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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MBC 이진숙 사장
대전MBC 이진숙 사장
  • 송혜란
  • 승인 2015.06.21 0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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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은이 만난 Queen 8
 

                           “IS에 들어간 김 군! 네가 본 이슬람의 정의는 사실이 아니다.
                           원한다면 내가 ‘진짜’를 찾아가는 여행을 함께 해줄 수도 있다!”


                        
영국시인 토머스 엘리엇이 ‘잔인한 달’이라고 명명한 4월, 잡지 ‘퀸’이 선정한 4월의 퀸은 누구일까? 1991년 걸프전의 종군기자로 활약했고, 2003년 이라크전 당시에는 국내 기자로는 유일하게 바그다드에 입성해 전황을 보도함으로써 세간에 ‘바그다드 영웅’으로 알려져 있는 여성 언론인이다. MBC 워싱턴특파원, 기획홍보본부장, 워싱턴 지사장, 2014년 MBC 보도본부장을 거쳐, 올해 3월 대전MBC의 사장으로 부임해 MBC 여성 임원의 역사를 쓴 이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동 지역의 전문가인 그녀는, 19살의 한국의 젊은이가 극단적인 테러단체인 IS에 스스로 들어가는가 하면 환한 대낮에 공식장소에서 주한 미국대사가 공격을 당하는 황당한 현실에, 어떤 의견과 해법을 내놓을까? 남산에 있는 식당 HARVEST NAMSAN에서 그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글 김다은 교수 사진 양우영 기자

-남산에 올라와서 일몰의 서울풍경을 바라보니 어떤 기분인가?

하늘에서 붉은 기운이 사라지고 푸른 기운이 내려앉는 이런 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던가. 이렇게 순식간에 변하는 서울을 바라보니 정말 새롭다. 그런데 오늘 일정이 바빠서 아이라인도 제대로 긋지 못했다. 이 시간에 사진을 찍게 되어 다행이다. 하하! (의외로 털털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MBC 기자로 업을 바꾸었다. 계기가 무엇이었나?

나를 방송으로 연결해준 매체는 영어였다. 졸업 후 영어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5남매의 집안이라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한동안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있은 후, 휴직을 하고 통역대학원을 가게 되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분식집에 갔다가 TV에 87년도 신입사원(기자, 카메라 기자, PD, 방송기술 등)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지금도 사투리 억양이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더 심해서 방송국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통역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세계적인 앵커들의 활동이나 자료를 계속 접하면서 그들을 선망했던 때라, KBS와 MBC에 동시에 서류를 냈다. 두 방송국의 시험날짜가 같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는 MBC를 선택했다. 다행히 1986년 딱 한 번의 시험으로 합격했다.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MBC에서 두각을 드러낸 종군시절 이전에도 북극 탐험 다큐 등 모험심과 대담함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경험이 있다. 모험이나 위험을 감수하는 남다른 기질이 있는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계를 더 많이 보고 경험하고 싶었다. 그곳이 북극이건 전쟁터이건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모험이라고 부르는 시도를 하는 것 같다. 개인적인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번은 헤밍웨이의 『킬로만자로의 눈』에 자극받아 아프리카의 가장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 혼자 떠났던 적이 있다. 고산병에 걸려 정상을 앞에 두고 포기했다. 헤밍웨이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킬로만자로에 한 번 더 갈 것이다.

-종군기자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 남다른 준비가 있었는가?

70-80년대 기사들에는 팔레스타인 테러가 많이 나오는데(가령 TWA 비행기 피랍 사건 등), 이는 팔레스타인의 ‘자유투사들’(다른 편에서 보면 테러분자들)에 의한 것이 많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나중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있었다. 나는 ‘아라파트 의장은 무엇 때문에 테러를 지휘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팔레스타인과 중동 지역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게다가 통역대학원을 다니면서 미국에서 가져온 미국과 중동에 관한 기사를 교재로 많이 접할 수 있었던 것이 도움이 됐을 것이다. 더구나 86년에 입사해서 제일 먼저 해외출장을 가게 된 곳이 튀니지의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PLO)였다. 그렇게 몇 년 사이에 세계사를 뒤흔든 사건 속으로 단숨에 들어갈 수 있었다.

-종군기자 시절, 여자였기에 더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나?

미사일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다. 전쟁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는다. 전쟁 취재 자체가 어려운 것이지 여자이기에 더 어려웠던 점은 없었다. 중동에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남성들이 전쟁터로 가버렸거나 사회주의 국가여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많은 나라들도 꽤 있다. 반대로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등 여성 차별이 많은 곳에서는 ‘어떻게 여성이 이런 위험한 일을 할까?’하며 신기해하는 면이 있어서, 그런 차원에서 나에게 친절했었다.

-사람들은 한때 당신을 영국 선데이 타임즈 마리 콜빈에 비유하곤 했다. 마리 콜빈은 걸프전과 체첸 분쟁, 코스보 내전, 스리랑카 내전 등 종군기자로 전장을 누비다가 한쪽 눈을 잃었고 결국 시리아 내전 때 사망한 분이다.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하는가?

직업정신 때문에 현장에서 돌아가셨으니 훌륭한 분이다. 마리 콜빈 씨는 돌아가시고 나서 사람들에게 더 잘 알려진 것 같다. 내가 이전부터 멘토로 삼았던 분은 이태리 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씨였다. 여기자로 유일하게 이란의 지도자인 호메이니를 인터뷰했던 분이고, 특히 호메이니에게 여성의 성차별에 대해 항의하면서 “차도르를 쓰고 어떻게 수영을 할 수 있겠느냐?”며 차도르를 벗어 던졌던 일화가 유명하다. 그녀는 키신저를 인터뷰한다든가 당시에는 거의 불가능했던 취재들을 해내면서 여기자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나는 도리어 그분을 닮고 싶었고 동일시한 부분이 있다.

-당신은 종군기자 이후 MBC 임원의 길을 걸어왔다. 스스로의 선택이었나?

기자의 길에는 두 갈래가 있는데, 기자와 행정이다. 가령, 워싱턴포스터지 같은 경우는 30-40대 젊은 나이에 편집국장(편집인)으로 일하는 경영인이 있는가하면, 현장 취재나 기사 작성을 하는 50-60대 노기자들도 상당수 있다. 한국은 서양과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직급(차장, 부장, 부국장, 국장)이 올라가는데, 그와 함께 직위(보직)를 받지 못하면 이상하게 보는 측면이 있다. 한국은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대기자나 노기자를 귀하게 여기는 체제가 아직 아닌 것 같다. 나도 2010년 MBC 기획실의 정책협력부장의 제의를 받고 기자의 길을 떠나는 것에 대한 약간의 망설임이 있긴 했다. 하지만 보직의 길을 가면서 도리어 MBC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어, 삶의 전환점이 된 셈이다.

-여성임원이어서 힘든 점이 있는가? 그리고 종군기자로 활동할 때와 달리,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세간의 관심이나 호감도가 줄어들고 있다. 이를 어떻게 보는가?

언론사나 기업의 임원의 자리는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남성이 많은 영역에서 여자 혼자라는 것은 눈에 띈다는 점에서 좋게 작용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요즘 방송국에서는 ‘실력으로 뽑으면 여성들이 다수가 될 수 있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여성들의 진출이 많아지고 있지만, 방송국을 포함해 우리 사회의 문화는 여전히 남성 위주로 형성되어 있는 편이다. 오랜 전통처럼 내려오는 남성문화 코드를 공유하는 것이 어렵다. 한편, 세간의 관심과 관련해서는 과거의 유명세를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바그다드는 그립다!

-1991년에 출간한 『오늘 밤 마이크가 그립다』를 구하지 못했다. 마이크는 중동지역에서 만난 남자인가 어린 소년인가? 그리고 최근에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가?

역시 소설가다운 상상이다. 영국에서 3개월 연수를 받던 기간이 있었는데, 방송 ‘마이크’를 놓고 있던 시절이었다. 『오늘 밤 마이크가 그립다』는 당시의 일기를 바탕으로 취재수첩을 출간한 것이었다. 지금도 가끔 ‘마이크’가 그립다. 하하.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이다. 두 번이나 읽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아시아와 유럽이 공존해서 아침은 아시아서 먹고 점심은 유럽에서 먹을 수 있는, 그 특이한 도시가 참으로 매력적이지 않나.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미국 외교와 중동학을 공부했는데 석사과정이었나? 요즘 중동과 미국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공공정책석사(MIPP)로 외교·국제관계였다. 지금의 미국은 중동에서 사면초가라는 지적에 공감한다. 2003년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공했는데, 그 계기가 2001년 911사태였다. 이라크가 핵무기나 생화학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지만, 진실이 아니었다. 역사에 가정이라는 것이 없지만, 그때 이라크를 공격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2003년의 이라크 공격으로 중동에서 반미 감정과 극단세력들이 확장하게 된 계기가 됐고, 대표적인 것이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 이후 중동에서의 반미감정이 더 격렬해졌고, 그것이 극에 달한 것이 IS가 아닌가 한다. 미국이 의도한 중동에서의 민주주의가 실패한 셈이다.

-최근 ‘김 군’이 IS에 가담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김 군은 우리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고 부모와도 쪽지로만 대화가 가능했던 ‘외로운 늑대’였다.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이라면 IS의 어떤 점이 그를 이끌었을지 진지하게 분석해 봐야할 것이다. 가령 일본에서는 대학교수가 IS에 자진해서 들어간 적이 있다. 하지만 김 군처럼 사회부적응자의 선택은 막다른 돌파구였기 때문에 코멘트 자체가 무리다. 전 세계에서 2만여 명이 자진해서 IS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이들 가운데는 사회부적응자, 특히 유럽에서는 그 사회에서 차별받거나 불만이 많았던 사람들이 다수였다고 한다. IS는 조직이지만 자기들은 ‘국가(The Islamic State)’로 인식하고 있다. 이슬람 세계는 ‘엄마’와 같은 어원의 ‘움마’를 지향하는데, 이는 국경도 없고 인종도 없고 이슬람을 믿는 사람은 모두 형제와 자매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좋은 뜻으로 뭉쳤으면 정말 좋은 단체가 됐을 것이다. IS가 위협적인 이유는 반미/ 반서방/ 반유대교를 지향해 뭉치고, 이교도를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라 성전으로 믿는다는 점이다.

-제 2의 혹은 제 3의 김 군이 나오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10대 중반에서 20대 중반은 무서운 나이이다. 주변이 잘 보이지 않는 때이기에 ‘꽂히기’ 쉽고 감정적으로 판단하기 쉽다. 원천적인 조치는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차원에서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가령 미국에서는 IS와 접촉을 하던 사람이나 IS로 가던 사람을 공항에서 체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부에서 사태를 미리 파악해서 막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대낮에 미국 대사가 공격을 받는 일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중요한 회의장에 들어가려면 엑스레이를 거쳐야 하고, 이 과정에서 무기를 소지한 출입자는 당연히 적발을 하게 된다. 앞으로 테러에 대한 국내외 시스템 준비가 시급하다.

-IS에 들어간 김 군에게 기자로서 만났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나는 한국에서도 살아봤고 이슬람 세계를 많이 여행해봤고, 이슬람에 대해서 공부도 많이 했다. 너는 너무 성급한 결정을 했다. 네가 들어간 길이 이슬람의 정의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이 아니다. 네가 정말 좀 더 이슬람을 공부한다면 전혀 다른 이슬람을 보게 될 것이다. 원한다면 내가 ‘진짜’를 찾아가는 여행을 함께 해줄 수도 있다.”

-직장의 일 이외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토스트 마스터(Toast Master)라는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클럽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느낀 사람이 창설했다. 우리나라에도 60여개가 있는데, 내가 그 모임에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고 지도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즐긴다. 임원이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새로움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MBC의 프로그램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저녁 5시에 하는 ‘이브닝뉴스’가 좋은 포맷의 보도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다매체와 다채널 시대이다. 예를 들어, 주한 미국 대사가 테러를 당했던 시간이 아침 7시 30분이었다면 저녁 시간까지 수많은 보도 채널에서 시시각각 보도를 해주게 된다. 그러므로 보도 프로그램은, 처음 사건을 접한 사람이나 이미 그 사건에 대해 정보를 가진 사람에게나, 그 의미와 새로운 전망을 줄 수 있어야 좋은 프로그램이다. 그런 점에서 5시의 ‘이브닝뉴스’가 심층보도를 하고 있다.

-최초의 여성 지방 MBC 사장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방송국의 목표는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다른 사람들이 많이 만드니까, 나는 유익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자신의 뜻이나 능력을 실현하기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한 텔레비전 제조업체 광고에서 ‘숨어있는 1인치를 찾았다’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나도 우리 사회의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아 보여주고 싶다. 그런 점에서 대전이라는 지역은 나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것이다. 개인적인 성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은 사회를 위해, 내 인생을 사회적 책무와 연결시켜 나가지 않을까 한다.

-당신이 퀸이라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영어 표현에 “The sky is the limit!"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가 흔히, ”엄마, 나 얼마나 사랑해?”라고 물으면 ”하늘만큼 땅만큼“이라고 표현한다. 이때 ‘하늘만큼’이란 한계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한계“라는 것은 무한정이라는 뜻도 된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인생을 살지 않는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시도해볼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다. 원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퀸의 자질일 수 있지 않을까?
 

김다은 교수는...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이화여대 불어교육과와 동 대학원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파리 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1억 고료 제3회 국민 문학상에 장편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가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및 창작집 ‘금지된 정원’ ‘쥐식인 블루스’ ‘모반의 연애편지’ ‘훈민정음의 비밀’ ‘이상한 연애편지’ ‘러브버그’ ‘위험한 상상’과 문화 수필집 ‘너는 무엇을 하면 행복하니?’, 그리고 문화 칼럼집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이 있다. 서간집 ‘작가들의 연애편지’ ‘작가들의 우정편지’ ‘작가들의 여행편지’를 엮어냈다. 프랑스어 소설 ‘Imagination dangereuse' 'Madame'을 발표했으며, 번역서 ‘다른 곶’ ‘에쁘롱’ ‘모데르니테 모데르니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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