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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의 겨울여행 - 사람, 그리고 기억에 관하여
고현정의 겨울여행 - 사람, 그리고 기억에 관하여
  • 송혜란
  • 승인 2015.03.27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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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에세이

▲ 사진제공 꿈의지도

일본 오키나와에서 만난 풍경

영화 <미쓰고>의 천수로와 <고쇼>의 호스트, 드라마 <여왕의 교실>의 마여진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 앞에 섰지만, 정작 스크린이나 TV 밖에서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고현정이 일본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 그녀를 움직이게 만든 데는 한 권의 책이 있었다. 세소코 마사유키의 <새로운 오키나와 여행>이 바로 그것. 오키나와의 자연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가게를 소개한 이 책을 읽고, 불현듯 책 속 오키나와의 실제 모습이 궁금해져 여행을 다녀온 후 본인의 시각에서 다시 오키나와 책까지 출간하게 된 그녀. 고현정도 반한 오키나와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녀의 신간 <고현정의 여행, 여행>을 통해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글 송혜란 기자 사진제공 꿈의 지도

달랑 책 한 권 들고 무작정 떠난 여행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끔 끝없이 침잠하며 자신의 직업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확실한 미래와 알 수 없는 인생 앞에서 흔들릴 때가 있다. 배우 25년 차인 고현정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 고현정은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이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위장하거나 포장하기 위해 가면을 쓴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허세 없이 솔직하게, 그리고 담담히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사람들.
그들이 진정 고현정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이 세상 어딘가에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런 그녀가 세소코 마사유키의 <새로운 오키나와 여행> 책을 읽고 푹 빠졌다. 고현정이 반한 이 책은 오키나와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과 가게를 소개하는 책이다. 도쿄에서 살던 저자가 대도시의 바쁜 삶에서 벗어나 오키나와로 이주, 그곳에서 자연, 사람과 어울리며 사는 소박한 삶을 한권의 책으로 펴낸 것. 그 삶의 알 수 없는 매력에 이끌린 고현정은 달랑 책 한 권만 들고 무작정 오키나와 행 비행기에 오르는데...

여행 속의 여행

오키나와에 도착한 고현정은 이 책의 저자를 만나는가 하면 책 속에서 본 가게와 공간을 직접 찾아가는 이른바 여행 속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가 오키나와를 둘러보며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참 따뜻하다’, ‘풍경이 꽤 이국적이다’, ‘여유롭다’ 등이었다.
고현정은 이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다케토미에서 골목골목 산호로 쌓은 돌담 곁을 느릿느릿 걸으며 데이고 나무와 붉은 히비스커스 꽃을 바라보는 시간.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붉은 꽃의 오키나와에서 그 두 가지 색을 섞으면 만들어진 보랏빛 나팔꽃을 맘껏 즐기는 시간.” 특히 ‘가장 맑은 바다를 보고 싶으면 오키나와로 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바다 풍경이 이색적이었다고 한다.
물빛이 맑은 오키나와의 바다와 끝없이 넓은 오키나와의 하늘을 마음속에 꼭꼭 눌러 담는 여유로운 시간이 좋았다는 고현정. 그래서일까. 그녀에게 있어 오키나와 여행은 그곳의 풍경을 가장 담백하고 아름답게 새기는 시간이었다. 곤도이 해변에서 머플러 하나를 가지고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바람을 타며 놀았던 추억은 사진 속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는 10년째 매니저를 맡고 있는 박실장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한껏 자유로울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그것이 바로 그녀가 반한 오키나와의 매력이 아니었나 싶다.

“그 사람들 매화를 닮았어요”

오키나와의 풍경뿐 아니라 그녀를 매혹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오키나와의 사람들이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독차지하기 위해 바다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에는 손님을 받지 않는 카페 고쿠의 부부부터 시작해, 아무것도 없는 야산에 숲과 바다를 배경으로 통창 하나를 내고 그 창밖의 세상을 벗 삼아 살아가는 카이자 노부부, 그리고 소박과 누추의 차이를 깨닫게 해준 장수식당 오기미촌의 주인 할머니까지.
이들 중에는 찾아가기 쉽지 않은 산 중턱에 있는 사람도 있었으며, 후미니 골목 어딘가에 숨어있거나 푯말도 없이 숲에 가려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고현정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아했다는 말 ‘매화는 겨울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다른 꽃들과 봄을 다투지 않는다’를 빌려 그들이 매화와 똑 닮았다고 표현한다.
겉으로 보면 누구나 “참 여유 있고 좋네”라고 말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그들 또한 기꺼이 포기한 이면의 삶이 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돈으로 저울질하는 삶을 내려놓고 깊은 고독과 마주했으며, 때로는 남들이 비웃는 시선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이런 것들을 이겨내지 않으면 남들이 원하는 삶이 아닌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 마치 매화가 봄꽃들과 다투지 않기 위해 차디찬 눈서리도 견뎌내야 하는 것처럼. 그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그 어떤 분야보다 경쟁이 치열한 연예계에서 오랜 시간을 지나오며 깎이고 부르튼 내면이 있는 고현정임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고현정, <고현정의 여행, 여행>에서 하고 깊은 말

오키나와 여행에 대한 고현정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키나와에 대해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했던 그녀가 결국 자신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본 오키나와를 소개하는 책 <고현정의 여행, 여행>을 출시한 것.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고, 음악을 듣는 것.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 일상에서 그녀가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에 걸맞게 <고현정의 여행, 여행>에는 그녀가 평소 좋아하는 시와 즐겨듣는 노래도 함께 실었다. 물론, 모두 오키나와와 연결돼 있다.
카이지 해변에서 별모래를 찾으며 떠올린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와 미바루 해변에서 읊은 장석남 시인의 <한진여>,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한 여행의 한순간에 노래했던 피천득 시인의 <이순간>. 뭐 이런 식이다. 이에 그동안 각박한 일상으로 인해 감성까지 메말라버린 현대인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책 속 시와 음악들이 메말라버린 감성을 다시 촉촉하게 적셔줄 것이기 때문. 높고 먼 데 있는 톱스타의 화려한 겉모습이 아닌 일상 속에서 만나는 수수한 친구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쁨 또한 이 책을 읽는 묘미다.
특히 앞서 고현정이 오키나와의 매력으로 꼽았던 풍경과 사람들 사이에 대한 그녀만의 확고한 가치관에선 그녀의 인간미가 더욱 돋보인다. 그녀가 책 속에서 언급한 “풍경과 사람, 둘 중에 좋은 것을 꼽으라 하면 난 사람이 있어서 풍경이 좋아진다고 말하겠다. 사람들이 멋있다고 하는 경치가 있으면 ‘한 번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지만 딱 그 정도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그 풍경이 더 좋고, 사실 남들이 쳐주는 풍경은 아닌데 친한 사람과 얘기하면서 지나가면 그 풍경이 좋아진다”는 부분이 더욱 그렇다.
고현정이 담은 오키나와의 풍경, 그리고 그 풍경과 하나 된 고현정의 수수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담긴 사진들은 소장 가치까지 높여준다. 아마도 이 책이 배우 고현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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