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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씨의 거처’에서 만난 하루키
‘무라카미 씨의 거처’에서 만난 하루키
  • 권지혜 기자
  • 승인 2015.03.27 1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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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등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난 1월 15일 독자와의 소통을 위한 웹사이트 ‘무라카미 씨의 거처(村上さんのところ)’를 오픈했다. 작품에 관한 질문부터 소소한 사생활 이야기까지 독자가 물어보는 무엇이든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답변을 작성한다. 재치 있는 답변으로 무라카미를 사랑하는 독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작가가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 강연을 하거나 간담회를 여는 일은 종종 있다. 그러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통방법은 조금 특별하다. 그가 오픈한 웹사이트에서 독자들에게 질문을 받는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이메일을 받지만 무라카미는 그에 일일이 직접 다 답변을 해준다.
웹 사이트가 열리고 무라카미의 답변이 달리자 인터넷 상에서는 화제가 되었다. 워낙 유명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재치 있는 임기응변식의 답변과 작품에 대한 확고한 주관, 그리고 때로는 단호한 일침에 독자들이 크게 환호한 것. 작가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무라카미와의 웹상 대화가 열렸다는 것, 무라카미는 독자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주었다.

카페에서 수다 떨듯 도란도란

무라카미를 향한 독자들의 질문은 천차만별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카페에 모여 이야기하듯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질문들도 많다. 특히 무라카미의 글 속에도 묻어나는 하와이와 여행, 재즈와 음악, 고양이 등에 관련한 질문도 많다.
한 독자가 그의 음식 취향에 대해 묻는다.
“하루키 씨는 회전초밥을 좋아하나요?”
무라카미는 이에 정성스레 답한다.
“저는 회전초밥은 비교적 좋아하는 편입니다. 가끔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회전초밥에 혼자서 들어가 버립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여러 회전초밥집이 있더군요. 이 전에 갔던 곳은, ‘최소 6접시를 먹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뭐 6접시 정도는 먹을 생각이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니 상당히 긴장 됐습니다.”
어떤 독자는 무라카미의 열성 팬인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현대 나쓰메 소세키다”라는 말을 대학시절 논문에 썼다며 들떠서 얘기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문학의 대표적인 남성 작가이다. 
또, 독자들은 이런저런 고민을 무라카미에게 이야기한다.
한 독자는 진학 문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대학을 꼭 가야 할까요?”
무라카미는 질문을 함께 고민하며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학교를 꼭 가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리스어를 배우고 싶어서 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메이지학원 대학 시민 강좌 같은 곳에서 그리스어를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에서 살고 싶어서. 그렇게 목표를 특화하면 학교를 가는 것도 뭐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어, 지금은 완전히 잊어버렸지만.”

하루키 ‘아베 따위’라고 직구를 날리다

한 여성이 아베 총리의 ‘여성이 빛나는 일본’을 표방한 여성정책에 대해 묻는다.
“저는 병에 걸려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정이 있어 아이도 못 낳았지요. (아베의 말처럼)빛나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이에 무라카미는 이렇게 답한다.
“제 주위의 ‘빛나는’ 여성들은 모두 아베 총리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너 따위한테 ’빛나‘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라고요. 그건 분명히 참견이죠. 여성이 빛나지 않아도 좋으니, 남들처럼 평범하게 공정한 기회를 얻어 일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걸로 되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남자는 내가 하는 일에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의 대부분을 여자도 할 수 있으니까요. 자신의 사무실에는 여자 직원밖에 없고 그 직원들은 남자들보다 일을 더 잘합니다.”
아베 총리의 여성정책은 ‘여성의 활발한 사회활동을 일본의 성장전략으로 삼겠다’는 것이나, 일본의 현실적인 문제에 상응하지 않아 많은 힐난을 받고 있다. 이러한 총리의 정책에 대해 ‘참견’이라며 직격타를 날린 것이다.
무라카미의 소신 발언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 독자가 물었다.“펜은 칼보다 강한가요?”
무라카미는 이에 최근 일어나고 있는 테러 사건에 대해서 언급한다. 물론 작가답게 말 속에 뼈가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합니다. 물론, 함부로 펜을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 그러나 요즘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테러도 있었고요. 펜을 쓸 때에는 신중히 생각해서 써야 합니다. 저는 평소 ‘펜을 너무 세지 않게 쓴다’고 의식하며 글을 씁니다.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죠.”
그는 덧붙여 사람을 해치는 글을 쓰지 말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이는 어려운 일이어서 무엇을 쓰든 그로 인해 상처를 입거나 화를 내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해치는 글을 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글을 쓰는 인간에게 중요한 윤리입니다.”

무라카미의 웹사이트 ‘무라카미씨의 거처(村上さんのところ)’는 지난 1월 15일부터 31일까지 질문을 받았으며 현재는 독자의 질문에 대한 무라카미의 답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웹사이트의 질문과 답변을 둘러보면 독자들과 만들어가는 무라카미의 자서전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가 좋아하는 영화, 음악, 스포츠, 취미부터 그의 글쓰기 작업에 대한 것, 최근 관심 있는 것, 연애에 관한 것, 독자의 고민에 대한 조언, 사회적 이슈 등 그의 모든 것을 단편적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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