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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국회사무총장이 제시한 새 발전모델
박형준 국회사무총장이 제시한 새 발전모델
  • 이시종 기자
  • 승인 2015.02.21 0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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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국회를 위한 혁신을 꿈꾸다

국회사무총장은 정치인일까, 행정가일까. 박형준 국회사무총장을 만나기 바로 직전 이런 의문이 들었다. 박 총장과 이야기를 나눈 후 나름의 해답을 얻었다. 국회사무총장은 정치인이면서 행정가다. 그는 나름의 정치 철학이 뚜렷한 정치가였고, 조정 능력이 탁월한 행정가다. 그는 최근 <한국사회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디치)라는 책을 출간하며 새로운 한국 사회의 새로운 발전모델을 제시했다.

취재_ 이시종 기자 사진_ 양우영 기자

“한국 정치 틀을 바꿔야 한다’는 흐름이 힘을 얻도록 물신양면으로 돕겠다”

제대로 단풍놀이 한 번 못 갔는데, 어느덧 코가 시릴 정도로 바람이 차졌다. 박형준 국회사무총장을 만나기로 한 날 전국적으로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 국회의사당은 한강 근처에 있어서인지 바람이 더 찬 느낌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사당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특히 국회의사당 안으로 들어가니 북새통이다. 학생들이 단체로 견학을 온 듯했다. 몇 해 전만 해도 이런 광경은 낯설었다. 국회의사당은 영등포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시설로 항시 최고의 보안등급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당연히 일반인들의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얼마 전부터 열린 국회를 표방하며 시민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됐다.
국회에 방문하는 일반인의 수는 하루 평균 5천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날이 따뜻해지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이다. 날이 좋은 날에는 점심시간 동안 가볍게 산책을 즐기거나 견학 중인 관광객들이 자주 목격된다. 공원 못지않게 잘 정비되어 있는 도로와 화단도 눈을 즐겁게 한다. 

기자, 교수, 정치인 등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  

약속 장소에 몇 분 정도 먼저와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호리호리한 체격에 부드러운 인상을 지닌 박형준 사무총장이 모습을 보였다.
“날이 많이 추워졌죠. 이곳이 주변 다른 곳보다 좀 바람이 많이 불어요. 날이 좋으면 산책하기 좋은데 오늘은 좀 힘들겠네요. 원리 걷는 걷을 참 좋아해요. 시간이 허락되면 가능한대로 걸어 다니려고 해요. 길을 걸으면 업무 중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더라고요. 생각지 못한 것들도 떠오르곤 해요. 또 길을 걷다 보면 사람들과 자주 만나게 되잖아요. 그때마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면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것도 좋아요. 길은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소통하는 통로가 되기도 해요(웃음).”
박 사무총장은 지난 9월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 승인안이 가결돼 국회사무총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17대 국회의원과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역임했다.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명박 후보의 대변인과 대통령직 인수위 기획조정분과위원 등을 맡았으며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기획관, 사회특보 등을 두루 거쳤다. 또 중앙일보 기자와 동아대 사회학교 교수 등 다양한 경력을 거쳐 국회사무총장에 부임했다.
국회사무총장은 ‘국회’라는 여·야 간의 치열한 ‘정치의 장’에서 행정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 그동안의 언론인, 정치인, 학자로서 살아왔던 그에게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사실 국회사무총장을 맡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정의화 국회의장께서 국회의 변화와 한국 정치의 틀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이런 비전을 실천하려면 국회사무처가 대단히 중요한 지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집행하는 예산도 적지 않은 조직이고, 지금까지 해왔던 분야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곳이라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의욕적으로 해볼 작정입니다. 국회의장 의정철학을 뒷받침하면서 새로운 국회의 상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국회에는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수많은 직원들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기획조정실, 공보관, 감사관, 법제실, 의사국, 예산정책국, 관리국, 국제국, 연수국, 국회도서관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을 총괄하고 관리 감독하는 국회사무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국회사무총장이란 바로 국회사무처의 수장이다. 쉽게 생각하면 군대에서의 행정보급관이라고 보면 된다. 17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기도 한 그에게 당시 사무처에 대한 아쉬운 부분은 없었는지 물었다.
“국회의원 시절엔 정치활동을 하느라 사무처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만 그때 의회의 정책기능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임위 활동을 하면서 수석전문위원이나 전문위원, 입법조사처가 효율적으로 도와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의회가 미국 의회처럼 정책기능을 더 확고하게 가진다면 여야의 정치대립을 완화할 수 있는 역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국회사무총장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회의 정책 기반 역량을 확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는 정책을 법과 예산으로 구현하는 곳이다. 법률 하나를 제대로 만드는 데는 국회의원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국회의 지적·정책적 기반이 얼마나 충실한가도 매우 중요하다. 그는 “특히 국가 중장기 전략과 관련된 국회 자체의 싱크탱크 기능이 많이 부족한 현실”이라며 “이를 확충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혁신’, ‘화합’, ‘소통’의 국회 만들고자

그는 지난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에서 홍보기획관, 정무수석, 사회특별보좌관을 지낼 만큼 국정 운영에 깊숙이 관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핵심인사여서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는 일각의 시각도 있었으나 국회 임명 승인 동의안은 217명 중 183표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됐다. 현 의원들의 반응을 그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여야를 떠나 의원들의 기대는 상당히 높은 것 같아요. 한국 정치가 이대로는 안 되고 그 틀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하는 여야 의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흐름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의장님을 도와 가능한 수준에서 정치 개혁의 모멘텀을 만드는 데 노력할 생각입니다. 개헌이나 선거제도 개편 등의 이슈는 국회의장의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이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겠지요. 청와대 경험이 사무총장 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정을 전체적으로 볼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모든 상임위를 뒷받침하는 국회 사무처의 역할을 이해하고 그 기능을 제고하는 데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정의화 국회의장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박 전 의원을 국회 사무총장으로 점찍어 둔 상태였다고 알려졌다. 박 총장이 자신의 정치철학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인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장님과의 인연은 25년쯤 됩니다. 한 세미나에서 병원 원장과 젊은 교수로 만나 의기투합한 사이라고 할까요. 세미나에서 발제를 마치고 단 둘이 만난 것이 인연이 돼서 사회적인 문제나 현안에 대해 자료도 제공하고 토론도 하면서 시민운동도 함께 했어요. 기억에 남는 것은 의장님과 함께 영호남민간인협의회를 만들어 영남 지식인들과 호남의 지식인들이 매년 교류를 했던 일입니다. 대부분 참석자들이 의례적이었는데, 의장님은 진정성을 가지고 행동으로 보여주셨어요. 호남에서 의장님이 상당한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죠. 인간적으로도 가까운 사이입니다.”
정의화 의장이 국회의장으로 오르며 강조한 것이 혁신, 화합, 소통이다. 이는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넘어서자는 의지가 담겨 있다. 박 총장 역시 이런 시대정신을 구현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관료조직은 피라미드형입니다. 하지만 저는 뒤집어 생각하고 싶습니다. 사무총장이 맨 밑에 있고 현장에서 뛰는 직원들이 제일 위에 있는 역피라미드 조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 간에 칸막이가 아니라 수평적 소통을 활성화 시킬 것입니다. 관료제의 정점을 살리되 시대에 걸맞지 않는 경직된 면은 고쳐나가겠습니다.”

발전국가에서 공진국가 모델로

그는 최근 <한국사회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정치인이자 사회학자이기도 한 그의 성찰을 담았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형 발전국가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공진(共進)국가’ 모델을 제안했다. 그가 제안하는 공진 국가 모델의 ‘공진’은 ‘함께 살고 함께 나아간다’는 의미다.
진화생물학에서 ‘공진화’는 한 생물집단이 진화하면서 다른 생물집단과 함께 진화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공진국가는 ‘함께 살고, 함께 나아가자는’ 의미로 계몽적 리더십과 강력한 동원 체제를 축으로 하는 ‘발전국가’ 모델과 대비된다. 적대적 경쟁보다는 협력적 경쟁을 장려하고, 경쟁이 모든 요소들의 진화를 촉구할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이 설계된 사회를 말한다.
그는 ‘공진국가’의 시작점을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에서 찾고 있다.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을 조화롭게 하기 위한 합의가 필요하고 그 합의에는 그에 합당한 제도 개혁과 정책이 필수라는 주장이다.
“공진국가 모델을 위해서는 국가 경영의 기본 관점을 바꿔야 해요. 국가의 총량적 발전에 주안점을 두고, 그 부수적 효과로 개인의 행복을 고려하는 관점에서 개인의 자아실현과 행복을 지원하는 데 우선을 두고 이를 위한 조건을 만드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는 책에서 공진국가가 구현해야 하는 다섯 가지 요소로 포용적 성장체제, 혁신 주도 국가, 생태적 성찰 국가, 삶의 질 투자 국가, 양성(兩性) 공진 국가를 꼽고 그 주요 전략을 밝히고 있다.
“공진국가의 모든 아젠다와 이슈는 광범위한 사회적 공감과 동의 그리고 정치적 합의로만 온전히 구현될 수 있어요. 분노와 적대의 정치,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파벌 정치를 끝장내야만 그것이 가능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에서 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좌파 이론가 출신이면서도, 정치권에 와서는 줄곧 개혁적 보수 진영에 속했다. 그가 제시한 공진국가도 기존의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에서 양 진영을 넘나던 그의 이력과 맞닿아 있다. 공진국가 모델 도입에 있어 가장 경계하고 배제해야 할 요소로는 ‘치어리더’를 꼽았다. 그가 정의한 ‘치어리더’는 보수와 진보의 극단에서 국민을 현혹하는 정치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치어리더’가 아니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우파의 치어리더들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이뤄놓은 문명의 효과에 찬사를 보내고, 좌파의 치어리더들은 이 시대의 어두운 속살들만을 드러내면서 모든 것을 자본과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립니다. 이런 치어리더들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새로운 국가 모델을 모색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지금 필요한 것은 치어리더가 아니라 좋은 코치입니다. 팀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팀이 축적해온 긍정적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팀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리더십을 지금 이 전환기가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세운 이론을 실무적으로 접목시켜 시너지를 얻고자 한다. 언론과 밖에서 보는 국회는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이 많다. 국민들이 국회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 또한 그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다. 그동안 다양한 경험으로 축적한 노하우와 지식으로 국회가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일조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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