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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오늘이니까
괜찮아, 오늘이니까
  • 송혜란
  • 승인 2015.06.21 0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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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연애편지3

대모산이 검게 엎디면 비가 온다는 당신의 말처럼
오랜 가뭄 끝에 아무 생각 없이 비가 내리네
냄새도 빛깔도 없는 이 밤비가 독주인 걸 나는 알지
힘겹게 물 올려 피운 벚꽃들은 꽃비로 내릴 테고
날 밝으면 햇볕은 저 나무의 말들을 번역하기 바쁘겠지
땅이 젖은  어느 봄날 저녁이던가
고작 꽃 몇 송이 피우기에도 모자란 핏기로 떠난 당신.
이별이란 말이지 조금씩 스미게 하며 길들여야 해
한지에 물을 쏟은 것처럼 말야
어디만큼 가다 보니 아, 여긴 아니네 하며 돌아설 때
그땐 어쩌지 못하는 걸 알 수 있거든
천둥처럼 우박처럼 이별을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왜 곁에 있을 땐 그 흔한 사랑이란 말을 못했을까
굳이 드러내는 것에 익숙지 않은 우리여서 새삼스러운 단어였지
거울의 뒷면을 다 알아버린 사이에는 사족이었을까?
부스스한 머리를 가지런히 묶어주던 당신을 보내고
까만 상복의 허리끈을 리본으로 묶으면서 하늘을 보았어
참 살아 있기에는 서럽게 서럽게 푸르더라
곡지통은 없었지. 그냥 아팠으니까
소금쟁이가 물이 물컹하면 어찌 걷겠어
홀로서기가 이제 단단해졌다고... 나도.

밤새 죽을 듯이 앓다가
오늘이 되면
이제 견딜 수 있어 오늘이니까
벽보처럼 너절한 인연 접을 수 있고
물오름 하나로만 꽃 피울 수 있어
빈터에 아픈 꽃이라도 피울 수 있거든
오늘이니까.

 

글 황영자 시인

시집-사랑 참 몹쓸 짓이야
디카시집-여시(여백의 시)
세계적 시인 (스페인왕립한림원)
약사-(현)약국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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