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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봄을 지키는 작약꽃
남은 봄을 지키는 작약꽃
  • 송혜란
  • 승인 2015.05.24 2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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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면 모란, 서면 작약, 걸어가면 백합이다. 이리 봐도 예쁘고 저리 봐도 예쁜 미인을 두고 하는 일본 속담이다.

화려한 모란이 지고 나면 탐스런 작약이 피어난다. 모란이 진 뒤에 작약이 피어나는 전설이 있다.

옛날 파에온이라는 공주가 이웃나라 왕자를 사랑하여 혼약을 맺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왕자는 공주에게 자신을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남긴 채 전장으로 떠났다.

세월이 가도 왕자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는 눈먼 악사가 비파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 공주를 떠나온 왕자가 공주를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죽었는데 그 넋이 모란꽃으로 피어났다는 내용이었다.

공주의 슬픔은 컸다. 그는 곧바로 왕자를 찾아 떠났다. 모란꽃으로 변해버린 왕자 곁에서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사랑하는 왕자의 곁을 지키게 해달라고. 공주의 기도는 하늘을 감동시켰다. 마침내 공주는 함박꽃, 작약으로 변하여 왕자의 화신인 모란꽃과 나란히 지내게 되었다.

모란, 작약, 연꽃은 불가의 공양화이다. 불전장엄과 법당의 꽃살, 천정, 탱화 등에는 위의 꽃문양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꽃나라의 황제를 모란이라 부르고 재상을 작약이라 부른다.

작약의 자태가 오나라의 절세미인 서시가 술에 취한 모습 같다고 하여 취서시라고도 부른다.

고려 의종은 작약꽃을 무척 좋아하였다. 궁중정원 상림원에 화려하게 피어난 작약을 보고 시를 지었다. 의종임금의 작약시에 황보탁이 화답하는 시를 지어 바쳤다. 작약시를 읽은 의종은 매우 만족하여 황보탁에게 높은 관직을 내렸다.

 

누가 꽃을 보고 주인이 없다던고
임금님이 매일 친히 와 보신다네
첫여름을 응당 맞이해야 할 텐데
혼자서 남은 봄을 지키고 있구나

졸던 낮잠이 바람결에 깨이고
새벽 단잠이 빗물에 지워졌네
궁중의 여인들이여 질투를 말게나
아무리 닮아도 진짜는 아니라네.‥

고려 황보탁의 작약시이다.

음식의 독을 푸는 데 이보다 나은 것이 없어서 작약이란 이름을 얻었다. 우리나라에는 호작약, 적작약, 산작약, 참작약, 백작약 등 다섯 종의 작약이 있었으나 지금은 외국에서 개량된 작약들이 들어와 수백 종의 작약을 볼수 있다.

작약의 뿌리는 진정제, 소염·진통, 진경제 등 20여 종의 질병 치료제로 쓰인다.

모란과 작약은 미나리 아재비과의 식물이다. 모란은 목작약으로 부르고 작약을 초목단으로도 부른다. 모란은 나무(목본)이고 작약은 풀(초본)이다.

제국대장공주는 고려 충렬왕의 비이며 대원제국 쿠비라이 칸의 공주이다. 그는 고려에 시집와서 충선왕의 어머니가 되었다.

고려왕실 수녕궁 향각에 탐스런 작약꽃이 피어났다. 제국공주는 작약의 향기와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가 눈물을 흘렸다. 멀리 떠나온 고향생각에 빠진 것이다. 그는 우울증에 빠져 있다가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화순 동복 유천리에 끝없이 펼쳐진 작약밭이 너무 아름다웠다. 지난해의 기억을 살려 어제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극락의 정원 같던 작약 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약재로 한약방에 모두 넘겨 버린 것이다. 지난해 사진만 남았다.

아쉽고 허망하다. 푸른 찻잎이 피어날 때 작약꽃도 피어난다. 보성 차박물관 주변에도 입구나 빈터 여러 곳에 작약 밭을 꾸며 놓으면 보성을 찾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기쁨과 볼거리를 선물할 것이다. 글 사진 석현장(아시아문화재단 이사장, 대원사 티벳박물관장, 현장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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