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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의 사진과 이야기1
김도형의 사진과 이야기1
  • 김도형 기자
  • 승인 2015.05.26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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母情의 깊이

저녁에 헤드폰을 쓰고 노래를 들으며 한 시간 정도 걷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된 지 오래다.
집과 가까운 불광천을 따라 한강까지 가는 코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혼자 호젓하게 걷기 좋은 길을 찾아내어 꾸준히 걷는다.

그 길은 서울 마포와 경기도 고양의 경계를 이루는 향동천을 사이에 둔 둑방길인데,
이 쪽과 저 쪽을 연결한 작은 다리 두 개를 이용해 트랙을 돌 듯
한 시간에 몇 번이나 서울과 경기도를 넘나든다.

경기도 길 쪽 목재 가구공장에는
내가 지날 때마다 꼬리를 치며 반가워하던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어릴 적 시골집에서 기르며 사랑을 주었던 추억 속의 개들을 떠올리며
쪼그리고 앉아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곤 했는데,
지방 출장을 다녀와 제법 오랜만에 그 곳을 지나던 하루는
그 개가 갑자기 사납게 짖으며 달려드는 통에 혼이 나서 뛰듯이 달아난 적이 있다.

건너편 길을 걸으며 암만 생각해 봐도
나와 그토록 사이가 좋았던 그 개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혹시 그 날 입은 내 옷 색깔이 자극을 주어서 그랬을까 하는 짐작을 해보며
다시 그 공장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 때도 역시 동네가 떠날 듯이 짖어대며 나를 위협했지만
이번에는 무서워도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서서
도대체 그 원인이 뭔지를 알아 보려는데,
순간 공장 안쪽에서 몇 마리의 새끼들이 쪼르르 달려나와
내 신발 끈과 헤드폰 줄을 물고 흔들기도 하며 천진난만한 장난을 쳤다.

나와 새끼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본 어미개는 더 크게 짖었는데
그제서야 그 개가 낳은 지 얼마 안 된 자기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본능으로
사람의 접근을 경계해서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끼들을 쓰다듬어 주고 돌아오는 길에는
어둠이 짙어지고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어미는 새끼들을 둥지로 들였을 것이다.

사람이나 개가 지능은 다를지 몰라도
자식이나 새끼를 향한 모정의 깊이는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도대체 모정의 깊이는 몇 미터일까.

글 사진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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