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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에 나오는 이순신 장군의 둑제 이야기
명량에 나오는 이순신 장군의 둑제 이야기
  • 송혜란
  • 승인 2015.05.22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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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9월 15일 장군은 선상에서 어머님 위패 앞에 조용히 마지막 절을 올린다.
‘어머님 다만 저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이 장면에서 어머니 위패 위에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우리 역사에서 군신으로 추앙받는 치우천황의 그림이 있다. 오른쪽에는 ‘환’, 왼쪽에는 ‘천산백양 홍익이화’라는 글씨가 쓰인 편액이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치우천황에게 올린 세 번의 둑제기록이 있다. 둑제는 새벽 1~3시경에 올린다. 이순신 장군을 제관으로 지역의 수령들, 사령관과 장졸이 하나가 되어 군신이며 승리의 신인 치우천황께 왜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기원하는 출사제문을 낭독하여 전의를 다진 것이다.

강남 코엑스 앞의 봉은사를 예전에는 뚝섬 봉은사라고 불렀다. 서울의 명소 뚝섬이 치우천왕을 모시던 둑신사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뚝섬의 유래와 둑신사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소개한 분은 속리산 법주사 아래에 에밀레박물관을 설립하여 삼신신앙과 도깨비문화 등을 연구하여 우리 민족문화 연구의 당산목 역할을 하셨던 조자룡박사이다.

그는 계간 한배달 43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하였다.

‘둑신사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둑신사의 둑자는 독이라고도 읽는데 바로 동대문밖 뚝섬에 이 둑신사가 있었으며 우리가 뚝섬이라고 부르는 지명이 바로 이 둑신사의 둑에서 온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둑신사에 벽화가 있었는데 벽화의 그림이 치우와 황제의 탁록대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크기는 높이가6자, 길이가 36자 정도로 커다란 것이었다는데 지금 이 벽화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왜정 말기까지는 있었다고 하는데. 또 둑신기라고 있었어요. 치우기라고도 하는데 이 둑신기의 깃발이 태극기의 원형입니다. 이 둑신기에는 괘가 여덟 개가 다  들어 있고 가운데에 음양이 있는데 이것이 치우기입니다.’

태극기의 원형이 치우기인데 한민족과 연관된 중요한 별자리들이 주변으로 배치되어 있다. 박영효가 일본으로 갈 때 팔괘는 너무 많다는 이유로 4괘로 줄여간 것이 지금의 태극기이다. 치우천왕의 대장기를 모신 둑신사는 일제 때 강제 철거된 후 말을 키우는 장소로 사용하다가 나중에 경마장이 들어서게 된다.

일제의 역사왜곡과 민족정기 말살정책은 원구단 자리에 철도호텔을 짓고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고 남산 국사당자리에 식물원을 만든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서울 한강사업본부는 시민들에게 뚝섬의 유래를 알려주고자 뚝섬 한강공원에 뚝섬유래비를 2007년 9월 17일 설치했다고 밝혔다.

둑이란 무신, 전쟁의 신을 상징하는 치우천황의 모습을 본뜬 것으로 큰 창에 소의 깃털을 꽂아 만들었으며 매년 봄 경칩과 가을 상강 때 그리고 왕이 군대를 열무하거나 출병을 할 때 이곳에 둑기를 세우고 둑제를 지냈던 곳이라 하여 뚝섬으로 불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뚝섬유래비는 지하철 7호선 뚝섬유원지역 2번 출구로 내려 뚝섬한강공원으로 가면 볼 수 있다.

지난 2007년 국보 제304호인 여수 진남관에서는 이순신장군이 출정을 앞두고 지낸 둑제가 향토 민속문화보존회 주최로 재현되었다. 둑제는 해전에 앞서 군신을 상징하는 깃발을 꽂아놓고 바다를 향해 지내는 제사의식으로 고대부터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둑에 제사를 지낸 데서 유래됐다.

승리의 신인 치우의 머리를 형상화한 둑기는 소의 꼬리나 검은 비단으로 만든다. 이번에 재현된 이순신장군 둑제는 난중일기를 토대로 복원한 것으로 이순신은 전쟁 중 세 차례의 둑제를 거행하였다. 둑제 재현행사는 문광부 전통예술복원기금 6000만원을 지원받아 시행하였다.

서울시와 서울시민들이 역사적인 고증을 거쳐 치우천왕의 사당인 둑신사를 복원하여 잃어버린 우리역사 복원에 나서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제는 임진왜란 때 명군이 건립한 보물142호 동묘의 관우상도 치우천왕으로 바꾸어 모셔야 할 때이다.

명나라가 한족의 우월성을 내세우기 위해 소설 삼국지를 만들어 내고 군신의 자리에 있던 치우천왕을 대신하여 관우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중국과의 역사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순신 장군이 군신으로 모셨던 치우천황의 배달국 역사와 그 이전 환국의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글 사진 석현장(아시아문화재단 이사장, 대원사 티벳박물관장, 현장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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