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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羊)띠 해, 양 이야기
양(羊)띠 해, 양 이야기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5.01.27 2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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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토크

 

2015년 을미년(乙未年)은 양띠 해다. 현대에 들어와 양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면직물의 재료를 제공하는 면양(綿羊)이지만 농경문화인 우리나라에서 양은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산양(山羊) 또는 염소로 더 익숙했다. 양의 외형과 습성, 생태는 상(祥)ㆍ선(善)ㆍ미(美)ㆍ희(犧)처럼 좋은 의미의 한자에 반영돼 있듯이, 우리 생활문화 속에서 길상(吉祥)의 소재로 자주 등장했다. 양띠해를 맞아 양의 의미를 되새겨 봤다.

사진_ 서울신문

2015년은 양띠 해(乙未)다. 양은 십이지(十二支)에서 여덟 번째다. 원래 한자로 ‘羊’이지만 십이지에선 ‘未(미)’로 쓴다. 양은 BC 7천년쯤부터 인간과 함께 한 울타리에서 살았다. 가축으론 개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랫동안 같인 산 동물이다. 네 개의 위를 가진 되새김질 포유동물이다.
온순하며 떼 지어 풀을 뜯어 먹는다. 천적의 공격을 피하지 못해 먹이 감이 되기 일쑤다. 양을 수식하는 수식어로는 단연 ‘순한’이 최고로 꼽힌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양은 ‘속죄’, ‘희생’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고, 우리 조상들에게는 상서로운 이미지로 표현되기도 했다. 양을 둘러싼 이야기를 풀어보자. 

상서로운 동물 ‘양’, 사악한 기운 막고 복을 기원했다 

우리 조상들은 양을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다. 조선시대 의장기로 사용한 6정기(六丁旗, 왕실의 가례나 흉례 의식 때에 사용하던 여섯 신장을 그린 기)의 하나인 ‘정미기(丁未旗)’에서 양을 볼 수 있다. 아래쪽에는 양 머리가 그려져 있으며 가운데에는 액을 막아주는 부적이 그려져 있다.
조선 후기 그림 ‘기양동자도(騎羊童子圖)’에는 동자가 흰 양을 타고 있고 그 주변에 두 마리의 양이 함께 가고 있는 모습이 표현돼 있다. 흰 양은 신선과 관련된 그림이나 이야기에서 상서로운 이미지로 나타난다.
왕실 제사 때 삶은 양을 담았던 솥 형태의 제기인 ‘양정’은 제기의 아랫부분에 양머리 형상의 다리가 3개 달려 정을 받치고 있다. ‘양석’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상으로 무덤ㆍ사찰 또는 신성한 장소에 설치해 사악한 기운을 막고 복을 기원했다.

‘속죄’ ‘희생’의 의미로도 쓰인 ‘순한 양’ 

속죄양(贖罪羊) 또는 희생양(犧牲羊)이란 말이 있다. 고대 유대인들은 죄를 없앨 때 대신 양을 허허 벌판으로 내몰았다. 심지어 인간들은 속죄를 위한다며 양의 목을 따 피를 내 뿌리는 일도 많았다. 동양에서는 신을 위한 제물로 쓰였다. 현재는 남의 죄를 대신 지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속죄양’의 원말은 ‘Scapegoat’다. ‘goat’는 염소다. 그렇다면 왜 ‘양(sheep)’으로 번역됐을까. 또 미(未)에 왜 양(羊)이 배정됐을까. 원래 ‘未’에 배정된 동물은 ‘염소’였다.
고대 중국에는 털과 고기를 얻을 목적으로 사육하는 면양(綿羊)은 없었지만 산양(山羊)이 있었는데 ‘면양’은 양이고, ‘산양’은 염소이다. 
십이지에서 ‘양’은 ‘면양’이 아닌 ‘산양’ 즉 ‘염소’이니 ‘未’는 ‘염소 띠’가 맞지만 ‘양 띠’인 것은 면양과 산양을 혼동해 모두 ‘양’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50년대 이전까지는 ‘염소 띠’와 ‘양 띠’가 혼용되었다.
또 속죄양(Scapegoat). ‘Scape(달아나다. 탈출하다)’와 ‘Goat(염소)’로 구성된 단어다. 그렇다면 ‘속죄양’이 아닌 ‘속죄염소’라 해야 옳지 않을까. 아니다. 애초 ‘未’의 대응 동물은 양이 아닌 염소였지만 언제부턴가 ‘양’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속죄양’이 맞다. 그런데 서양에선 속죄하는 동물로 왜 하필 goat(염소)가 걸렸을까. 기원전 534년 이후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매년 디오니소스(포도의 신) 제전 때 4편의 드라마가 상연됐다. 이 중 3편이 비극. ‘신과 인간의 결합 또는 죄로부터 탈피’를 위해 신에게 염소를 제물로 바칠 때 부르던 노래다.
그래서 비극은 그리스어로 ‘Tragoidia(Tragos 염소, aoidia 노래)’, 즉 ‘염소의 노래'다. 또한 제전 때 디오니소스 신에게 합창서정시를 헌정했는데 이 역시 ’Tragikos choros(염소들의 합창)‘이라 불렀다. 여기서 ’속죄양(Scapegoat)’가 탄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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