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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풍문처럼 귀여운 여인, 유호정
봄날의 풍문처럼 귀여운 여인, 유호정
  • 이윤지
  • 승인 2015.06.30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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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시간

 

<풍문으로 들었소>의 초일류 상류층 속물을 연기하는 배우 유호정. 신선한 블랙코미디 속 ‘연희’로 돌아온 그는 어느 때보다 생기 있어 보인다. 돈과 권력을 쥔, 까칠한 재벌가 사모님 중 이보다 귀엽고 재밌는 여인이 있었던가.

▲ 사진=SBS

유호정은 참 복이 많은 배우다. 풋풋하던 시절부터 유부녀를 연기하는 지금까지의 유호정은 늘 조금씩 달랐다. 수수하면서도 우아한 얼굴을 먼저 떠올려 보면, 굴곡 없는 삶을 사는 예쁜 여자 역할만 쭉 지나왔을 것도 같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연희를 선택한 것이 독특하긴 하지만, 크게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천연덕스러운 귀부인이 되다
유호정의 활약이 대단하다. 요즘 상류층 갑질 노릇을 제대로 보여주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중. <풍문으로 들었소>의 ‘최연희’는 재벌 남편과 묶어 참 후진 인간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재색을 모두 갖춘 귀부인이지만 너무나 속물스럽고 때로 비인간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캐릭터는 볼수록 매력이 느껴진다. 
대단한 상류층이다 보니 대외적으로 내보이는 모든 것에 순서와 정도를 적용시켜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는 연희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입을 삐죽거리다 소리를 버럭 지르기도 하고 펑펑 울기도 한다. 상대를 깔보는 냉랭한 눈, ‘여왕마마’의 전형이 엿보이는 자태로 등장했지만 드라마의 색깔이 점점 또렷해지면서 그 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연희임을 눈치 챌 수 있다. 
유호정은 실제로 재벌가 사모님의 걸음걸이와 식사법, 사소한 몸짓과 표정이 나올 수 있도록 세세한 몸짓을 연구하고 연습했다. 덕분에 드라마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대한민국 상류층의 제왕적 권력과 속물의식 같은 것들이 확실히 드러났다. 
유호정은 ‘풍문 식 블랙 코미디’를 완벽히 소화해냈다. 어설프고 순진한 데가 있어서 아주 악하다고 볼 수 없는 ‘연희’를 대놓고 우습게 만들어서도 안 되고, 무거운 느낌으로 머물러서도 안 되는 난이도 높은 줄타기를 해야 하는 역할이다. 애써 침착해지기 위해 뱉는 숨이나 몰래 발 구르며 우는 모습은 통쾌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밝고 상냥한 엄마,  또는 아줌마인 적은 많았었지만 이토록 묘한 매력의 아내, 엄마는 처음이다.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다양한 모습이다. 배우 스스로에게도 매우 특별한 순간을 맞았다고 느낄 것이다. 유호정은 이번 작품에 대해 “화려한 상류층을 연기하는 게 오랜만이라 신경을 많이 썼다. 특히 이번 작품을 위해 제 평생 가장 열심히 운동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외적인 스타일링부터 하나하나 신경을 쓰며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상류층의 패셔너블한 스타일링은 물론 크게 화제가 되고 있지만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연희가 가진 특유의 ‘허당’ 매력이다. 미워할 수가 없는 얄미운 유호정의 ‘연희’는 극 후반으로 가면서 점점 본색을 드러내는 악랄한 재벌가 사람들로 또다시 서서히 변신 중이다. 구김살 없는 얼굴로 순하게 웃는 모습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예민하게 상대를 훑는 표정을 모두 가진 유호정에게 이 굴곡진 역할은 적격이다.

유호정, 새 봄 맞아
‘늘 조금씩 다른’ 여자들을 연기해왔다는 기억을 좀 더 파고들어 보면 열정적으로 사랑하거나, 아낌없이 사랑받는 여자가 되거나 하는 때가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 주연했던 <송화>의 ‘송화’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나고 자랐지만 역경을 딛고 배우가 된다. 송화를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있는 이들이 있어 삶은 조금 행복하기도 하고 때로 자주 불행했다. 
10년도 훨씬 넘은 때 유호정이 보여줬던 ‘송화’는 실제로 아주 어렸지만 풋풋하면서도 성숙한 아름다운 여인이었는데, 지금의 연희와 그를 함께 생각하자니 여배우의 시간은 좀 남다르다는 것이 체감되는 것도 같다. 
역시 오래 전 드라마 <거짓말>에서의 ‘은수’는 오래도록 한 남자를 사랑하는 순애보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늘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으로 마음을 표현하지만 외로운 순간을 홀로 견뎌야 했던 여자 은수를 연기하던 유호정은 애처로우면서도 사랑스러웠다. 
영화를 선택하는 눈도 남달랐다. 신중하면서도 시도에 거리낌이 없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매향 역으로 분했던 <취화선>은 칸에서 감독상을 수상했고 큰 인기를 끌었던 <써니>에서의 인상도 길게 남았다. 
2000년대 활동을 보자면 안방극장에서 ‘시한부 인생’을 연기했던 이력이 잦아 ‘기로에 놓인 아내, 엄마’의 인상이 강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지금 달라진 유호정의 키워드는 더욱 빛이 난다. 원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호되게 당하는 ‘갑’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내며 사랑받는 지금 한껏 무르익은 기량을 보면, 앞으로 그가 만날 역할들은 보다 독특한 인물들이 아닐까 싶다.  
"주위에 `비현실적이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평생 혼자 살아라'보다는 남편이 아직 젊은데 저만 생각해서 혼자 살아라고 하는 것도 이기적이고요. 내 남자가 홀아비 냄새 풀풀 풍기면서 사람들한테 무시당하는 것이 썩 유쾌할 것 같지는 않거든요."
그에게 이번 드라마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인상 깊었던 장면을 소개했다. "암에 걸렸다는 판정을 받고 버스를 타요. 앉아 있던 전혀 모르는 젊은 남자한테 가서 다짜고짜 `나 암 선고 받았어요. `일어나요 나 좀 앉게'라고 하면서 자리를 뺏어요. 차라리 발버둥치면서 우는 것보다 더 처절하고 처연한 게 `아 죽음을 앞에 둔 심정이 오죽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는 먼저 시작한 SBS 드라마 `완전한 사랑'을 두 번 정도 시청했단다.
"2부 정도까지 봤는데 앞으로는 안 볼 작정이에요. (김)희애 언니 연기하는 것을 보니까 억지로 다르게 하려고 할 것 같아서요. 공교롭게도 아내가 시한부 삶을 사는 비슷한 상황이 두 드라마에 나오다 보니 여러 모로 비교가 될 거잖아요. 이제는 일부러 안 보려고요. 보게 되면 다르게 다르게 연기하려는 강박증에 시달릴 것 같고 저만의 연기를 하는데 방해가 될까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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