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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조세 형평국 위원에 당선된 한인 여성 미셸 박 스틸
미국 캘리포니아 조세 형평국 위원에 당선된 한인 여성 미셸 박 스틸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7.01.1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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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인들은 창호지 같다. 빗물 한 방울만 떨어져도 순식간에 확 퍼질 만큼 연약하지만 한겨울 강풍을 끄떡없이 견뎌낼 만큼 강하기도 하다. 2006년 11월 7일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에서 캘리포니아 조세 형평국 위원에 당선된 한인 여성 미셸 박 스틸 씨는 창호지 같은 한국 여인의 대표적 표상이다. 그녀가 본지 통신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서의 정착과 정치계 입문 과정, 남편 및 가족, 시댁과 친정에 관한 이야기를 소상하게 털어놓았다.

글·사진 _ 박지윤(Stella Park)


캘리포니아주의 돈줄을 틀어쥔 여장부
그녀의 남편이자 동지요 정치적 후원자이자 빛나는 후광인 숀 스틸(Shawn Steel) 변호사는 정부 각처로 후보 인준(Endorse)을 받으러 갔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온 아내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로 위로를 했다.“미셸은 한국 여자야. 몇 시간 후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밝은 표정으로, 이전보다 더 강해져 있을 거야.”
2006년 미국 중간선거에는 역대 가장 많은 17명의 한인 후보가 출마해 14명이라는 최다 당선자를 냈다. 이 가운데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한인 미셸 박 스틸 씨는 60.5%에 이르는 압도적인 지지로 캘리포니아주 세금을 총괄하는 조세 형평국(BOE) 3지구 위원에 당선됐다. 이는 역대 선출된 한국계 공무원 가운데 최고위 공직이다.
캘리포니아주 조세 형평국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은 연간 4백억 달러(약 38조원)에 이른다. 조세 형평국 위원이란 모든 판매세와 재산세, 특별세 등 24가지 세금을 관리하는 막강하고도 막중한 자리. 많은 한인들이 스몰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현실을 고려해볼 때 억울한 세금에 대한 심판자 역할을 하는 그 위치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인구 3천6백만 명의 캘리포니아는 경제 규모에서 세계 5위 국가와 맞먹는다. 이런 국가 규모의 조세 정책을 총괄하는 것이 네 명의 캘리포니아주 조세 형평국 위원들. 3지구 위원인 미셸 박 스틸 씨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일부와 오렌지 카운티, 샌디에이고 카운티, 리버사이드 카운티의 8백만 납세자를 대변하고 그들의 세금을 총괄하게 된다. 한마디로 캘리포니아주의 돈줄을 틀어쥔 여장부이지만 그녀의 가녀린 자태는 전형적인 한국 여인의 모습 그대로다.
미셸 박 스틸 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일본으로 건너가 청소년기를 보냈다. 동경 한국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여자대학 영문학과 1학년에 재학 중 미국 LA의 페퍼다인유니버시티로 유학을 떠났다.
“어렸을 때 꿈이요? 후후.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어요. 한국어 교사로 늘 바쁘셨던 어머니 때문일 거예요. 앞치마 두르고 쿠키와 빵을 구우며 아이들과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으니 참 소박하죠?”
일본여자대학은 신부학교라 불릴 만큼 1등 신붓감이 되기 위한 모든 것을 가르치던 곳. 그녀는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아동학과나 주거학과를 지망했지만 당시 일본 문화교육센터 소장이던 아버지는 그녀에게 영문과를 권유했다.
영문과 공부를 하는 데 일본은 그리 좋은 터가 아니었다. 자식 교육에 열성이던 아버지는 기왕지사 영문학을 공부하려면 본토에 가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그녀에게 미국 유학을 제의했다.
낯선 미국 땅에 홀로 도착했을 때 그녀의 나이 꽃다운 열아홉 살. 다행히 한 달 뒤, 바로 아래 여동생이 미국 유학에 합류해 외로움을 느낄 기회는 없었다. 그녀는 페퍼다인유니버시티에 입학해 경영학 공부를 시작했다.
남편 숀 스틸 변호사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윌셔 가의 앰배서더 호텔(지금은 허물고 학교를 짓고 있다) 테니스 코트로 테니스를 치러 갔는데 여러 회원들 가운데 그녀를 점 찍어 둔 숀 스틸 변호사가 “실력도 비슷한 것 같은데 테니스 파트너를 하면 어떨까요?” 라며 다가왔던 것이다. 테니스를 치고 난 후에는 식사도 하고 드라이브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데이트가 시작됐다.
당시 이미 성공한 변호사였던 숀 스틸 씨는 정신없이 바쁜 스케줄에 쫓기면서도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되면 만사 제쳐두고 그녀와의 주말 데이트 약속을 위해 전화를 걸어왔다. 3년간의 교제 기간 동안 단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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