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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洪水를 기다리며
차라리 洪水를 기다리며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5.01.26 2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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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시

조희길

어찌되었든
글이 둥둥 떠다니는 물길이 그립고

차라리 홍수가 세상을 뒤덮어

누우런 황소가 겁에 질린 채
순한 눈망울 껌뻑이며
어허야,
기우뚱 기우뚱 떠내려가고
뿌리째 뽑힌 나무등걸이며
깊은 산골짝에서 밀려내려 온 바우들까지
앞 거랑을 가득 채우고
넘실넘실
위태롭게
통째로 굴러간다

팔뚝만한 구렁이가
쏟아지는 폭우 사이로
어슬렁 어슬렁
땡감나무 아래로 기어가는

얘들아! 왕뱀이다!
빨리빨리 오너라!
가늠할 수 없는
공포와 분노

곡괭이며 수굼포로
닥치는 대로 내리쳐서
잿간 앞 처마 밑 지글지글 구웠어
고등어 속살 같은 살점
무서워서 손댈 수 없는 살점이
툭툭 떨어지는

여섯 살쯤이거나 일곱 살에
처음 만났던
매캐한 연기속의 열대림
타잔이 살고 있을
정글 같은
미지의 세계여

사십여 년 훌쩍 지나
도착한 세상이
도무지 편치 않고
이렇게도 숨 막히는

분명하구나
오늘
이 땅은
밀림 속 수풀 우거진 곳
박제된 타잔이 울부짖고 있는
정글이
틀림없다

* 거랑 : ‘내’의 사투리
* 수굼포 : ‘삽’의 사투리

시인 조희길
- 경영학박사
- 문학세계 등단
- 제8회 호국문학상 수상
-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
- 저서 : 「나무는 뿌리만큼 자란다」 외

사진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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