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23:05 (목)
 실시간뉴스
처음부터 끝까지 <무뢰한>
처음부터 끝까지 <무뢰한>
  • 송혜란
  • 승인 2015.06.26 13: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례한 자들이 뒤흔들어 놓은 선과 악의 경계
 

사랑은 언제나 선(善)한가? 선을 위해 달려가는 그 과정은 악(惡)해도 되는가? 본인이 쟁취해야 할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형사들이 선과 악의 두 경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영화 <무뢰한>에서의 이야기다. 극 중 선을 위해 거짓된 얼굴과 말도 서슴지 않는 한 형사가 급기야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깊은 사랑의 늪에 빠지게 되면서, 단순하게만 보였던 대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숱한 물음으로 관객들의 뇌리를 감싼다.

글 송혜란 기자 사진 CGV아트하우스

(*스포일러 주의) <무뢰한>에는 김남길이 열연한 형사 ‘정재곤’과 그가 쫓는 살인자 ‘박준길(박성웅)’, 준길의 애인 ‘김혜경(전도연)’이 등장한다. 재곤은 준길을 잡기 위해 유일한 실마리를 지닌 혜경이 일하는 단란주점에 신분을 위장하고 영업부장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시작된 둘의 묘한 관계는 관객들이 이 영화에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의 시초가 된다.

재곤은 혜경 곁에 머물며 퇴폐적이고 강하게만 보였던 그녀의 순수하고 외로운 의외의 모습에 끌린다. 언제 연락 올지 모르는 준길을 기다리던 혜경 또한 늘 자기 곁에 있어주는 재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데. 이윽고 둘은 애초의 감정을 뒤로한 채 함께 하룻밤을 지새우며 사랑을 나누기에 이른다. 처음부터 거짓말로 접근했던 재곤과 준길의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몸마저 희생하는 혜경이 품은 목적은 각기 달랐지만, 그 내면 깊이 자리한 마음은 사랑이었음을 의심치 않는다.

외려 그 표면상의 이유는 둘이 혜경의 집에서 사랑을 불태우기 위한 핑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해석까지 방불케 할 정도다. 오로지 범인을 잡고야 말겠다는 신념과 혜경 사이에서 갈등하는 재곤의 모습이 그 증거라면 증거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결국 혜경을 버리고 준길 검거 작전에 투입한 재곤이 그녀를 향해 던지는 한마디. “나는 너를 배신한 게 아니라, 내 일을 했을 뿐이야.” 이는 범인 검거라는 선한 목표를 위해 악한 행동을 마다치 않았던 준길이 가슴 속에서 밀려오는 죄책감을 애써 잠재우기 위해 속삭이는 주문과도 같았다. 잠시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합리화하고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로 해석되며 관객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말이다. 둘의 아슬아슬한 관계의 결말은 사랑이 언제나 선하지 않으며 정의를 위한 악이었다고 한들 그 자체 또한 선이 될 수 없다는 답을 대변한다.

형사, 그들이 저지르는 무례함

영화는 둘의 사랑에만 초점을 두지 않는다. 재곤과 함께 살인자를 쫓는 악질 형사 문기범(곽도원)은 공직에 있으면서도 갖은 비리는 물론, 공권력 남용에 일절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준길을 잡기 위해 혜경에게마저 악랄한 계략을 펼치는데. 형사와 조폭이 다른 게 무엇일까 하는 의문마저 들게 한다. 서로 다른 곳을 향해 가지만 이따금 경유지를 공유하며 힘을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가슴에 단 이름표만 다를 뿐 그 본질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기범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무뢰한’을 누구에게 어떤 것도 의지하거나 의탁하지 않고 선과 악의 개념 없이 사는 사람들로 정의한 오승욱 감독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은 ‘무뢰한’이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인류가 가진 가장 드라마틱한 소재인 ‘사랑’을 날 것 또는 민얼굴의 생생함으로 그려내면서도 선과 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 <무뢰한>. 자신조차도 모를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그 의미에 대해 사색해보고 싶다면 지금 이 영화가 그 촉발제가 되어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