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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깊은 우리 전통주
느리지만 깊은 우리 전통주
  • 전미희
  • 승인 2015.02.24 1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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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과 향에 취한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주는, 우리 근현대사와 함께 시련을 겪었다. 전통의 맥이 끊기고, 전통주의 자리를 희석식 소주와 수입 주류가 차지하게 되었다. 그 사이 우리 술 문화는 빠르게 마시며 취하는 풍토로 변하였다. 최근 젊은 세대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도 우리 술을 찾는 비중이 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잊혀졌던 우리의 술 문화를 되찾을 때이다. 술 한 잔에 시구 한 소절을 읊었던 옛 선조들처럼, 전통주와 함께 느리지만 깊은 멋과 향에 취해보자.

진행 전미희 기자|사진 양우영 기자|사진 및 자료 ㈜광주요, 배상면주가

우리 술의 역사

발효 음식을 즐기는 나라

우리의 주식을 담당하는 쌀은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식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곡식으로서, 쌀을 재료로 한 음식은 수도 없이 많다. 먹는 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쌀을 이용해 풍부한 마실 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인 전통주인 막걸리와 소주는 오랜 시간 우리에게 사랑 받은 술이자 주류 한류를 이끄는 선두주자이기도 하다.
술의 기원은 인간이 아닌 원숭이에서부터 시작한다. 원숭이가 저장해 둔 과실이 우연히 발효하면서 이를 먹어본 인간은 처음 술의 맛을 알게 된다. 이후 인류는 과실이나 벌꿀 등을 담가 술을 만들어 먹었으며, 농경시대가 열리면서 곡류를 이용해 술을 빚었다.
한반도에서도 오래 전부터 쌀로 빚은 곡주가 내려져 왔다. 정확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지만, 여러 문헌에서 우리 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 씌어진 역사책 <제왕운기>에는 고구려의 주몽 신화를 언급하며, “해모수와 하백의 세 딸이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전해지고 있는 우리 술의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된장과 김치 등 발효 기술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맛 좋은 전통주가 이어져 내려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이미 오래 전부터 주변 국가에서는 우리의 발효 기술과 함께 술을 빚는 능력을 인정해 왔다.
일본의 <고사기>에서는 “백제사람 인번(수수보리)이 누룩을 이용한 술 빚는 기술을 전해와, 왕이 이 술을 마시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으며, 인번을 주신(酒神)으로 모셨다”고 쓰여 있으며, 중국 또한 한반도를 가리켜 자희선장양(自喜善藏釀)하는 나라(발효 음식을 즐기는 나라)라고 하였다.
고려 시대에 들어서는 술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양조기술이 발달하는 등 우리 술 문화는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된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엮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에는 찹쌀이 없어 멥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으며, 술맛이 독하여 쉽게 취하고 빨리 깬다.”고 쓰여 있는데, 이를 통해 고려 시대에 이미 도수가 높은 술이 제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궁에는 양조를 담당하는 ‘양온서’가 생겼으며, 불교국가인 만큼 대규모의 양조업을 사찰이 이끌기도 했다. 이후 고려 말기에는 원나라로부터 증류법이 들어오면서 오늘날의 소주를 만들었다. 증류주는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우리의 대표 주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전통주의 시련과 재기

유구했던 한국의 음주역사는 조선 말기 무렵 일본에 의해 크나큰 시련을 맞게 된다. 일본은 을사조약 체결 후 주세령을 공포하며 전통주 말살 정책을 펼쳤다. 술의 종류를 단일화하고, 자가양조를 전면 금지하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술을 빚었던 자가양조의 풍습은 이 시기 맥이 끊겼고,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오던 가양주(家釀酒)문화는 6.25 전쟁 발발로 우리 술의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상황은 광복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정부는 일본의 주세정책을 그대로 이어 받았으며, 극심한 식량난으로 전통주는 서서히 명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80년대에 들어서 정부는 다시금 우리 전통주가 부상할 수 있도록 힘쓰기 시작했다. 전통주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2010년도에는 우리 술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정책을 시행하여 현대화에 발맞춘 전통주 문화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직접 술을 담가 먹으며 수 십, 수 백 만개의 양조 비법을 지녔던 우리 전통주 문화를 되살리기에는 세월의 간극이 너무 컸다. 대부분의 양조법들은 사라지고, 몇몇 민속주만이 힘겹게 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한국의 주류 문화는 새로운 한류 열풍의 주자로 우뚝 섰다.
소주와 삼겹살은 관광코스가 되었고, 한때 와인에 밀렸던 막걸리는 현대화를 시도하며 다시금 젊은 세대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어느 때보다 우리 술의 소비가 많은 시대이다. 그러나 빨리 마시고 취해버리는 현재의 주류 문화는 우리의 전통과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선조들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빚은 술을 천천히 음미하며 마셨다.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닌 술이 주는 향과 맛, 풍류에 취하였다. 우리의 주류 문화가 다시 느리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문화로 돌아간다면, 전통주는 다시 한 번 날개를 달고 뻗어 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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