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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의 새해 소망
김행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의 새해 소망
  • 서효정 기자
  • 승인 2015.02.21 2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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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여성 리더

 

신문기자, 평론가, 정치인, 교수, 청와대 대변인을 거쳤고, 현재는 여성가족부 산하 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으로 재직 중인 김행. 이렇듯 대략적인 프로필을 얼핏만 살펴봐도 그이가 지금까지 얼마나 쉬지 않고 달려왔는지 느낄 수 있을 터. 늘 시간에 쫓기듯 바빴고, 그 과정 중에는 본의 아니게 비바람을 맞을 때도 적지 않았으며 하루하루가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그이의 목표는 언제나 공(公)을 향해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발걸음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취재 서효정 | 사진 이용관

“늘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인생,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이 가치 있는 삶”

꽃밭에서 잘 가꿔진 장미보다는 척박한 길에서도 부드럽지만 강하게 솟아나는 들꽃 같다랄까. 30여년이 가까운 긴 시간 동안 늘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자리에 있었고, 또 남다른 성실함으로 많은 성취를 해왔기에 어쩌면 그이의 모습은 장미에 가까울 터였다. 하지만 그 경솔한 예상은 그이를 마주하는 순간, 곧 가볍게 빗나갔다.

자가용 없는 생활 10년째...

에코백 형태의 비닐 소재 가방을 핸드백 대용으로 들고 다니고(청와대 대변인 시절에도 즐겨 애용하던 가방이란다), 10년째 자가용 없이 생활하고 있으며, 의상이나 액세서리에서도 그 어느 것 하나 화려한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물질에 연연해하지 않는 평소 그이의 삶이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되는 터. 이렇듯 물질의 욕심을 버린 그이는 대신 자신의 내면을 탄탄하게 가꿔왔고, 그렇게 만들어진 훌륭한 성품으로 지금껏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군데군데 희끗희끗 솟아난 그이의 흰 머리카락들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다.
김행 원장이 재직 중인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하 양평원)은 2013년 1월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곳으로 남녀 성평등, 나아가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4대 악(惡)중 양평원은 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가정폭력에 대한 예방교육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봄꽃이 필 무렵 김행 원장은 양평원에서 새로운 시작을 했고, 어느덧 그 한 해의 끝자락을 맞이하고 있다. 김 원장의 지난 삶이 늘 그러했듯 양평원에서의 지난 11개월도 쉬지 않고 달렸고, 짧은 기간 안에 벌써부터 많은 성과를 거뒀다.
그이가 취임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해야 하는 공공기관에 걸맞은 조직적 전환을 시도,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심플한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집중’과 ‘선택’의 전략으로 불필요한 부분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필요한 부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양평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분명하게 알리기 위해 Gender Equality(양성평)로 BI(Brand Identity)를 새로 제작하기도 했다. 더불어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하는 8개 성평등 지수인 가정, 안전, 건강, 복지, 일자리, 의사결정, 문화정보, 교육 등에 대한 서브 브랜드도 제작했다. 그동안의 공무원 중심 교육에서 탈피해서 내년부터 도입되는 모바일 콘텐츠 제작과 운영으로 전국민 교육으로 확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 역시 김행 원장의 성과다.
“사실 양평원은 아직 예산의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인데, 양평원에 와보니 정말 중요한 일을 하는 기관임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원장으로 있는 동안 기관이 그 중요도에 걸맞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전방위적으로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양성평등 수준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최근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2014년 남녀격차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142개 조사국 중 종합 117위를 기록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동일직종 임금차이 부문 같은 경우는 125위다.
쉽게 예를 들어 남성이 월급을 100만원을 받는다고 가정했을 때, 여성은 63만원 정도를 받는 정도의 차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는 그 원인을 개인의 직업적 능력이 아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보다 훨씬 낮은 급여를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성 근로자의 상당수가 결혼과 출산, 육아 등으로 경력단절 현상을 겪는 만큼 성별 임금 격차에 상당 부문 기여하는 근속연수 역시 여성이 남성에 비해 훨씬 불리한 여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이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여성의 사회 진출률은 많이 높아진 편이에요. 예를 들어 올해 9급 공무원 공채에 2078명이 최종 합격했는데, 이 중 여성이 1018명으로 전체의 49%를 차지했죠. 이는 지난해보다는 6.9% 상승한 수치예요. 하지만 아직도 민간 부문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쉽지 않은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내 정유 4사(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의 임원 수는 지난 3월을 기준으로 총 220명 기준에 여성임원은 1명이고, 직원 수도 대부분의 회사에서 남성 직원 수가 여성 직원 수의 10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따라서 급여도 남성 직원이 2~3개 가량 높고요. 10대 건설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가부장적인 사회구조 안에서도 여성의 사회진출은 꾸준히 있으나 어떤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그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고, 또 이로 인한 역차별 정서가 늘어나는 것도 문제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운 점은 발전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 봄, 양성평등기본법이 통과된 것도 그 중 하나다.

양성평등기본법에 대한 오해

김 원장은 양성평등기본법에 대한 오해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양성평등기본법은 여성을 위한 법이라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는 것. 하지만 기본적으로 양성평등기본법은 인권에 관한 법이다. 인권에 관한 인식의 확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얘기다.
“어떤 사안에 있어서 여자라는, 또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이나 불평등이 있으면 안돼요. 양성평등은 남자나 여자나 인간의 기본권, 자유권에 근거해서 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져온 천부적인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에요.”
역차별과 관계해서는 얼마 전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단다. 어떤 남성이 이태원에 위치한 유명 프리미엄 베이커리에 갔다가 화장실 문제로 양평원에 전화를 한 것이다. 사실 그곳은 다른 회사에서도 벤치마킹을 할 정도로 크고 유명한 카페인데, 화장실이 여성 전용 한 칸밖에 없고 남성들은 근처 시장의 공용화장실을 이용하라고 해서 샀던 빵까지 환불하며 양평원으로 연락을 취한 것이다. 이에 김 원장은 주말에 직접 매장을 찾아가 상황을 확인했다. 그 결과 사실 원래는 남녀공용 화장실이었는데 여성들의 불만 사례들이 많다보니 아예 여성 전용으로 바꾸고, 남성들은 매장 밖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한 것이었단다.
“양평원은 법적 효력을 발휘하거나 강제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다보니 매장의 직원 분들에게 꼭 이 화장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만 의견을 전달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 사실예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제가 종합일간지에 기고하는 칼럼이 있어서 그 문제를 소재로 칼럼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칼럼이 나가자마자 그 날 아침 그 회사 홍보실에서 찾아오셔서 전국에 있는 매장에 화장실 전수 조사를 실시하고 남자 화장실을 설치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가셨고, 결국 일주일 만에 남자 화장실이 생겼습니다. 저한테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주시더라고요.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었죠.”
양성평등은 저출산, 고령화, 소득 3만불 시대 진입 등 우리 사회의 현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제다.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현재 양성평등 관련법과 제도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 상태다. 이젠 이를 채울 수 있는 저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김 원장의 생각이다.
“시대적 흐름에 걸맞도록 내년에는 교육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양평원은 집합교육과 사이버교육이 중심이었기에 교육을 확대하는데 여러 한계가 있었지요. 세계 무선 인터넷 이용자가 유선인터넷 이용자의 2배 수준을 넘어선 지금,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데 있어 PC보다는 모바일을 이용하여 찾아가는 교육, 상시 교육서비스의 제공, 학습자 주도 참여교육을 가능하게 할 예정입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도움도 많았기에 내년에는 양평원이 하는 역할이 더욱 커지고, 그 영향력 또한 넓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위기를 이겨내는 힘은 ‘가족’

김 원장은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사회학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불평등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학문인데, 사실 대학 시절부터 그는 이런 쪽으로 관심이 많았다. 청와대 대변인을 그만둘 때도 여러 기관의 공모가 있었으나, 양평원이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일을 하는 곳이고, 인권과 관련된 곳이라는 것이 그이를 이끌었다.
“처음에는 다시 정치평론가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정치평론가였을 때는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었는데 반해 대변인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자리다 보니 운신의 폭이 한계가 있었거든요. 늘 말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말을 아껴야 되는 자리였죠. 그래서 청와대 대변인을 그만두고부터는 다시 정치평론가 자리로 가서 박근혜 정부의 입장을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성 대통령 시대, 여성 대통령이 언제 또 나올지 모르니까 양평원으로 가서 박 대통령이 양성평등에 큰 족적을 남기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는 것이 의미 있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지요.”
이렇듯 언제나 공(公)을 쫓는 삶이었지만 그이에게도 굴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중앙일보 전문기자 및 전문위원으로 승승장구하다 그 기세를 몰아 2002년에는 국민통합21 창당 때 대변인이 되었는데, 당시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 간의 단일화가 대선 하루 전날 파기되며 그이 역시 덩달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대변인으로서 노 후보의 지지철회를 발표하는 역할을 맡게 되며 일부 비난의 화살이 그이에게 잘못 쏟아지기도 했으니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을 터.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선택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이죠.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기는 오기 때문에 실패에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견디고 극복하고 이겨낸다면, 또 그에 맞는 대가를 얻게 됩니다.”
늘 김 원장의 곁에서 그이를 지켜주는 가족도 그이가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남편과 딸, 시어머니 그리고 14년째 키워온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그이는 자신이 쉬지 않고 오늘날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들의 이해와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하는 아내, 엄마, 며느리를 무조건적으로 응원해주는 가족은 그이가 내뿜는 건강한 에너지의 원동력이다.
“남들은 제가 32년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니까 효부라고 하는데, 전혀 아니에요(웃음). 1983년에 남편과 결혼을 했는데, 그때는 신혼부부라 둘 다 돈도 없고 형편이 어려우니까 시댁에 들어가서 살게 된 건데 그게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뿐인걸요.”
겸손을 표하는 그이지만 사실 시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애틋했다. 바쁜 자신을 대신해 딸의 양육이나 집안일을 많이 챙겨준 시어머니가 없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지 잘 아는 그이다. 이제는 90세가 훌쩍 넘은 고령이지만 다행히 건강상태가 양호한 편이라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올곧은 품성과 배려심이 깊은 남편과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있는 하나뿐인 딸 역시 그이의 든든한 응원군이다.
“남편은 딱 50세 때 정년퇴임을 했어요. 퇴임을 하고는 옷이나 신발 등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딱 트렁크 하나 정도에 들어가면 맞을 짐만 남기더라고요. 그동안 충분히 바쁜 삶을 살아왔으니, 이제는 모든 소유욕을 버리고 정말 자연인 같은 상태로 살고 싶다는 의지였죠. 또 지금까지는 김행의 남편으로 불리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딸의 아버지로 살아가고 싶다더라고요(웃음). 딸이 회사에서 요즘 칭찬을 좀 받는 모양인데, 남편이 얼마나 뿌듯해하는지 몰라요. 퇴임을 하고는 새로운 취미도 생겼어요. 요즘 매일 집앞 도서관에 다니며 종일 책을 읽는데 푹 빠져 있어요. 책을 보면 길이 보이고, 삶의 방향이 보인다고요.”
삶에 여유가 더 생겼다고 해야 할까. 요즘 남편과 가끔 주말이면 할인마트에 장을 보러 함께 가는데 그 길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하는 그이다. 10년째 가족 중에 자가용 있는 사람이 없는 상태라 장을 보고 난 뒤에는 무거운 짐을 낑낑거리며 들고 집으로 가야 하지만 그래도 좋다. 아니, 그래서 더 좋다.
“서울역 근처에 있는 마트에서 장을 자주 보는데, 집으로 가려면 지하도를 반드시 건너야 해요. 그러다보니 그곳에 계시는 노숙자 분들을 상당히 많이 보게 되는데, 그때는 마트 비닐봉지를 들고 그곳을 지나가는 제가 너무 죄송스러워지는 거예요. 세상에는 여전히 어려운 분들이 많은데, 또 어떤 사람들은 식구들 먹을거리를 가득 챙겨서 따뜻한 집으로 가고 있잖아요. 그런 두 가지의 모습이 한 공간에서 겹쳐지는 그곳을 지날 때면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이렇게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죠. 미약하게나마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만큼은 최선을 다해 어려운 분들이 조금이나마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사실 성공도 행복도 오롯이 혼자 힘으로 이룩되는 것은 없거든요. 조금만 더 주변을 배려하고, 양보하고, 또 자기가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안다면 행복은 더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위만 쫓는다면 결코 만족이 없다. 늘 허덕이며 쫓길 뿐이다. 위가 아닌 아래를 바라보며,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지며, 겸손의 미덕을 배우며, 작은 것이라도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것. 그것이 바로 김행 원장의 성공비결이며, 그이가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희망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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