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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의 참행복 이야기
김수환 추기경의 참행복 이야기
  • 송혜란
  • 승인 2015.06.21 0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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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기도-일주일간의 특별한 강연 기록
 

한평생을 진정한 사목자로 살아온 김수환 추기경. 6년 전 세상을 떠나고 그의 빈 자리를 그리워해온 우리 곁에 김수환 추기경이 다시 한번 책으로 돌아왔다.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에 참 신앙과 행복을 위한 강연을 기록한 책 <거룩한 경청>. 김수환 추기경의 내면의 기록을 담은 이 책은 15년 전 김 추기경이 일주일간 12회 강연했던 내용을 담고 있다. 맑은 영성으로 가득 차 말 하나하나가 가슴을 울리는 김수환 추기경의 감동 강연을 경청해 본다.

글 송혜란 기자 사진 서울신문 자료제공 여백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를 기억하는가?
“하느님의 백성은 위안을 필요로 한다. 정말 위안 받기를 원한다. 오늘날 교회는 마치 야전병원처럼 보인다. 위로가 필요한 상처들이 너무나 많다. 제발 성직자가 아닌 사목자가 되어 달라. 하느님 백성을 위로해주는 진정한 사목자가 돼 달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 같은 말은 국내 성직자들에게 보내는 서릿발 같은 질책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만큼 현 교회들이 본래의 존재 이유에서 벗어나 ‘섬기는 자’가 아닌 ‘섬김 받는 자’로 전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 정신적 지도자, 사상가, 실천가

국내에도 종교를 떠나 국민에게 추앙받는 한 성직자가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 때로는 따스하고 온화한 미소로, 때로는 단호하고 올곧은 목소리로 그가 늘 역설하던 것은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였다. 그 믿음으로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살아온 김 추기경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자신의 사목 표어처럼 ‘세상 속의 교회’를 지향하며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종교인의 양심으로 늘 바른길을 제시해 왔다.
특히 김 추기경이 지나온 사제로서의 길은 한국 격량의 근현대사와 그 맥을 같이한다. 일제강점기와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신학을 공부하고 한국전쟁이 한창인 때에 사제 서품을 받았던 그는, 이후에도 군부독재의 강압과 탄압을 맨몸으로 맞서야 했던 불행한 사제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불면에 시달려 왔다는 말년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조금이나마 그의 아픔을 짐작해볼 뿐이다. 종교와 종파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의 존경을 한몸에 받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시대의 현실을 외면한 종교적 이상이란 있을 수 없다는 신앙관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리라. 그런 그는 세상을 떠나서도 여전히 한국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상가, 실천가로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다.

15년 전, 김수환 추기경의 담백한 내면의 기록

그런 그의 강연을 담은 <거룩한 경청>은 지난 1999년 5월 7일부터 14일까지, 의정부에서 열린 한국 천주교 사제들의 연례 피정에 참석해 일주일 동안 행한 12번의 강연을 글로 옮긴 것이다. 15년 만에 최초로 공개되는 것으로, 김수환 추기경의 신앙관과 사상, 그리고 인간 존재에 관한 근원적 문제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드러낸 감동적인 내면의 기록이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이 일주일 동안 한 곳에 머물며 12회에 이르는 1인 릴레이 강연을 진행한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당시 강연은 한국 천주교사에 남을 만큼 이목을 끌었다. 당시 추기경으로 임명된 지 30주년을 맞은 김 추기경이 후배 사제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바를 남김없이 전해 주고 싶었던 마음이 통했다고 사람들은 전한다.
그래서인지, 한 권에 책으로 엮인 그의 강연 기록들은 토씨 하나 뺄 것 없이 온통 맑은 영성으로 가득 차 있다. 말 하나하나가 가슴을 울린다. 특히 신의 섭리에 맡기면서도 땅 위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만들어 낸 결과인 만큼 책 속 이야기는 가톨릭 신자들에서 더 나아가 올곧은 삶을 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지침이 틀림없다. 그 중에서도 ‘나’라는 존재에 담긴 의미와 고통의 이유에 대해 밝힌 부분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많은 이들에게 위로의 눈빛을 보낸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사랑’

책은 크게 사랑, 그리고 고통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나뉜다. 먼저 김 추기경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우리는 부모의 몸을 빌려 태어났지만, ‘나’라는 존재는 이 땅에 태어나기 이전부터 하느님에 의해 선택되었다. 부모는 단지 자식을 갖겠다는 생각으로 생명을 잉태하지만, ‘나’라는 존재를 구체적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이 땅에 태어나기 전부터 하느님이 ‘나’를 알고 있었기에 ‘나’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조각가가 작품을 만들기 전에 머릿속에 구상을 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창조 계획 속에 이미 우리가 존재했기에 지금의 ‘나’가 존재하는 것이다. (중략) 하느님이 ‘나’를 알고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지구상의 50억이 넘는 인간들 중에 어느 한 사람 고유하지 않은 존재가 없으며, 하느님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고 고유하게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이처럼 ‘나’라는 존재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되었고, 엄청난 계획과 준비 속에 이 세상에 왔다. 그러니 어떻게 존귀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랑이 곧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말이다. 사회 지도층을 비롯해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현 사회에서 ‘인간다움’을 잃은 이들이 특히 새겨들어야 할 가르침이다. ‘갑’의 횡포가 성행하는 시대, ‘웰빙’보다 ‘생존’이 더 이슈가 되어버린 이 시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김 추기경의 마음도 엿볼 수 있다.

고통과 죽음,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

그의 열띤 강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랑에 이어 ‘왜 우리에게는 고통이 찾아오며 고통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의 가르침은 계속 이어진다. 이를 위해 김 추기경은 아웅산 테러에서 남편을 잃은 미망인과 교도소의 사형수들,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 병중의 환자 등의 사례를 인용한다. 그 중 하나의 사례를 꼽아 그의 강의를 덧붙여 봤다.
“언젠가 신문에도 보도된 것 같은데, 한 부인이 남편을 잃고 세 자녀와 함께 서울로 왔습니다. 하지만 생활의 근거랄 것도 없으니 막노동을 하였지요. 공장의 허드렛일도 하고 파출부도 하고, 그렇게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도 그 부인은 오직 세 자녀를 키우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그 어머니의 목표는 세 자녀를 적어도 고등학교까지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부인이 일찍 일터로 나간 다음에 세 자녀만 남아 있던 집이 누전으로 불이 나 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세 자녀 모두를 잃은 그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하느님은 무심하시다’라고 말하더라도 우리는 대꾸할 말이 없습니다. (중략) 그러나 결코 현세가 전부가 아니며, 또 죽음이 인생의 끝은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에 따라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믿습니다’라고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계시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오히려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이럴 때 우리 모두가 맞이해야 하는 죽음은 참으로 신비스럽습니다. 살아 있는 우리 중에서 어느 누구도 완전한 의미에서 죽음을 체험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 때문에 죽음이란 것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느님께서 계시를 통해서 약속하신 새로운 생명,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부활의 새 생명은 이 죽음 뒤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에게 부활의 새 생명,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는 문이 되는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 겪는 고통의 의미가 무엇인지 김 추기경의 신앙관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렇다. 보통 고통과 슬픔을 겪은 이들은 너나 할것 없이 모두 ‘왜?’라는 질문을 한다. ‘하느님, 왜 나에게?’라고 절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스럽다고 해서 하느님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깊은 신앙 세계로 발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김수환 추기경은 이를 사람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체험이라고 설명한다. 고통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첫째도 사랑, 둘째도 사랑, 셋째는 인간

“주여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당신과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목숨 다하는 그 날까지 당신과 함께 영원을 향하여 걷고 싶습니다. 형제들을 위한 봉사 속에 형제들을 위한 가난 속에 그들과 함께 모든 것을 나누면서 사랑으로 몸과 마음 다 바치고 싶습니다.” -김수환, ‘나의 기도’ 중에서

김 추기경의 강연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사랑’이다. 강연의 처음도 끝도 모두 사랑과 관련된 주제다. 이를 김 추기경은 사랑이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라고 반복한다. 강연 중 그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입에 올린 말이 ‘사랑’이다. 그러나 고백건대, 어머니가 보여 준 사랑처럼 ‘모든 것을 덮어주고, 믿고 바라고 견디어 내는’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가 회고록에서 자신의 무릎에 기대어 영면한 어머니를 회고하며, 사랑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 부분이다. 이렇게 세상 모든 이를 향한 ‘사랑의 신학’이 추기경 일생을 관통하는 주제였던 셈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랑에 대해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실천하는 사랑’, ‘공동선에의 참여’, ‘좌도 우도 아닌 사랑’이라 말하며 사랑에 대한 모든 이야기의 정점을 찍는다. 
김수환 추기경의 일생을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가 ‘사랑’이었다면, 그 사랑의 대상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을 빼고 김 추기경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다.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렇게 요약된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은 결국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그것은 인간을 위하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다운 삶이 유린되는 사회와 개인을 구원하여 사랑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입니다.”

평생 사랑을 실천한 그가 남긴 마지막 고백

2006년 겨울, 한 기자가 김수환 추기경과 동행했을 당시다. 그때 추기경이 기자에게 물었다. “매주 미사 꼬박꼬박 나오고 봉사활동 열심히 하고 이웃을 도우면 은총 받을까요?” 이에 기자는 “당연히 은총 받겠죠”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어진 추기경의 말은 평생 사랑을 실천한 그가 남긴 마지막 고백이자 유언이 되었다.

“그게 아닙니다. 이미 은총 받아서 주일 미사에 나올 수 있고, 은총 받아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겁니다.”

이는 신앙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가슴을 울리는 명언으로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가슴 속 말들은 신앙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각박한 삶으로 인해 옆을 보지 못하고, 그래서 주위 사람들을 점점 잃어가는, 심지어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이 시대 힐링이 필요한 이들에게 김 추기경이 말한다.

“주여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당신과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목숨 다하는 그 날까지 당신과 함께 영원을 향하여 걷고 싶습니다. 형제들을 위한 봉사 속에 형제들을 위한 가난 속에 그들과 함께 모든 것을 나누면서 사랑으로 몸과 마음 다 바치고 싶습니다. -김수환, ‘나의 기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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