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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이중섭미술상 수상자, 서용선 작가
2014년 이중섭미술상 수상자, 서용선 작가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5.01.28 0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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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우리’ 인문학적인 삶

 

도시의 삶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해 역사적 사건을 거쳐 신화에 이르기까지 인간 실존의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는 화가 서용선. 50대 중반에 서울대 교수직을 내던지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후 더욱 자유롭고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펼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그를 만났다.

글 함혜리 서울신문 문화부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사진 이용관

서울대 교수직 과감히 던지고 전업작가로

과감하고 거친 필선으로 그려진 파랑과 빨강, 초록의 이미지들이 캔버스 위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산봉우리를 밟고 다니는 마고, 땅에서 솟구쳐 오르는 반인반수의 괴물 반고, 파도를 가르는 해신, 구름 속에 앉아 있는 서왕모 등 아득하게 사라졌던 고대 신화의 주인공들이 화폭 위에서 되살아나 불가사의한 언어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림들은 섬뜩하고 도발적이지만 엄청난 생명력을 발산하며 발길을 잡아끈다. 2014년 이중섭미술상 수상자인 서용선 작가가 수상작기념전시회(조선일보 미술관 11월6~16일)에서 선보인 그림들이다.
‘신화-또 하나의 장소’라는 주제로 선보인 그의 그림들은 태고 적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의 정신 속 DNA를 흔들어 깨울 정도로 강렬하고 묵직하다. 큰 목소리나 요란한 몸짓을 하지 않아도 그가 그림으로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강렬한 반사음으로 돌아온다.

동양의 신화를 예술로 승화시키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 11월 하순의 일요일 오전 경기도 양평 문호리의 골짜기에 있는 화가 서용선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는 방금 강원도 태백에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태백 폐광지역인 철암의 문화를 살린다는 취지로 화가 몇이서 ‘할아텍(Halatec.com)’이라는 미술공동체 운동을 하고 있어요. 10년째 철암역사촌에 정기적으로 내려가서 주변의 풍경을 담기도 하고 함께 벽화를 그리기도 합니다. 1년에 한 번씩 백서도 만들고 있어요. 그동안 전시도 몇 차례 했고, 벽화도 폐광지역 예술운동을 주제로 석사논문도 나왔어요. 뭔가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고 좋아서 하는 일이죠. 관찰자의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찾아가고, 그 결과 작은 변화들이 곳곳에서 보이는 게 보람이죠. ”
그는 ‘지금, 여기, 우리’의 의미를 고민하며 인문학적인 삶을 사는 작가다. 바쁜 와중에도 그는 철암그리기 작업에는 꼬박꼬박 참여하고 있다. 저물어 가는 2014년은 그에게 유독 바쁘고도 의미 있는 해였다. 독일 본의 독일학술교류처(DAAD) 초청 개인전을 시작으로 한 해를 열고, 봄에는 파주 헤이리의 아트센터 화이트 블럭에서 신작을 중심으로 ‘역사적 상상-서용선의 단종실록’전을 가졌다. 그리고 4월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했고 11월엔 ‘신화’를 주제로 수상 기념전을 가졌다.
왜 ‘신화’였을까? 동양의 신화를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도 어려운 작업이다.
“전시를 기획한 이인범 상명여대 교수와 토론을 하면서 이중섭미술상의 가치를 살리자는 의미로 ‘신화’를 주제로 하기로 했습니다. 2004년에 이화여대 정재서 교수가 ‘사내경’이라는 책을 번역해 ‘이야기 동양신화’라는 제목으로 일간지에 1년간 연재를 하면서 제게 그림 제의를 했어요. 그때 신화를 좀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죠. ‘사내경’은 구전된
신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기서인데 미지의 세계,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쓴 책으로 동물과 인간이 뒤섞여 살던 역사, 역사 이전의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매번 읽으면서 신화를 보다 깊이 있게 알게 됐지요. 우리의 고대 신화와도 무관치 않았어요. 고구려벽화를 보면서 오래 전부터 한국 사람들이 신화를 예술의 형식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우리의 뿌리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게 됐어요. 고구려 벽화는 완성도 면에서나 형식 면에서 최고의 예술입니다. 장례, 죽음과 삶의 문제, 죽음 너머의 상상의 세계, 우주에 대한 질문, 천문학 등을 천년 전에 예술형식으로 표현했던 거죠. ”
그가 이중섭상 수상기념전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절반은 지금까지 이후 이 땅의 역사와 문화, 산천, 사람들에게서 길어 올린 ‘신화’의 그림자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에게 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 고대 신화에 좀더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발전시킨 신작들이다.
“ 20년 동안 역사화를 많이 그렸어요. 80년대 후반부터 역사적 주제의 그림을 그리면서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고,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다가 자연스럽게 역사 이전에도 관심을 갖게 된 거죠. 역사가 관심사였던 것은 분명한데 뭔가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단군 이전의 뿌리에 대한 규명도 없이 우리의 역사가 과연 제대로 된 역사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신화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에 전시를 준비하면서 동양신화의 원초적인 세계를 탐험하고, 우리의 상고사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게 됐어요. 우리 역사 이전에 시작된 신화는 너무 다양해서 다 파악할 수 없을 정도예요. 제가 앞으로도 꾸준히 연구하고 이미지화해야 할 주제예요. 끝도 없는 얘기입니다. ”
신화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면서 그는 근본적인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도시는 현재의 역사다

“현실을 그리는 것에 비해서 신화를 그리는 것은 자유롭지요. 시공간을 넘나드는 상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작가에게 자유를 주지요. 무의식의 세계처럼 현실을 초극하는 자유를 주는 면이 있어요. 무궁무진한 상상을 자극하는 주제이기도 하구요. ”
신화와 역사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인간에 대한 탐구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학창시절부터 줄곧 도시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리기를 좋아했다.
“ 제가 원래 도시 사람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요. 역사화는 사람들이 기억하기 좋으니까, 그리고 단종이라는 주제 때문에 부각됐던 것이고 기본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하는 게 맞지요. 인간이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흥미롭고, 인간의 실존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요. 특히 삭막한 도시에, 현대문명에 처한 사람들의 행동과 패턴들, 사회화 과정들, 도시적 생활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은 욕구를 느끼죠. 현대화 되면서 이전보다 인공적으로 우리 삶을 가꿔나가고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그런데서 살아남는 과정이 도시공간과 함께 제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그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커 가는 과정, 전쟁 이후 폐허에서 강남의 도시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30년간 매일 출퇴근길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관찰할 수 있었다. 정릉, 우이동에 살면서 신림동으로 출근했기 때문에 버스 안에서 북에서 남으로 서울을 관통하면서 보이는 도시의 일상을 눈여겨봤다. 도시가 형성되고 팽창되고 변화하는 것을 지켜본 그는 도시 삶의 형태를 잘 관찰해도 좋은 작품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도시는 현재의 역사였다.
“ 매일 출퇴근길에서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없이 보면서 여러 가지 상념에 빠지곤 했어요. 그들의 인상에서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해 보고, 그림으로 그리곤 했습니다. 20년 전부터 그런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외국의 대도시를 여행하면서 그 공간을 베를린으로, 뉴욕으로 확대하고 있는 셈이죠. ”
그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보이는 것도, 표현하는 것도 바뀌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전에는 도시를 그리면서 주로 원색을 썼는데 요즘은 무슨 이유인지 중간색, 무채색을 쓰게 된다고 한다. 그의 커다란 작업실에는 도시인들의 모습을 담은 대형 그림들이 놓여 있다.
그러고 보니 80년대의 그림들이 초록, 파랑, 노랑, 빨강 등 원색 위주인데 최근에 베를린의 알렉산터플라츠에 앉아 있는 사람,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담은 그림의 색상은 확연히 중간 톤이다.
그는 나이 57세이던 2008년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서울대 교수직을 내던졌다. 그리고 고생길이 훤한 전업 작가의 길로 성큼 들어섰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원래 학교에 갈 때부터 그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어요. 대학원 졸업한 이후 운 좋게 교직을 갖게 됐고, 이후 줄곧 학교에 있었으니 20년 넘게 다닌 거죠. 저도 가르치는 게 좋기도 했고, 어머니께서 남편이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아들이라도 정기적으로 봉급받는 일을 하기를 바라셨던 것도 영향이 있었어요. 외아들이어서 의무감에서 들어갔어요.
하지만 더 늦기 전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2007년 연구년에 베를린 등지를 여행하고 와서 작은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는데 드로잉이 판매가 되는 걸 보고는 용기를 얻고 과감히 벗어났지요. 학교에 더 있으면 작품을 더 못할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드디어 원래 하고 싶었던 작업을 하게 되니까 좋았죠.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분발했어요. ”
창작의 고뇌에 찬 긴 세월을 보냈음에도 여전히 청년학도의 자세를 버리진 않는 그는 2015년에도 바쁘다. 내년 봄 도시에서의 현대적 삶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를 금호미술관과 학고재 갤러리에서 가질 예정이다. 이후 5-6월 쯤 파리에서 한 달 동안 체류하며 작업을 할 예정이다.
번번이 좌절됐던 스페인 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그의 열정이 어떤 작품들로 나타날지 기다려진다.

화가 서용선은...

화가 서용선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 해인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미아리, 정릉 등 서울 북부의 변두리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몇 차례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나서 군에 입대해 육군하사로 군복무를 한 후 스물다섯 나이에 뒤늦게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했다. 대학원을 졸업하던 1986년부터 20여년 간 모교에서 교수생활을 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2008년 서울대 교수직을 버리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96년 자리 잡은 양평 문호리 작업실에서 그림그리기에 전념하고 있다. 1980년대 초 ‘소나무’ 연작으로 화단에 이름을 알린 그는 강렬한 색상과 호쾌한 필선으로 도시 사람들이나 도시풍경, 노산군 일
기나 6·25 전쟁 등 민족사의 비극을 주제로 한 연작을 발표하고 있다.
1988년 첫 개인전 이후 국내외에서 50여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광주국제비엔날레,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비롯한 다양한 국내외 기획전에 초대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다.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전을 가졌으며 2014년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회는 서용선이 뚝심 있게 건져 올린 예술적 성과와 내일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2014년 11월 창작 인생 30여 년을 회고하며 자신의 초기작품 중 드로잉만을 추려 작품의 배경을 개인적, 사회적, 시대적 맥락에서 술회한 작가 연대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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