을 끌지만, 그 뒤에서는 중요한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죠. 제 소설 속에 나오는 폭력, 죽음, 파괴, 섹스 등은 갑자기 다른 곳에 가서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죠. 어려서부터 이사가 잦았던 탓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법, 그리고 과거를 잊는 법을 고민해온 경험들이 작품 속에 투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김영하)
“저도 쓰는 것을 굉장히 즐기는 편이에요. 그런데 저는 시작하면서 끝날 때까지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지만요. 작년에 카이로의 바자회에 간 적이 있는데, 눈에 띄는 열쇠를 모으다 보니 어느새 쇼핑백에 열쇠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것을 기반으로 열쇠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됐죠. 이런 식으로 다음 작품의 구상이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헬렌 오이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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