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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인생 40년, 디자이너 이영희
한복 인생 40년, 디자이너 이영희
  • 송혜란
  • 승인 2015.06.22 0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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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빅 프로젝트 준비 중
 

1994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전 세계의 패션인들이 모인 뜨거운 현장에 한국 디자이너의 작품이 런웨이에 올랐다. 한복 패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양장이 아닌 한복이. 심지어 저고리를 벗어 던지고 맨발에 긴 치마만 입은 채. 반응은 단연 최고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세계의 내로라하는 유명 디자이너들의 기립박수와 찬사가 이어졌다. 이후 이 옷은 ‘바람의 옷’이라는 명칭까지 얻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취재 송혜란 기자 | 사진 이용관

이 옷을 만든 건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바람의 옷’ 속 숨은 진주로 불린다. 그런 그녀가 올해 한복 인생 40주년을 맞아 새로운 프로젝트 기획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데. 팔순이라는 나이에 또 새로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이는구나 싶다. 노년에도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고 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신사동에 위치한 ‘메종 드 이영희’를 찾았다.
 
나이 마흔에 시작한 한복, 평생의 가치가 되다
 
실제로 본 이영희 디자이너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모습 그대로였다. 기품 있는 중년 부인의 모습.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원래는 더 젊었는데 요즘 너무 바빠 관리를 못해 이것도 많이 늙은 거예요.”하며 유머스럽게 받아넘긴다.
배우 전지현의 시어머니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은 시할머니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더욱 의외인 게 있었다면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과 사내대장부 같은 호탕한 성격. 말 한마디 한마디에 한복을 향한 사랑과 아직도 설레는 감정 등이 무르녹아 나왔다. 그런 그녀가 한복을 만들기 시작한 지 벌써 40년이 훌쩍 지났다. 참 오랜 시간 열심히 달려왔다. 지금의 이영희 디자이너가 있기 훨씬 전, 그녀의 나이는 마흔 살이었다. 전업주부로 지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한복 일을 시작했다.
“서른 후반에 처음 언니랑 명주솜을 팔았던 게 계기가 됐어요. 그때 제가 한 달에 명주솜 천 개를 다 팔 정도로 장사를 굉장히 잘했어요. 열 개 사러온 손님한테 두 개 더 얹어서 열두 개 주고 그랬거든요.”
생각보다 장사솜씨가 뛰어나자 그녀의 언니는 아예 가게 일을 이 디자이너에게 모두 맡겼다. 소문을 듣고 여럿이 돈을 모아 열 개치를 지불하고 덤으로 얻은 명주솜 두 개는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돈 받고 파는 도매업자식의 손님도 늘어났다. 한 달도 안 돼 명주솜 천 개는 금세 바닥을 드러내곤 했다.
“그런데 그 일을 1년 넘게 하니까 금방 질리더라고요. 재미도 없고 해서 오래 할 일은 아니다 싶었죠.”
명주솜 장사에 실증이 난 그녀는 재미삼아 명주솜에 덮는 실크를 가지고 염색을 해 한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디자이너의 기질을 보인 것일까? 그녀가 직접 만들어 입은 한복을 보고 주위에서 예쁘다고 난리가 났다.
“심심해서 만들어 입은 한복을 보고 사람들이 너무 예쁘다며 자기도 똑같이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어머니한테 어깨너머로 배운 거라 누구한테 만들어 팔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는데, 제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아예 기술자를 붙여줬어요.”
그때부터 한복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잠깐씩 들어오는 주문 건만 받아 조금씩 팔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그것이 여기저기서 소문이 나 서교동에서 한복집을 하는 후배가 이 디자이너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기에 이르렀다.
“당시엔 서교동이 지금의 압구정동과 같은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한복집을 하는 후배가 있었는데, 제가 만든 한복이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더니 같이 일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때부터였죠. 한복장이의 길에 들어선 게.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왜 그때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가요. 마치 귀신에 홀렸던 거 같은데. 운명이었겠죠.”
그렇게 그녀가 자신의 운명에 이끌려 한복장이가 된 것은 이 디자이너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한복에 대한 사랑이 한몫했을 터. 꽃다발보다 알록달록한 원색의 한복 원단을 들고 있을 때가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이기 때문이다. “꽃도 좋아하긴 하는데, 한복 원단을 볼 때랑은 비교가 안 되죠. 저는 한복 원단을 만지며 이 옷감으로 또 무엇을 만들지 구상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시스루룩을 해볼까?’, ‘색감이 마음에 안 드는데 다른 색을 위에 겹쳐 볼까?’ 늘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도록 해주거든요.”
그 중에서도 이 디자이너가 가장 좋아하는 원단의 색은 단연 회색이다. “회색은 패션쇼를 준비하거나 손님들의 옷을 지어줄 때 가장 좋아하게 됐어요. 한복에는 특히 색동저고리가 많은데 이와 어울리는 치마를 찾기가 무척 어려웠어요. 그러다 회색을 한번 매치해 봤는데 너무 기품 있고 예쁜 거예요. 다른 옷에도 마찬가지였어요. 회색은 어떤 옷과도 조화를 이루는 유일한 색이에요.”

“한복의 현대화, 세계화는 내 오래된 꿈”

이영희는 한복 디자이너이지만 전통 한복에만 얽매이지 않았다. 한복의 현대화와 세계화를 위해 늘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또 시도했다. 이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전통 옷은 그녀에게 그저 참고서일 뿐이다. 특히 1994년 파리 프레타포르테에서 저고리 없는 한복 치마에 맨발로 패션쇼를 진행해 ‘바람의 옷’이라는 명칭으로 유명세를 탄 그녀. 그 당시 굉장히 파격적인 모습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압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도 제가 무슨 정신으로 파리에 갔는지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올라 유명해져서 돈을 많이 벌어야지’ 같은 마음은 아니었어요. 그냥 한복이 너무 좋고 아름다워서 저만 보는 게 아까웠어요.” 그래서 세계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리고 싶었다고. “특히 저는 한복의 현대화에 관심이 많아 새로운 시도를 해봤어요. 한복 저고리와 버선을 확 벗기고 치마만 입힌 채 맨발로 쇼에 내보냈죠.” 용기가 없으면 절대 못할 일이었다. 반응 역시 폭발적이었다. 한 외국 기자가 ‘바람의 옷’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줘 그녀의 첫 쇼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타이밍도 기가 막혔다. “그때가 살짝 오리엔탈풍이 넘어오려고 했던 시기라 타이밍도 딱 맞았던 거 같아요. 파리였으니까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고요. 한국이었다면 바람의 옷 같은 건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런 그녀의 아이디어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늘 최초로 남이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 이영희 디자이너가 만들면 곧 그 옷이 하나의 모티브가 되어 많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응용되곤 한다.
“저는 늘 전통한복 자체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요. 한복은 다른 나라의 전통 옷과 달리 모던화 시킬 요소가 굉장히 많아요. 여성이 입는 두루마기부터 저고리, 치마, 남성이 입는 도포까지. 치마도 긴 거, 짧은 거 있고요. 왕이 입었던 옷, 왕비가 입었던 옷도 있고. 한복의 종류가 무척 많다 보니 제가 모던화 시킬 범위의 폭도 넓은 거죠. 한복 소재 또한 셀 수 없이 많고요. 앞으로도 저 말고 많은 분들이 한복의 현대화와 세계화에 관심을 두고 연구했으면 좋겠어요. 함께 나아가야 더 멀리 갈 수 있어요.”
그러나 아직은 그녀만큼 한복의 현대화와 세계화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은 없다. 있다 해도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디자이너는 그녀뿐이다. 1994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이후에도 2004년 9월에는 뉴욕에 이영희박물관까지 설립한 이영희다. 물론 당시 미국에 외환위기가 터져 운영은 순탄치 않았지만. 한복을 널리 알리려는 그녀의 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뉴욕에서는 약 10년간 박물관을 운영했어요. 초기엔 꽤 잘 됐는데, 하필이면 도중에 미국에 외환위기가 터져서 휘청했어요. 한복이 잘 안 팔리더라고요. 그때 바로 그만 뒀어야 하는데 어떻게든 끝까지 해보겠다고 10년까지 끌어서 손해를 많이 봤어요.”
결국 그녀는 뉴욕의 박물관 운영을 접어야만 했다. 지난해 고심 끝에 박물관을 뉴욕시에 기증하고 손을 떼려고 했더니 그것마저도 결렬돼 지금은 아예 철수한 상태. 그걸 내년 초쯤 경주에 있는 불국사 인근으로 옮길 예정이다. 건물은 다 지어졌고 설계까지 마친 상태라고. 그녀는 “박물관이라기보단 미술관처럼 돼 있어 그곳에서 직접 강의도 하고 체험행사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복으로 만난 역대 영부인들의 멋을 말하다

‘바람의 옷’으로 세계에 명성을 날린 이영희 디자이너. 한국에서 그녀는 유독 영부인들의 한복을 도맡아 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부터 김옥숙 여사, 손명순 여사까지, 그녀가 보아온 영부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 때 김윤옥 여사가 제 옷을 입었고, 이순자 여사 옷도 제가 해줬죠. 모두 다 기품 있고 품위 있는 분들이에요.” 특히 그녀는 김옥숙 여사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다. 이 디자이너가 그간 만난 영부인 중 베스트 드레서로 김옥숙 여사를 꼽을 정도였다. “김옥숙 여사는 저와 아주 잘 맞았어요. 제 옷을 가장 잘 이해해 준 분이었죠. 굉장히 지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감각까지 두루 갖춘 훌륭한 분이세요.”
김옥숙 여사 다음으로 가장 옷을 많이 해줬던 사람은 손명순 여사였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무렵 손명순 여사가 입었던 옷은 이영희 디자이너의 작품은 아니었다고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쯤엔 그분이 한복을 잘 안 입었어요. 김 전 대통령이 한복 입는 것을 굉장히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여겼거든요.”
박근혜 대통령의 한복은 또 어땠을까? 취임식 때 한 번 한복을 입은 후 쭉 ‘한복 외교’를 펼칠 정도로 박 대통령의 한복사랑은 각별하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 옷도 해주고 싶었는데, 저와는 옷 인연이 없는가 봐요. 모두 인연이 있어야 하는 건데. 박 대통령이 취임식 때 입었던 한복은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이영희 디자이너는 한국 영부인들의 옷만 만든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인 만큼 해외 유명인들도 이 디자이너의 옷을 즐겨 입었다. 그 중에서도 힐러리와는 꽤 친숙한 사이다. 6년 전 힐러리 여사가 이화여대 특강 때문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방을 따로 마련해 이영희 디자이너와 1대 1 대담을 가졌을 정도다. “힐러리 여사와 저도 아주 잘 통했어요. 처음엔 제가 힐러리 여사 옷을 해주고 싶어서 직접 한복도 만들어 선물하고 했어요. 서로 말이 잘 통했다면 더 친해질 수 있었을 텐데. 대부분 힐러리 여사가 차갑고 이성적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제 모습은 전혀 달라요. 굉장히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분이에요. 그리고 세계인들이 다 알다시피 매우 멋진 여성이고요. 몇 년 전 힐러리 여사가 이화여대에 특강 왔을 때도 따로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랬어요. 뉴욕 박물관에도 두 번 정도 찾아왔었고요.”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프라다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이영희 한복에 대한 관심도 높다. 가끔 갤러리에 찾아와 두세 벌 사가기도 한다고. 그들이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들려야 할 곳 1위로 이영희 부티크를 꼽는다는 말도 있다. 특히 파리에 있는 디자이너들이 한복에 관심이 많단다.
“동양풍의 옷에 관심이 많은데 그쪽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접하기 쉽지 않아서 그러는 거 같아요. 지금은 케이팝, 케이드라마 영향으로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세계인들이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특히 한복의 색감이 아름답다는 말을 자주 해요. 뭘 만들어 보여줘도 예쁘다고 찬사를 보내요.”

올해 40주년 맞아 빅 프로젝트 준비 중

그녀의 한복 인생 40주년. 이제는 그만 쉴 때도 됐는데 또 새로운 일을 준비 중에 있다는 이영희 디자이너. 팔순의 나이에도 이를 알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설렘으로 가득하다.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이 너무 많아 멈출 수가 없다고. 한복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끝이 없다. 오는 9월에 열릴 행사가 기대되는 이유다. 특히 이번 해는 광복 70주년과도 딱 맞아 떨어져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를 먼저 제안한 건 그녀의 딸 이정우 패션 디자이너. 약학과를 나와 어머니 이영희와 함께 패션의 길을 걷고 있다. “올해를 그냥 지나가면 안 된다면서 딸이 제게 계속 용기를 줬어요. 실제로 그간 제가 했던 일들을 보니 굉장히 많은 일들을 했더라고요. 사실 ‘바람의 옷’이 너무 유명해서 사람들은 그것만 알고 있는데,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일들도 많아요.”
프로필에 다 적으면 A4 한두 장은 그냥 넘어간다고 하니 오죽할까. 대표로 10개만 꼽기도 굉장히 힘들 정도라고 한다. 이에 이번 행사 때 그간 이영희 디자이너가 해온 작품들을 총결산해 전시할 예정이다. 물론 그동안 했던 작품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아직 한창 기획 단계에 있긴 하지만 기존과는 차별화되는 색다른 시도도 보여줄 예정이다.
“지금은 한창 기획 단계라 매우 바빠요. 할 일이 태산이라 잠잘 시간도 모자라요. 이번 행사에 특이한 게 있다면 옷 외에도 그릇, 핸드폰 케이스, 핸드백, 신발 등의 디자인까지 하고 있다는 거예요.”
전시에만 국한되지 않고 바람의 옷으로 퍼포먼스도 기획해 한 달 내내 보여줄 예정이라고도 알렸다. 강의실을 따로 구성해 한복 원단 염색법부터 한복 만드는 법 등의 체험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엄마가 아이와 함께 들를 수 있는 가족단위의 프로그램이 주를 이룰 예정이다. 그녀의 끊임없는 도전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꼭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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