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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부른 깡통전세… 임차인의 대처법은?
자살 부른 깡통전세… 임차인의 대처법은?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4.12.23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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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두 자녀 둔 장애인 가장의 비극적 죽음

지난 7월 31일,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아내와 두 자녀를 둔 장애인 가장이 분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외마디 비명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 그는 과연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취재_ 박현희 기자 / 사진_매거진플러스

“전봇대나 벽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동산 중개 전단지… 혹시 채무 초과 상태의 불량 부동산은 아닌지 꼼꼼히 체크하고, ‘보증금 2000여만 원은 최우선 변제되기 때문에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에 절대 속지 말자!”

 
지난 7월 31일 낮 12시 50분, 2급 지체장애인 손모 씨가 아내와 두 자녀를 두고 분신해 사망했다. 이날 오전, 손씨의 아내 박모 씨와 두 자녀는 2500만원에 전세로 살던 인천 중구 신흥동의 한 아파트에서 강제퇴거 조치를 당했다. 아내에게 강제퇴거를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정오가 지나 아파트로 돌아온 손씨는 자신이 타고 있던 휠체어 뒷주머니에서 하얀색 플라스틱 통을 꺼냈다. 그리곤 14층에 도착하자마자 인화물질을 몸에 끼얹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연기가 자욱한 복도에서 손씨는 비명을 지르며 생을 마감했다.

피 같은 전세금 날려 돌이킬 수 없는 선택까지

이 사건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손씨가 109㎡ 규모의 수도권 지역 아파트 전세를 어떻게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2500만원에 얻을 수 있었는지, 전세보증금은 왜 돌려받지 못했는지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특히 우리 법에는 세입자를 보호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있다. 제8조가 명시하고 있는 ‘임차인에 대한 최우선변제권’에 따라 집주인이 주택을 담보로 아무리 많은 대출을 했더라도, 그 주택이 처분되면 세입자는 일정 금액을 최우선으로 가져간다.
인천의 경우 2010년 7월부터 2013년 12월 사이에 이뤄진 임대차계약은 2200만원까지 보장되며, 그 후에 이뤄진 계약은 2700만원까지 보장받는다. 한 가정의 가장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이른바 ‘깡통전세’ 때문. 깡통전세는 해당 아파트에 대한 전세보증금과 대출을 합한 금액이 매매 가격을 초과한 매물이다. 손씨가 세 들어 살고 있던 아파트 역시 깡통전세였다.
집주인 정 모 씨는 부천우리새마을금고에 1억7천300만 원 가량을 대출해 2006년 11월 6일 손씨가 세 들어 살던 아파트를 1억6천만 원에 매입했다. 하지만 정씨는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해 대출 이자를 갚지 못했고, 채권자인 부천우리새마을금고는 담보권을 행사하며 지난해 봄 인천지방법원에 아파트 경매를 신청했다. 법원은 지난해 6월 20일 임의경매 개시 결정을 내렸다. 손씨는 경매 개시 결정이 나기 두 달 전인 4월경 정씨와 주택임대차계약을 맺었다. 추측하기로 집주인과 부동산업자로부터 보증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말을 믿고 계약한 것일 테다.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소액 임차보증금이 보장된다고 믿었던 임차인의 입장에서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임차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

대법원의 판례상, 임차인이 소액 보증금에 대한 최우선변제권을 무조건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2005년 5월 13일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채무 초과 상태에서 채무자 소유의 유일한 주택에 대하여 임차권을 설정해 준 행위는 채무자의 총재산 감소를 초래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고, 따라서 그 임차권 설정 행위는 취소의 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후에도 그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일관된다.
주택의 시세보다 집을 담보로 대출한 금액이 더 많은 ‘채무 초과’ 상태이고, 경매가 예정돼 있거나 예견되는 상황에서 시세보다 훨씬 적은 전세금으로 입주한 경우 ‘채권자에 대한 사해행위’에 해당돼 주택임대차계약이 무효가 된다. 당연히 세입자가 갖는 최우선변제권도 효력을 잃는다. 손씨가 세 들어 살던 아파트 역시 이러한 요건을 충족했다. 그렇다면 손씨는 이 같은 사실을 몰랐을까.
정씨와 손씨가 임대차계약을 한 곳은 A공인중개사였다. A공인중개사는 인천 지역 공인중개사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였다. 인천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전단지로 광고하는 부동산 중 시세보다 훨씬 싼 것들은 대부분 문제가 있다”라며 “세입자가 최우선변제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례도 대부분 그런 전단지를 통해 집을 얻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임대차계약을 할 때는 부동산업자가 건넨 명함까지도 꼼꼼히 챙겨봐야 한다. 깡통전세를 알선해주는 부동산업자 중 상당수는 금융기관이 위탁한 ‘대출상담위탁법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업자들이 집값보다 대출이 더 많은 깡통주택을 중개하는 이유는 역시 ‘돈’ 때문이다. 최우선변제권을 악용해 이득을 챙기는 것이다. 한 부동산 법률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깡통주택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는 단번에 수백만 원의 수수료를 챙긴다.
이는 법적으로 공인중개사가 받을 수 있는 수수료율인 거래가의 0.3~0.6%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 것이다. 집주인 역시 돈 때문에 이런 일을 자행한다. 머지않아 경매에 들어가 한 푼도 건지지 못할 상황에서 업자가 구해 온 세입자의 전세보증금 중 일부라도 받으면 이득이기 때문이다.
깡통전세로 인해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올 1월부터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다. 주요 내용은 보증금을 우선 변제받는 세입자의 범위를 넓히고, 변제받는 보증금의 금액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여전히 깡통전세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임차인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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