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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은이 만난 퀸-피상순 원장
김다은이 만난 퀸-피상순 원장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5.01.13 0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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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인 자’의 불행을 딛고 스스로 당당하게 선 거목, 
타인의 불행을 걷어내는 빛나는 고통의 연금술사
                     
안산우리정신건강의학과 피상순 원장

 
가슴 아픈 이별, 우울증, 알코올중독증,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정신적 불행! 한국 여성들은 이들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몸을 위해서는 부지기수로 병원을 찾으면서도, 진작 정신은 너널너덜해진 상태로 끌어안고 견디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대한민국이 압축 성장을 거치다보니, “우리 사회 전체가 정신분열증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하는 정신과 의사가 있다. 30대 젊은 나이에 들이닥친 불행을 극복하면서 타인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그래서 우리 사회의 정신증을 치유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하고 묵묵히 봉사하는 이화여대 외래교수이자 안산우리정신건강의학과 피상순 원장!
김다은 교수가 12월의 퀸인 그녀를 만나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글 김다은(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작가) 사진 양우영 기자  

김다은(이하 생략) : 정신과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
피상순(이하 생략) : 서울에 상경하여 혼자 자취하고 공부하던 학창 시절에 열병을 심하게 앓았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3선 개헌으로 인한 심한 실망감과 아버지의 죽음이 정신과를 선택하는 터닝 포인트가 됐다. 다행히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성격에다, 특히 힘들어하는 친구부터 달래 놓고 내 공부하는 식이었으니, 맞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남의 고민 듣느라고 나는 시험을 망치고 떨어지기 예사였다. 앞서 가기보다 같이 가려고 했던 것인데, 뒤처져 따라갔다고나 할까. 

정신과 의사이지만, 당신의 인생에서도 극복하기 힘든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불행이 사람을 가리겠나. 전문의 1년 차였던 해에, 중국 연변학회에 참가하기 위해 순천에서 자료를 찾아 돌아오는 길이었다. 피곤했는지, 졸음운전을 했던 모양이다. 얼핏, 뒤에서 트럭이 오는 것을 보고 가속페달을 밟았는데, 맞은편 벚나무를 관통하고 말았다. 눈을 뜨니 운전석에 오두마니 앉아 있었는데, 머리에서 끈적거리는 것이 흘러내렸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마지막이구나’ 싶었다. 김다은 교수가 보기에도, 내 모습이 조금 다르지 않은가. 그때, 30대에 허리가 꺾여버렸다. 

30대라면 여성으로써 가장 아름다운 때인데, 그런 불행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이전의 나는 워낙 씩씩해서 도리어 거만하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아마 겸손하라고 허리를 꺾어 놓은 것 같다. 법정스님께서, “‘아름다운 장미에 웬 무지막지한 가시가 달려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렇게 미운 가시에 어쩌면 저토록 아름다운 장미가 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했다. 교통사고로 죽었을 수도 있었기에, 남은 생은 가시 속에 피는 장미처럼 살아가기로 했다. 남은 생은 덤이 아닌가! 그래서 전문의 1년차에 죽었으면 못할 일과 봉사를 더 열심히 하게 됐다. 아참, 멀쩡할 때는 독신녀로 있었는데, 그 사건 이후 안 입던 치마도 입고 했더니, 결혼까지 하게 됐다. 하하아.  

당신에게 ‘꺾인’ 느낌은 전혀 없고, 당당한 거목(巨木) 같다. 환자들에게도 그렇게 비칠 것이다. 주로 어떤 환자들을 상담하는가? 정신과의사로서 겪는 고통도 이야기해 달라. 
이전에는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많았지만 약이 좋아져 외래 통원을 하게 되자 병원을 찾는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반면에 IMF 이후에는 알코올중독자가 늘어났다. 내 병원에는 정신분열증 환자들과 알코올중독증 환자들이 있다. 그들은 놀라우리만큼 순한 성격인데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충동 조절을 못하고 의사의 지시를 무시하기도 한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경험으로는 어느 의심증 환자가 집요하게 열 번이나 나를 신고한 적이 있었다. 형법 절차상 경찰에 수차례 드나들어야 했고, 병원도 덩달아 조사를 받았다. 정신과의사이니 잘 견뎌내야 했다. 휴 ~, 물론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 또 다른 경우로는, 상담하던 환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모든 직업에 애로가 있지만, 정신과의사라는 직업의 고통이 그렇게 큰 줄 몰랐다. 내가 예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상상력이 뛰어나서 그런지 보통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혹여 정신증도 그런 측면으로 바라볼 수는 없는가?
한 고등학생이 “학교가 죽었다”며 등교를 거부하고 집안에만 박혀 있다가 병원에 오게 되었다. 막상 상담을 해보니, 시 쓰기를 좋아하고 건강한 정신 상태였다. 부모는 내 의견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끊임없이 굿을 했다. 학생은 그런 굿거리를 싫어해서 더 움츠러들었다. 학생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병원 밖으로 외출해서 막걸리를 한잔 마시고 싶다고 했다.
부모가 허락할 리 없기에, 내가 사회복지사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몰래 나가 심층 상담을 했다. 그 외출 후, 그는 격리병동에서 개방병동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한 청소년 문학상에서 수상을 하게 되었다. 상을 타니, 부모는 그제야 그가 건강한 상태라는 내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비범함을 비정상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나중에 그는 나에게 100편이나 되는 시를 써서 보내줬다. 나를 사랑하게 될까봐, 답장은 안 해줬다. 하하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싶어도 정신과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안타깝다. 주홍글씨가 찍힐까봐 다른 과 병원들에서 시간과 돈을 허비하다가 마지막 단계에 정신과를 찾는 경향이 있다. 최진실 씨의 자살사건 이후부터 정신과의 문턱이 낮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다. 최근 영향력 있는 연예인들, 가령 기부왕인 김장훈 씨의 우울증 고백이나 이경규 씨의 공황장애에 대한 고백이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정신증 진단(F 코드)을 받으면 실손 보험비가 나오지 않는다. 치료 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보험계약사로부터 보험을 해약하라는 압력을 받거나 암보험을 들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정신과학회가 보험회사를 상대로 재판을 한 적이 있는데, 지고 말았다. 하루 빨리 정부차원에서 국민을 계몽하고 보험 대책도 세워야 한다.    

여성의 정신적 고민으로 넘어가서, 부모가 아이를 잘 기르는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 달라.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부모들이 까꿍까꿍하면서 기꺼이 퇴행을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시기가 오면 부모들은 갑자기 자신의 의견을 강요한다. 부모들은 퇴행을 멈추지 말고 계속 아이 수준에 맞게 제대로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크고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으면 아이의 야성성을 남겨두자. 아이들은 또래와 싸워도 보고,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길도 잃어보고, 소매치기도 당해 봐야 한다. 야성성을 남겨 두어야,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개발하는 힘이 생긴다. 요즘 유행하는 ‘꽃미남’이라는 표현에 매혹되어, 아이들을 너무 약하고 부드럽고 길들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아이에게 칭찬하라고 하면 칭찬할 것이 없다고들 하는데,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계속 칭찬하면 된다.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거나 직장을 가지면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기 때문에, 여성들이 점점 아이를 낳지 않는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외국에서는 주(州)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Adult School(성인학교)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 혼수, 부모가 되는 준비를 위한 오리엔테이션이다. 우리나라도 (교회나 문화센터의 소규모 부모교실이 있긴 하지만), 정부차원에서의 질 좋은 프로그램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생의 중요한 결정 앞에서 대처할 방법을 모르다보니, 일방통행의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 양쪽이 공존할 수 있는 정책과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아는 한 소아과 의사는 오전에는 진료하고, 오후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을 붙이고 문을 닫는다. “오후에는 저희 아이들을 돌봐주어야 하기 때문에 옆 병원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인디안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국의 어머니들도 뭉치기는 하는데, 그 방법이 좀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가정주부들의 결속이 직장을 가진 엄마의 아이를 그룹에서 소외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오로지 내 아이만을 위한 결속, 그런 이기심에 의한 결속은 당장에는 좋은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런 식으로 아이를 보호하고 영향을 미치면, 결국 강남에서 떠도는 말로 “엄마, 내 마누라와 잠자리해도 돼?”라고 물어보는 의존적인 아이로 키우게 된다. 의식이 있는 엄마라면, 그런 무리에 도리어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너를 교육한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알리면, 아이도 흔들리지 않는다. 

안산은 세월호 사건의 핵심인 안산고가 있는 도시이다. 정신과의사로써 어떻게 받아들였나?
세월호는 우리나라의 여러 문제들이 압축된 사건이다. 마치 어린 시절의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져 정신증으로 발현되듯이, 우리나라가 안고 있던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져 드러난 사건이다. 이 사고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정신증 환자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도 무의식을 의식화해야 할 시기이다. ‘어떻게 잘 되겠지’라는 요행심이나 안전에 대한 불감증, 그리고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남 탓’을 하는 습성들이 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잘못 되면 내 노력이 부족하다는 생각보다 ‘누군가’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분노가 생기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 전체가 정신분열증이나 조울증, 그리고 성공 중독증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을 겉으로 명료하게 드러내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봉사를 많이 하신다고 들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겠지만, 오늘은 이야기 좀 해 달라. 안산고와 관련된 봉사도 있는가?
영등포 요셉의원은 자원봉사자들이 진료하고 후원금으로 약을 사서 치료하는 곳인데, 매월 진료를 나간다. 파고다 공원과 독립문 앞에서 노숙자 의료봉사를 하다가, 최근에 조계사에서 그 일을 하고 있다. 간질우 환자들을 위한 장미회 모임에 20여 년간 자원봉사자로 참가하고 있다. 네팔에 비타민과 간질약을 보내는 일에도 동참하고 있지만……봉사라기보다, 함께 나누는 일이다. 아마 내 쪽이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세월호와 관련해서는 고민이 많다. 단원고 학생들의 학부형과 상담한 적이 있다. 숱한 봉사자들이 최선을 다했으니, 나는 입에 올릴 정도도 아니다.    

정신증이 생기면 정신과를 찾아가야겠지만, 정신증을 미리 예방하는 방법을 조언한다면?
남과 비교하지 말자. 비교하면 부자유하게 되고 우울해진다. 나는 나다! 그리고 나를 스스로 기쁘게 하기 위해 가꾸고, 에너지를 충전시킬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나면 빠르게 자신에게로 돌아올 줄도 알아야 한다. 운동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특히 자신이 하는 일을 노동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노동은 억지로 하는 것이고, 일은 기꺼이 하는 것이다. 자아실현의 기준을 타인에게서 찾지 말자. 꼭 얼마라도 돈을 벌어야 자아실현이라고,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 놓고 식당가서 몇십만 원 받는 일을 하는 이를 본 적 있다. 아이를 기르고 가정을 가꾸는 일이나 나가서 직장 일을 하는 것이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각자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일에 기쁨을 느끼며, 자신을 노동자로 전락시키지 않아야 한다.

 
당신은 살아가면서 무엇을 할 때 행복하다고 느꼈나?
남편은 우리가 만난 날을 기념하여 매년 내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 준다. 그 정성과 배려가 큰 행복감을 준다. (그 보답으로 내가 무엇을 해주냐고요?) 하하, 내 성격은 매우 활발한데, 남편이 다소곳하고 수줍어하는 내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일종의 이벤트를 한다. 눈을 내리깔고, 약간 얼굴을 붉히며, 봉숭아 물들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척(!)한다. 하하! 

당신은 ‘올해의 이화인’으로 선정되었는데,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해 달라.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30년이 지난 시점에 각 과마다 한 명씩을 선정해서 주는 상이다. 특기 하나 때문이 아니라, 졸업 후 30년 동안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점검하여 주는 상이랄까. 2014년에 약 40명의 ‘올해의 이화인’이 선정되었는데, 한꺼번에 훌륭한 친구들을 얻게 되어 무엇보다 기쁘다. 다들 예쁘다. 마음이 더 예쁘다. 이 나이에 웬 복일까!  

마지막으로 퀸으로써 여성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우리 문화가 여성을 폄하한 탓에 여성들도 자신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정신증을 치료할 때도 남자가 아프면 집안에서 경제적 지원을 끝까지 하고, 여자가 아프면 치료를 하다가 중단하고 요양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일상생활에서도 여성이 스스로를 폄하하지 말고 주체적으로 생활해 나갔으면 좋겠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주말에 남편과 외출하지 못한다고 불행해할 필요가 없다. 남편은 주중에 일하느라고 매우 피곤하다. 남편이 주말에 쉬고 싶어하면, 혼자 혹은 아이와 함께 즐겁게 외출하면 된다. 남편이 같이 가지 않는다고 불행하다면, 기쁨의 주체가 내가 아닌 것이다.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김다은 교수는...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이화여대 불어교육과와 동 대학원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파리 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1억 고료 제3회 국민 문학상에 장편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가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및 창작집 ‘금지된 정원’ ‘쥐식인 블루스’ ‘모반의 연애편지’ ‘훈민정음의 비밀’ ‘이상한 연애편지’ ‘러브버그’ ‘위험한 상상’과 문화 수필집 ‘너는 무엇을 하면 행복하니?’, 그리고 문화 칼럼집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이 있다. 서간집 ‘작가들의 연애편지’ ‘작가들의 우정편지’ ‘작가들의 여행편지’를 엮어냈다. 프랑스어 소설 ‘Imagination dangereuse' 'Madame'을 발표했으며, 번역서 ‘다른 곶’ ‘에쁘롱’ ‘모데르니테 모데르니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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