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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한비야, 빛의 딸이 되어 돌아오다
바람의 딸 한비야, 빛의 딸이 되어 돌아오다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5.05.22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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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언니

 

한비야가 아홉 번째 저서 <1그램의 용기>를 들고 돌아왔다. 2009년 출간한 <그건 사랑이었네> 이후 6년 만의 일이다.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육로 세계일주를 떠나고, 세계 곳곳의 위험한 재난 현장을 돌아다니며 구호 활동을 펼친 그녀의 이력치고는 책 제목이 소박하다. 단지 1그램의 용기라니….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1그램의 용기는 무엇일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취재 김은정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아직 바람에 쌀쌀한 기운이 묻어 있는 초봄.  알록달록한 스카프를 두르고 인터뷰 장소를 찾은 한비야의 얼굴엔 온화한 미소가 가득했다. 바람의 딸이 아니라 차가운 바람을 녹이는 햇살 같은 모습으로…. 세계 곳곳의 재난 지역을 누비고 다니는 그녀인 만큼 대단한 아우라를 기대했으나 그냥 밝고 친근한 이웃집 언니 같은 느낌이었다.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왕성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인지…. 약간의 호기심과 함께 그녀와 기분 좋은 봄날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주 작은 용기

책 제목이 너무 가볍지 않나? 기왕 용기를 줄 거 1킬로그램도 아니고 왜 1그램일까?
“결정적인 순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는 1그램만의 용기로도 하자는 쪽으로 확 기울어요. 아예 용기를 낼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1킬로그램이 아니라 1톤을 쏟아부어도 꿈쩍도 안 하죠.”
그녀가 주고 싶은 용기는 아주 강하고 센 용기가 아닌 작은 용기, 아침 햇살 한 줌 같은 용기라고 한다. 오래도록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될 텐데 현실적인 여러 이유로 용기를 못 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중에 결코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란다.
<그건 사랑이었네> 이후 6년 만의 출간. 이번 책에는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미국 유학 시절, 대학 강단에 서게 된 이야기, 구호 현장의 긴박한 활동 경험, 앞으로의 꿈 등이 담겨 있다.

쉰둘의 나이에 떠난 유학길

지난 6년간 한비야에게 있었던 많은 변화 중 가장 큰 것이라면 2009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것. 그때의 나이가 쉰둘. 적지 않은 나이에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려 그야말로 깨지고 무너지고 몸부림치며 공부를 했다. 1년 내내 거의 매일 새벽 한 시까지 도서관에 껌 딱지처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고. 나이 오십이 넘어 집중력과 암기력도 떨어지는데 믿을 건 엉덩이의 힘뿐이었단다.
그렇게 모든 걸 쏟아부어 공부를 하고 2010년 미국 터프츠대학에서 인도적 지원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그동안의 다양한 국제구호활동 이력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왜 힘들여 공부를 해야만 했는지 궁금했다.
“구호 현장에 가보면 당장 지원이 필요한데 보고서 쓰랴, 절차 밟느라 지원이 늦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애가 탔어요.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항의도 많이 했지요. 그러다가 징징거릴 것만이 아니라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내가 직접 배워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학을 떠날 때도 9년간 일한 월드비전의 직책을 모두 내려놓고 갔다고 한다. 뭔가 끈을 남겨놓고 가면 마음은 더 안정적일지 모르나 새로운 것에 100% 몰두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고.
그렇다고 유학생활 중 공부만 한 것은 아니었다. 유학을 온 한국학생들 중 엄친아라고 할 수 있는 젊은 학생들이 막상 자신의 꿈을 잘 알지도 못한 채 방황하더라는 것. 그 학생들이 하나 둘 한비야를 찾아왔고, 그래서 그녀는 상담과 특강을 하며 언니로서 누나로서의 삶을 살아야했단다.
 
교수 한비야 강단에 서다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온 그녀에게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에서는 현장의 풍부한 경험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했다. 그렇게 해서 2012년 3월 국제구호와 개발협력이라는 과목의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현장의 절박성을 몸소 체험한 그녀이기에 한비야 교수님의 수업은 남다를 것 같다.
“일부러 수업시간을 아침 8시로 했어요. 내 수업만큼은 꼭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만이 듣게 하기 위해서지요.”
그녀의 작전은 성공이었다.
강의를 들으러 온 100명의 학생들이 눈에서 불꽃이 튀어나올 듯 집중하더라는 것. 
그녀의 수업은 단지 이론뿐 아니라 난민촌 24시, 가상 긴급구호활동 등 생생한 현장을  느껴보게 하는 살아있는 수업이다. 하지만 과제도 만만찮아 학생들에겐 원형탈모증 수업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고.
이렇게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을 보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몽땅 털어주고 싶다고 한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국제구호활동

교수가 되었다고 구호활동을 멈출 리가 없다 그녀는 일 년의 절반은 강의를, 절반은 국제구호활동을 하며 강단과 구호 현장을 오가고 있다. 2011년부터는 현장전문가로선 처음으로 유엔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으로 3년간 활약을 하기도 했다.
책에도 남수단, 말리, 세네갈, 모리타니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구호활동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또한  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 원주민들의 의식, 재미있는 아프리카 속담들도 실려 있어 우리가 잘 몰랐던 아프리카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들, 함께 구호활동을 하던 동료의 죽음 등 안타까운 대목도 실려 있다. 특히 2004년 쓰나미 현장에서 맡은 수십 구의 시체 냄새는 아직도 트라우마로 깊이 남아 있다고. 하지만 그런 트라우마는 뜨거운 가슴으로 일하는 현장에서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이기에,  또다시 대형 재난이 일어나는 곳이 있다면 가게 될까봐 걱정이 아니라 못 갈까봐 안달이라고 한다.
워낙 왕성한 활동을 하는 그녀이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대단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녀는 결코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건망증에, 길치에 말도 빨리 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고. 단지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고, 할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에 하자는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었을 뿐이란다.

검색보다는 사색을

책을 통해 그녀는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도 조언을 한다. 꿈이 뭔지 모르겠다는 학생들, 좋은 대학 좋은 직장만 강요하는 부모들에게 인생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라고 한다.
“꽃들도 저마다 모양과 향기가 다르잖아요. 사람들도 타고난 DNA가 다른데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우리 모두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지고 잠재력이 풍부할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그녀는 청소년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는 사색의 시간을 가져 보라고 힘주어 말한다. 사색의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은 일기 쓰기라고.
특히 SNS에 몰두하고 있는 요즘 청소년들에게 꼭 종이에 손으로 일기를 쓸 것을 당부한다.
“요즘 악플이나, 왕따 등의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잖아요. 그런 학생들이 생각의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맞닥뜨릴 때 고민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일기 쓰기는 오롯이 자기 자신과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생각의 뿌리가 깊어지게 되죠. 그러면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굳건히 지킬 수 있는 거죠. 생각을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걸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어려움까지 견딜 수 있어요.”

멘토, 선생님보다는 언니이고 싶다

강의로, 책으로, 수업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녀 덕분에 1그램의 용기를 내어 변화되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쁘면서도 무한책임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매일매일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오늘 아침에도 기도하고 왔다는 그녀는 96년 첫 책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출간하고 난 후 정말 하루도 기도를 빠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내 책은 무슨 자기계발서 같은 게 아니에요. 대단한 행동지침 같은 것도 없어요. 난 거창한 선생님, 멘토 뭐 이런 건 싫어요. 그냥 다정한 언니이고 싶어요. 반 발짝 정도만 앞서가는 언니로서 뒤처진 사람들의 손만 잡아 주고 이끌어 주고 싶을 뿐이에요. 길 가다가도 저를 보고 알아보시는 분들 중엔 선생님보다 언니라고 불러 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이제 그녀도 오십대 후반의 나이. 책에서도 오랫동안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녀 무릎이 좋지 않다고 적혀 있기에 세계 각국의 재난 현장을 다녀야 하는 그녀의 건강을 걱정하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씩씩한 그녀의 대답.
“당연하죠. 나도 나이 들면 무릎 안 좋아지고, 눈도 나빠지고, 주름도 생기고 당연한 거지. 하지만 그걸 인정하면 되잖아요. 무릎 안 좋아 산에 못가면 숲에 가면 되고, 눈이 나빠지면 안경을 쓰면 되고. 뭐가 걱정이야, 순리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건데.”
초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다운 말이었다.
“인생은 희로애락이 패키지야. 나라고 억울하고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도 할까 말까 망설이다 1그램의 용기를 냈어요.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이제는 빛의 딸이고 싶다

그녀의 삶의 모토는 명확했다. ‘재미있게 자유롭게 기왕이면 남 도와주면서 살기’
그러고 보니 남들이 다 부러워할만한 직장을 그만두고 바람처럼 세계일주를 떠나고, 그곳에서 만난 오지인들과 난민들을 도우며 살아온 그녀의 삶의 이력에 딱 맞는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쉽게 꿈꾸지 못할 일들을 용기 있게 실천해 온 그녀에게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매일 아침 마시는 밀크 티 한 잔, 보름달, 자장면 한 그릇. 그런 것들에 무한 행복을 느껴요. 행복은 일생을 기다렸다가 단 한 번 크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매일 소소하게 느끼는 작은 기쁨과 만족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행복이야말로 지속가능한 행복이니까요.”

바람의 딸은 이제 빛의 딸이 되길 소망했다. 그것도 한낮의 태양처럼 강한 빛이 아니라 겨울날 아침햇살처럼 맑고 다정하고 따뜻한 빛.
온기와 용기. 세상 어디를 가건 무슨 일을 하건 그것이 그녀의 역할이자 존재의 이유이길 소망한다는 그녀. 그런 간절한 소망은 책의 맨 앞장에도 적혀 있다.
‘아침햇살 같은 용기를 보태드립니다’
세계인들과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따뜻한 마음과 친화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소망을 이룬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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