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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명절의 하나, 한식(寒食)
4대 명절의 하나, 한식(寒食)
  • 김이연 기자
  • 승인 2015.04.27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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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스토리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인 한식. 양력으로는 4월 5일 무렵이며 올해 한식은 4월 6일이다. 절기상 바람이 많이 부는 이날엔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중시해 산에서 음식을 하는 것을 금기하기 위해 찬 음식으로 묘제를 지냈다. 겨울 동안 얼어붙은 묘를 살피고 문안을 드리는 날, 한식에 얽힌 선조들의 지혜와 알고 보면 재미있는 우리 민속 이야기.

진행 김이연 기자|사진 매거진플러스|참고도서 알고 보면 재미있는 우리 민속의 유래(박호순 저, 도서출판 BMK)

묘제를 올리고 찬 음식을 먹는 날

중국의 4대 명절은 설날, 청명절, 단오절, 추석이며 우리나라는 청명절 당일이나 다음날이 되는 4월 5·6일 한식(寒食)을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간주한다.
한식에는 산소에 가서 술·과일·포·떡·국수·탕·적 등의 음식을 차리고 제를 지낸다. 한식은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인데, 105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는 동지가 지나 105일이면 바람이 심하게 불고 큰 비가 내려 한식이라 불렀다 하며, 한식을 전후로 3일간 불 지피는 것을 금하고 엿과 보리로 죽을 쑤었다고 한다.

한식날 불 금기에 관한 흥미로운 유래 

한식날 불을 사용하지 않는 풍속이 만들어진 이유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날 비바람이 심해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었다는 설과 또 다른 하나는 진나라의 충신인 개자추(介子推)가 이날 불에 타 죽었으므로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었다는 설이다.
개자추는 중국 춘추시대에 진나라의 문공(文公)이 망명을 하게 되었을 때 19년 동안이나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일 정도로 받들며 모셨다. 그러나 문공이 나라를 되찾아 귀국한 후에는 다른 권세 있는 신하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개자추에게는 작록(벼슬과 봉급)을 주지 않았다. 이에 개자추는 용사지가(문공은 오르는 용, 자신은 죽어가는 뱀에 비유하여 부른 노래)를 지어 부르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면산(중국 산서성에 있는 산)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이 사실을 안 문공이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자추를 불렀으나 개자추는 나오지 않았다.
문공은 강제로라도 개자추를 산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신하를 시켜 면산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끝내 내려오지 않고 모친과 함께 버드나무를 껴안고 불에 타 죽었다. 문공이 그를 애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5월 5일에 불을 피우지 말도록 하였고, 이로 인해 중국에서는 한식날 문 위에 버드나무를 꽂거나 뜰에서 제사를 지내 개자추의 혼령을 위로했다고 한다.
한편 한식날에 찬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춘추시대 제나라에서 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한식을 냉절이라 하여 음식을 미리 익힌 숙식의 영향도 있어 보인다. 더운 음식으로 묘제를 지낸다면 산에서 불을 피울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로 인해 산불이 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태종 때는 금화령을 내렸고, 세종 때는 한식날에 바람이 부는 날이 많으므로 관원들이 금화를 지시하였다고 한다. 그 옛날에는 산의 중요성이 더욱 컸기에 찬 음식으로 묘제를 지내는 현명한 풍속이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민속 중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고 있는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현대화 속에 점점 사라져 가는 우리 민속과 그에 따른 유래를 찾아 정리하고, 우리 민속이 왜 그렇게 이어 오게 되었는지를 찾는 과정에서 나타난 우리 조상들의 얼과 슬기를 후손에게 전하여, 우리 국민, 특히 청소년들로 하여금 예(禮)를 바탕으로 한 곱고 바른 인성을 기르게 함에 그 목적이 있다. (2014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청소년 권장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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