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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시사평론가 최양오 박사, 선친의 뜻 삼평삼민주의를 말하다
인기 시사평론가 최양오 박사, 선친의 뜻 삼평삼민주의를 말하다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5.06.19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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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번영의 길
 

인기 시사평론가로 여러 방송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최양오 박사가 본인의 신상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방송 출연 이전에 고위 공무원과 최첨단 국내외 기업들의 임원을 역임한 화려한 경력의 실력파 평론가였다. 한국 현대사의 귀감으로 꼽히는 정치가 금암 최치환의 아들로서 부친이 제창한 삼평삼민주의를 널리 소개하고 있어 더욱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취재 백준상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한 달 안에도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지는 대한민국에서 그 많은 사건들의 맥락과 핵심을 짚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뉴스를 쫓아다니다 보면 진실에 접근하기보다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미궁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럴 때 도움 되는 것이 그 분야에 대해 폭넓은 식견을 가지고 있는 시사평론가들의 ‘촌철살인’(寸鐵殺人)과도 같은 해설이다.
정치, 경제, 사회 사건들, 그리고 여러 분야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사건들 속에서 평론가들의 도움말로 일반인은 물론 기자들도 사건의 맥락을 잡을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대한민국 방송계에서 가장 ‘핫’한 시사평론가로 꼽히는 최양오 박사도 그런 평론가들 중 하나다. 그는 MBC를 비롯해 MBN, 연합TV뉴스, YTN, 채널A 등의 뉴스 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해 시사문제에 대해 활발한 해설을 펼치고 있다.
정치평론가, 경제평론가, 시사평론가 등의 직함으로 소개되는 최양오 박사는 그만큼 다방면에서 활약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고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사건들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의문점들을 풀어준다. 그의 해설을 들어보면 그가 사건의 핵심에 대해 거침없이 접근하며 분명한 논조로 말한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게 된다.

명쾌한 해설과 분명한 논조의 인기 시사평론가

최양오(崔陽五 · 56) 박사는 경제학을 전공한 경제학자이다.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국어대에서 강의를 맡았었으며, 청와대 비서실 행정관으로 활약했을 정도로 실력도 꽤 인정받았다. 국내외 최첨단 기업들에서 CEO 등 고위직을 역임하면서 현장경험도 폭넓게 쌓았다. 그런 그가 학교에 남아 교직의 길을 걷지 않고 방송에서 활약하는 이유는 뭘까?
“세상은 복잡해졌고 더불어 사회 구동 메카니즘도 예전보다 훨씬 정교하고 복잡해졌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다중과 접해야 할 필요성이라고 할까요?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폭넓게 접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강의보다는 매체를 택했습니다.”
전파매체의 파급력이야 대학 강단에 비할 바 아닐 정도로 대단하다. 최양오 박사의 방송활동은 지난 2005년 미국 CBS방송 인터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2008~2009년 LA중앙방송 활동을 거쳐 지난해 1월 국내에서 본격화 됐다. MBN에 고정 출연하며 준수한 시청률을 올리기도 하는 그는 방송을 통한 평론 활동에 재미를 붙이고 크게 만족한 듯했다.
경제평론에서 정치평론, 시사평론으로 이어진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가 정치에 대해 보고 듣고 공부한 바가 많지만 근본적으로 경제를 현실사회와 이어주는 것이 정치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경제학 이전에 정치경제가 있었다.”면서 “경제학의 사상과 이론이 현실에서 구현되고 발전하려면 정치 메카니즘이 잘 돌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도 실질적으로 경제와 정치가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인 것이다.
그렇다면 최양오 박사가 시사평론가로서 가진 생각, 기준점은 뭘까. 사회적 사건이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단순하지 않으며, 이를 해설하는 평론가들은 사건 앞에서 갖은 지식과 정보를 동원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문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설가 자신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모르고 그 어떤 기준점이 없다면 그 역시 사건과 함께 표류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그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평론을 하며 방송을 통해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생각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헌법 제1장 제1조 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민주’(民主)는 잘 되어 있는데 ‘공화’(共和)는 잘 안되어 있습니다. 정치, 사회적인 면에서 사적 이익보다는 평등을 목표로 한 공적 이익을 중요시하는 것을 ‘공화’라고 볼 때 우리 정치나 사회가 그 같은 공공의 목표에 크게 미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그 해결을 주창한 것이 ‘삼평삼민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삼평삼민주의(三平三民主義)’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지력과 권력과 부력의 향유를 평등하게 하여 국가의 번영을 꾀하고, 각자가 개개인의 행동과 나라의 발전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를 위해 삼평삼민주의는 정치적으로 평등의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평준의 민생경제, 사회적으로는 평안의 민권사회 라는 3대 원칙을 내세우고 있으며 대한민국 내에 ‘공공의 선’과 ‘가치관’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합의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최양오 박사는 현재 우리 사회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으려면 나라 존립의 가치관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며 이는 삼평삼민주의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삼평삼민주의는 3만불 시대를 넘어 초일류 선진국가가 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이제 그가  굳게 믿고 실천하는 정치적 소신이 되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취한 나라로 매우 특이한 케이스”라는 그는 “그동안 압축성장을 하며 정치와 경제가 잘 굴러왔는데 이제 부작용이 나타나며 사회 여러 군데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우리 사회는 ‘혼혈자본주의’로서 신자유주의, 계획경제, 사회자본주의 등 여러 이념과 메카니즘이 뒤섞여 있습니다. 국민들의 사상적 이념, 가치관이 흔들리면서 대립과 혼란이 일어나고 사회가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이념과 가치관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한데 저는 이 그릇을 삼평삼민주의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삼평삼민주의의 사상과 가치관과 이의 발현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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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꾸는 꿈은 단순한 꿈에 지나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삼평삼민주의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가고 있는데 그럴수록 좋은 세상을 앞당기는데 일조 하리라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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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번영의 길, 삼평삼민주의가 삶의 신조

삼평삼민주의는 원래 1986년 혼란한 국내 상황에서 5선 국회의원인 금암 최치환(錦巖 崔致煥)이 임시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최초로 제창한 것이다. 금암은 경찰 출신으로 해방 후와 6.25 때 공비 토벌에 큰 공을 세우고, 후에 국회에 진출하여 크게 활약한 한국 현대사의 큰 인물로서 최양오 박사의 부친이기도 하다.
금암은 한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3대 요체는 생존, 독립, 번영이라고 보았고 엄정한 역사의식과 치열한 애국심으로 구국의 선봉에 선 탁월한 무장으로서 나라의 생존과 독립을 지켰다. 또한 민주주의와 의회정치의 원칙에 충실한 정치가이자 사상가로서 대한민국이 상식이 통하고 더불어 번영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정의와 국가적 가치관의 확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국가경영전략의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은 민주화의 거센 흐름과 지성의 반란, 더불어 저소득층의 욕구불만이 강력하게 표출된 시기로 사회 내 구성원 간 인식의 단절과 대립이 태동되기 시작하고 이에 기초한 사회적 갈등과 모순이 노출 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우리 사회가 동질성과 통합수용력을 상실한 채 내적분열을 겪고 있는 일대 위기로서 대한민국의 독립, 생존, 그리고 번영을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한 금암은 이러한 민주의 위기, 배분의 위기, 갈등의 위기에 대한 새로운 국가경영방향을 삼평삼민주의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1980년대 중반의 시대적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적 위기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으나 배분의 위기와 갈등의 위기는 오히려 심화되어 삼평삼민주의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금암은 세상을 떠났으나 그가 제창한 삼평삼민주의는 남아 뜻있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한 사람이 꾸는 꿈은 단순한 꿈에 지나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삼평삼민주의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가고 있는데 그럴수록 좋은 세상을 앞당기는데 일조 하리라 봅니다. 저 역시 삼평삼민주의를 실천하려 애쓰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넓혀가려 합니다.”
삼평삼민주의를 실천하고 전파하는 것은 최양오 박사로서는 선친의 유지를 받드는 일이기도 하다. “선친을 닮으려 하지만 부족함을 느낀다.”는 그는 “그로 인해 정진하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선친은 그가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28세 때 작고했다. 늘 바쁘게 일했던 아버지였지만 일요일 저녁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했고 자식들에게 다정다감했다고 그는 기억했다.
최 박사는 부친과 함께 등산과 테니스를 자주 즐겼고 아버지의 활약무대에 따라 종종 정치인들이나 축구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때 만난 정치인, 경제인, 공무원들을 비롯해 그가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여러 방면의 지인들은 그가 평론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평론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데 그들의 정보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기업과 사기업, 그리고 국내기업과 외국기업의 고위직을 두루 거친 최양오 박사의 이력도 평론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젊은 나이에 청와대 행정관으로서 5년 동안 일했던 그는 “많은 식견과 경험이 있었으면 보다 성숙한 판단을 할 수 있었지 않나 하는 자기반성이 많았다.”면서 “그동안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소양과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 아직도 배울 것이 많긴 하지만 나름 큰일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최 박사는 1999년 미국계 반도체 회사인 페어차일드코리아의 부사장으로 부임했다. 페어차일드는 세계 최초의 반도체 회사로 당시 삼성의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인수해 한국에 회사를 설립했다. 최 박사는 7년여 동안 근무하며 세계 최고의 기술을 한국에 이식하며 6천억 매출을 1조원으로 늘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최 박사는 2006년에는 차병원 계열로 현재 국내 줄기세포 치료 분야 선두를 달리고 있는, 초창기 차바이오텍의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당시 전형적이고 고루한 기업문화를 거부하고 열린 경영방식을 도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의 선진 경영시스템을 회사에 접목하려 했다고 회고했다.

한국 현대사의 거목, 부친 최치환 닮고 싶어 

최양오 박사는 보수를 자처한다. 그는 분명히 자신의 정치적 성향은 ‘보수(保守)’라고 밝혔다. 그가 김무성 한나라당 대표의 손아래 처남이기 때문일까? 정치권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그의 비판적 성향이 빛을 발한다. 그는 보수에 대한 확실한 개념 정리와 함께 개선점, 비전에 대해 제시하며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보수가 될 것을 바랐다.
“보수는 뭔가를 지키려 합니다. 시장경제주의와 자유경쟁시장 체제를 지키려 하지만 여기엔 변화가 심합니다. 보수는 굉장한 혁신과 스피드와 진보적 성격을 가져야만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지킬 수 있습니다. 보수는 어디서나 변화, 역동성, 변혁, 혁신 등에 바탕으로 한 보수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현재의 정치계는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보수 진영은 뭘 지켜야 하는 줄 모르고, 진보 진영은 어디로 가야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보수 진영은 민주주의, 공화주의, 공공의 선이 뭔지도 모르고 진보 진영은 목적지를 말해주지 않고 뒤엎는 일을 다반사로 한다는 것이다.
독수리가 날기 위해서는 좌익과 우익이 함께 움직여야 하듯이 우리나라가 초일류 선진국가로 발돋움 하려면 보수와 진보가 조화 있게 가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보수는 ‘고리타분’이 아니며, 하루하루 역동적으로 변하는 자유시장경제에 맞게 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공격적으로 수비해야 합니다. 진보도 보수의 성격을 일부 가져야 하며, 편 가름을 짓기보다는 나아가야 할 지점을 확실히 알고 제시해야 합니다.”
최 박사는 현재 성장이 정체된 경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하루빨리 집중과 선택을 통해 육성할 산업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경제 규모가 커져 정부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통하지는 않지만 잘 하는 분야를 융합하고 집중된 산업화를 통해 번영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불확실성을 빼줘야만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으며 경제를 성장시켜야 잡음을 없앨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최근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복지 및 연금문제에 관해서는 “어느 부문에 복지를 해야 하느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진 적이 없다”면서 “먼저 어디에 복지 예산을 쓸 것인가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재원을 마련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 고 말했다.
특히 연금문제에 대해서는 “전 세계의 추세가 확정형보다는 기여형으로 가고 있다”면서 “돈을 더 많이 낸 사람에게 혜택이 더 가게 하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최양오 박사는 충실한 동반자인 공태원 여사와의 사이에 대학생인 두 아들을 두고 있다. 크리스찬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조찬 기도회를 통해 4차례나 식사 했을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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