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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 가옥’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 가옥’
  • 권지혜 기자
  • 승인 2015.02.28 0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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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상을 품다23

▲ 고희동가옥 전경

서울 종로구 원서동 16번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 기록된 고희동이 1918년부터 40년간 살았던 집이다. 역관 출신 개화관료 집에서 태어난 고희동은 관립한성법어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 역시 개화 관료의 길을 걸었다. 1909년 일본에 간 고희동은 1915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조선인 서양화가 1호’가 됐다.

고희동은 신미술운동의 기수로서 근대 화단의 형성과 전개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고희동 화백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해인 1918년 서양 주거 문화와 일본 주거 문화의 장점을 조화시켜 한옥에 적용, 실용적인 주택으로 직접 설계해 지은 이 목조 가옥은 근대 초기 한국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우선 좁은 대문을 들어서면 생각보다 넓은 마당을 만날 수 있는데 자갈이 깔려 있어서 전체적으로 깔끔한 인상을 준다.
정면 7칸, 측면 2칸 반의 일자형 안채와 ㄷ자형 사랑채가 안채를 감싸 전체적으로 ㅁ자형 배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가옥은 겉으로 보면 일반 전통한옥과 비슷한 모양새를 이루고 있지만 사랑채의 돌출된 현관을 가지고 있다든지 그 앞으로 정원을 가지고 있는 구성, 그리고 개항 이후 이 땅에 들어오기 시작한 유리창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점, 서양의 건축에서 발달한 복도를 내부화 해서 연결 통로로 썼다는 점에서 고희동 가옥이 갖고 있는 중요한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41년간 이 집에서 아들, 손자까지 3대가 함께 살았고, 각계각층의 지인들과 교류하며,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후학들에게 서양화를 가르치면서 창작 작품 활동을 하였다.
1959년 고희동이 이사한 후 가옥은 여러 차례 소유자가 바뀌고 수리와 개축으로 본래 모습을 잃게 되었다. 이 집이 멸실 위기에 처하자 “한국 근대미술의 산실인 동시에 일제강점기 주거 모습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가옥”이라며 보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2004년 ‘원서동 고희동 가옥’이란 이름으로 등록문화재로 등재되고, 복원과정을 거쳐 2012년부터 11월 전시공간으로 개관했다.

글·사진 백남우(tbs TV 영상콘텐츠부장)

<고희동 가옥 찾아가는 길>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5길 38
대중교통 지하철3호선 안국역 3번 출구, 지하철 1, 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창덕궁 돈화문 서쪽 돌담길  660m

<tbs TV에서는 서울 일대에 남았거나 변형된 근현대문화유산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제작을 통해 서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고화질 HD영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tbs 홈페이지 tbs.seoul.kr나 네이버 TV캐스트(http://tvcast.naver.com/seoultime)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수상 약력 :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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