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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실 전 여성부 차관의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
이복실 전 여성부 차관의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
  • 송혜란
  • 승인 2015.05.22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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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성인구 2,500여만 명 시대. 올해 처음 여성인구 수가 남성인구 수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사회에 진출해 있는 여성의 수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복실 전 여성부 차관이 그에 대한 답을 풀어놓는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최근 영국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남녀 취업률 차이는 22%로 세계 평균인 12.7%보다 훨씬 높았다. 기업 이사회에서의 여성 비율 또한 2.1%로 평균(16.7%)보다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여자의 자리는 좁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성공한 여성으로 좋은 선례가 되고 있는 이복실 전 여성부 차관은 “여성이 경제적인 능력을 키우고 열정으로 승부해 좋은 아웃풋을 내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23살 사무관에서 시작해 여성부 최초 차관 자리까지 오르며 30년간 직접 겪고 보아온 것들이 많을 그녀. 이 전 차관이 이 시대 여성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보자.

여성으로 여성부 차관에 오르기까지

이복실 전 차관은 1985년 제 2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30년간 공직에서 근무했다. 주로 여성가족부에서 일하며 보육정책국장과 가족정책국장, 대변인, 청소년가족정책실장 등 다양한 보직에서 정책들을 입안하고 시행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래에는 여성가족부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2013년 7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공직에서 물러나 실업자가 됐다며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그녀는, 현재 글쓰기와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이야기는 그녀가 여기까지 오기 30년 전부터 시작된다. 그녀가 막 23살이 되던 해다.
“대학생 때부터 저는 남들보다 빨리 직업을 갖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남성과 여성이 평등해야 된다는 이데올로기나 구호는 많지만 실질적으로 여성이 평등을 이루려면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저희 어머니를 보더라도 굉장히 종속적이고 희생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그게 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요. 저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직업부터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여성이 직업을 갖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죠. 일반 사기업에서는 군필자만 뽑아 여성은 아예 원서도 못 냈을 시절. ‘그럼 나는 어떻게 직업을 가질 수 있나?’ 골똘히 생각해보니 고시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고시는 남녀 모두가 동등하게 시험을 봐서 성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요. 그 중에서도 전 행정고시를 택했고 대학생 내내 고시공부에만 몰두해 졸업 후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사무관으로 시작해 끝자락엔 여성부 차관 자리까지. 여성으로서 큰 성공을 이룬 이 전 차관. 그러나 그녀가 그곳에 오르기까지 순탄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늘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뚜렷한 아웃풋으로 승부를 걸었다는 그녀. 그러한 그녀의 끊기와 추진력은 ‘이복실’이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말한다.
“공직에서는 여성이 적어 늘 일거수일투족 집중을 받았습니다. 특히 어린 나이에 공직에 올라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제 아래에 있어 대하기가 힘들었죠. 사무관 5년 차 때는 2년간 미국유학을 다녀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복귀해보니 제가 다른 동기들보다 훨씬 뒤처져 있었습니다. 그때 제 인생의 전환점을 주고자 부처를 한번 옮겼었는데 그곳에서는 또 텃새 때문에 가슴앓이를 많이 했지요. 심지어 승진 기회가 있음에도 다른 부처에서 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때 많이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래도 공직은 남녀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해 일만 열심히 하면 인정해주는 곳이라 악착같이 일했더니 저에게도 결국 기회가 오더군요. 물론 처음부터 차관이 되겠다는 욕심을 내진 않았습니다. 그저 현재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죠. 이복실이라는 브랜드를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중요시 했던 것은 회의준비였습니다. 늘 회의 때마다 마이크를 잡고 논리적으로 설득해 제 의견을 관철, 저만의 아웃풋을 만들었죠. 그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 1년 2년이 되다 보니 부처 간에 ‘이복실은 참 열심히 한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물론 첫 여성 차관이 되는 것도 수월하지는 않았습니다. 여성부 장관이 여성이다 보니 차관은 늘 남자가 맡아왔던 게 관례였지요. 당시엔 여성차관이 어떻게 여성장관을 잘 모실 수 있겠느냐는 선입견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보니 다른 부처의 장관은 다 남성인데도 남성차관이 모두 장관을 모시고 있는 겁니다. ‘근데 왜 여성만 안 되느냐?’며 설득한 끝에 제가 결국 여성부 최초 여성차관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전차관은 일을 함에 있어 추진력, 열정, 소통을 강조한다. 그 중 으뜸은 단연 ‘열정’이다.
“열정이 있으면 추진력과 소통은 같이 따라옵니다. 어느 정도까지 올라가면 사람들의 수준은 다 거기서 거기, 특별하지 않다고 봅니다. 근데 열정이 그 차이를 만들죠. 열정은 즐거운 삶을 사는데 원동력이 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아웃풋도 좋게 나옵니다. 그런 사람은 더 올라갈 가능성과 비전이 있습니다. 또, 소통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리더의 역할은 결국 옆에 있는 사람이 잘 따라오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성을 가지고 소통하면 사람들은 다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열심히 하면 나 하나 잘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직구성원들은 물론, 국민들까지 모두 잘 살게 된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 그게 진정성 있는 소통이고 그곳에서 리더십도 나오는 거죠.”

공직 은퇴 후에 더 멋진 인생

여기까지 들으면 누군가는 “결혼 안 하고 일만 했으니 가능한 일 아니겠어?” 혹은 “애가 없었겠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행정고시를 준비할 당시부터 딸 하나를 둔 엄마였으며, 적지 않은 나이에 둘째까지 출산했다. 심지어 두 딸이 갓난아이였을 땐 남편이 홀로 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홀로 육아와 일을 도맡으며 힘겨운 시간을 버텼다. 그런 그녀는 오히려 모성이 여성부 차관까지 오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모성이 원동력이 됐습니다. 20대 때 남편이 홀로 유학을 가 두 아이를 홀로 키웠습니다. 그때 제일 힘든 순간은 아침 출근 때마다 아이들이 ‘엄마 오늘 회사 안 가면 안 돼?’라며 잡을 때였죠. 뭐랄까. 죄짓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성이 곧 원동력이라고. 그런 아이들을 떼어놓고 나와 일을 하는 만큼 자랑스러운 엄마가 돼야겠다는 마음으로 더욱 악착같이 일했던 것 같습니다.” 
30년 공직생활을 쉼없이 달려온 그녀. 어느 날 후임 차관이 임명되고 공직을 떠나야 했던 순간이 찾아왔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짐을 쌌다. 퇴임으로 우울할 것만 같았던 그녀의 인생은 웬걸 다시 장밋빛으로 물들었다.
“제가 퇴임을 하자 오히려 주위에서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는 것이지요. 미국에 있는 아이들 집에서 좀 쉬고 돌아오니 다시 좋은 일이 시작됐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제가 쓴 글이 책으로 출간됐고, 또 최근에는 숙명여대에서 가족경영과 관련된 강의 제안을 받아 교수로 일하게 됐습니다. 제 나이가 올해 오십인데 아직도 저는 저에게 설렘 가득한 나날들입니다.”
그녀는 인생은 포기하지 않고 열정을 가질 때 늘 기회가 곁에 찾아온다는 걸 믿는다. 희망과 설렘으로 자신의 인생을 지켜갈 때 여성들에게 더 멋진 인생이 펼쳐질 것이란 믿음, 그 믿음을 잃지 말라고 그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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