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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진실 <화정>
역사와 진실 <화정>
  • 이윤지
  • 승인 2015.06.3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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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를 다시 만나다

 

17세기, 그리고 광해에 관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반복돼 왔다. 불운했던 임금 광해와 죽은 자로 위장한 채 살았던 여인 정명공주의 세상 <화정>. 혼돈의 시대를 살아 낸 광해와 이복동생 정명공주의 치열한 역사가 시작된다.

▲ 사진=MBC


반정으로 권좌에 오르지만 패도의 길을 걸었던 인조, 조선의 부귀와 평화를 꿈꾸었지만 끝내 불운했던 임금 광해. 이 시기에 관한 주장과 반증, 추정과 상상은 부단히도 이어져 왔다. 그들 각자의 욕망과 갈등은 너무도 강렬했고, 이제는 그 들끓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그 아슬아슬한 전쟁을 볼 수 없게 됐으니 17세기는 가장 흥미로운 과거일 수밖에. 투쟁과 비밀로 점철된 그때의 광해, 그리고 정명공주에 대한 새 해석 <화정>을 본다.

오랜 물음, ‘왕’이란 무엇인가
선조가 죽고, 광해는 아수라장이 된 정국에서 그 나름의 정치를 펼쳤다. 그러나 자주적이고 진취적이었던 외교 태도는 당시의 중신들에게 미움을 샀고, 결국 조카인 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만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새로이 심어지면서 <화정>은 ‘광해’를 찬찬히 파고든다. 
선조가 운을 띄운다. 대신들을 모아 놓고 계곡에 잔을 띄우며, 그는 시제로 ‘폐가입진’을 내놓았다. 이것은 고려 말의 사건을 일컫는 말로, 이성계 등이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추대한 것을 빗댄 것이다. 선조는 자신이 세자로 봉한 광해군을 폐위하고, 적자 영창을 다시 책봉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친 것이다. 대신들은 난처해지고, 왕의 움직인 마음이 불씨가 돼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왜란을 겪은 선조가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 때부터 인조가 반정으로 집권하기까지의 이 긴 이야기는 선조의 유일한 적통 공주였던 정명공주의 삶과 함께 펼쳐진다. 과연 진정한 왕은 누구인지, 어떤 인물을 왕재로 내세울 것인지를 깊게 파고드는 선조를 통해 드라마는 주제 의식을 전달한다. 
광해군을 지지해 온 대북파의 수장 정인홍은 이때에 선조에게 찾아가 임진왜란 때 군과 백성을 끝까지 붙들고 지켜 냈던 광해를 떠올리라 말하며 “성군 중 성군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선조는 “서자인 그가 그렇게 나선 것이 바로 역심”이라며 반박한다. 선조 역시 왕의 마음가짐이 백성을 지키는 것임을 말했지만, 정인홍은 핏줄보다 우선하는 것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성군의 자질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충돌하는 정치적 논리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화려한 정치’, ‘정명공주’ 등으로도 알려졌던 드라마의 최종 제목, <화정(華政)>. 이는 한자어로 ‘빛’ 혹은 ‘꽃’으로 해석되는 화(華)에 ‘다스릴 정(政)’자를 사용한 단어로, 해석하자면 ‘빛나는 다스림’ 정도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격변의 시절을 살다 간 군주들과 충신과 간신들의 대립은 실로 화려하다 할 법하다. 화면 속에서 강렬한 금적색으로 시선을 빼앗는, 궁궐의 전경을 반쯤 덮은 이 핏빛 글씨는 궁 전체를 혼돈에 빠뜨릴 치열한 권력 투쟁을 연상케 한다. 광해와 정명공주, 인조의 3각 대립 구도를 중심으로 조선의 왕좌를 되짚으며 <화정>은 ‘왕’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묻고 있다.


“17세기 조선의 반정과 암투 속 권력자들의 치열한 삶을 다루다”
 

정명공주의 ‘화정’
“순혈의 그만이 진정한 세상의 주인이 되리라”
정명공주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사내를 연상시키는 짧은 머리와 옷차림으로, 정명공주는 범상치 않게 등장한다. 공주 신분이었던 그는 의미심장한 문장과 함께 신분 변화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정명공주는 선조와 후궁인 인목왕후 김 씨 사이에서 난 첫째 딸이다. 유일한 공주이기도 하다. 효종과 현종 시대를 거쳐 숙종 시대까지 조선시대 중 상당한 시간을 경험하며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정명은 조선시대의 공주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이다. 그런 그녀의 삶은 순탄하지가 않았다. 선조가 죽고 난 후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실은 큰 변화를 겪게 되고, 후궁의 딸임에도 옹주가 아니라 서인으로 강등되기에 이른다. 인조반정이 있기 전까지 서궁에서 유폐 생활을 하던 정명공주는 목숨을 건지기 위해 ‘죽었다’고 소문을 퍼뜨리도록 하고 죽은 듯이 살아야 했던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때가 바로 정명공주가 재능을 나타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 뛰어난 서예가였던 아버지 선조와 인목왕후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아 뛰어난 필체를 가졌던 것으로 유명하다.   
‘화정’은 정명공주가 서궁 유폐 시절에 남긴 글씨다. 왕실의 어른으로 살아온 정명공주의 영향력과 남달랐을 시간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한 <화정>. 한 나라의 공주로 태어나 사내들 사이에서 노예로 사는 역사를 가진 비범한 여인의 발자국은 익숙한 이름 ‘광해’만큼이나 특별하다. 
<화정>의 정명공주는 어릴 적 자신을 아껴 주던 광해에 의해 신분 추락을 겪지만, 악착같이 살아남아 광해 정권의 심장부인 화기도감에 입성하게 된다. 결국 광해군과 대립 관계에 서게 되는 이 비운의 여인은 어릴 적부터 굉장히 총명하고 밝아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였지만, 궁에서 쫓겨난 후 노예가 되어 유황 광산에서 살아가게 된다. 덕분에 살아남기 위해서 공주라는 신분도 잊고 자라나게 되는 것. 
배우 이연희가 베일에 가려진 적통 ‘정명공주’로 분한다. 정명공주를 맡은 배우 이연희는 실존 인물인 정명을 연기하기 위해 다른 캐릭터를 참고하기보다 그 당시 역사적 사실과 배경들을 알기 위해서 자료를 통해 공부하며 캐릭터를 세워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극중 남자들 틈에서 노예가 돼 살아가고 있는 모습부터 등장하기 때문에 남성스럽고 억센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고. 적통의 왕족들이 살기 힘들었던 때, 4대를 이어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 낸 인물의 삶이 어떻게 변화를 맞이하고 끝을 맺게 될지 기대된다.


“<화정>의 정 가운데에 있는 불운했던 임금 광해와 공주로 태어나 노예로 살았던 적통 정명공주는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는 주인공들이다. 그들의 세월 속에는 수많은 이념과 욕망들이 새겨져 있다.”

 

색다른 광해군, 차승원
배우 차승원이 냉철한 군주 ‘광해군’ 역할을 맡았다. 아버지 선조의 질시와 배척 속에서 자신을 무자비하게 단련시키고 왕좌에 오르는 광해를 연기하는 차승원은 어떻게 또 새로워질까.
차승원은 “드라마로는 첫 사극이라 설레고 기대된다. 긴 호흡의 작품을 하게 돼 책임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기대되고 특별한 한 해가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초반부 강렬한 존재감과 함께 이미 인간으로서의 광해와 비정한 군주로서의 광해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줬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얻어 냈다.
차승원이 드라마로 사극을 작업하기는 처음이다. 그는 작품 인터뷰를 통해 “‘캐릭터를 위해서 다르게 해 봐야겠다’거나 ‘기존의 광해와 차별성을 둬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부담이 되기 때문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흘러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화정>의 광해 캐릭터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깊이’다. 많은 이들이 말하는 ‘첫 회에서의 눈빛 연기’에 관해 그는 “흔히 ‘광해’를 말할 때 뭔가 카리스마 있고 절대적인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런데 실은 여러 가지 눈빛이 있는 인물이라 아직 잘 모르겠다”며 ‘단순한 카리스마 형 인간이라기보다는 깊은 내면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답했다. 광해를 만들어 내는 차승원에 앞서, 역사 속 광해군에 대한 고찰과 애정이 담긴 그 말은 과연 이야기 속 광해군을 어느 때보다 궁금하게 만든다. 차승원이 말하는 가장 인상적인 촬영분은 1부 마지막 선조와 마주하는 장면이다. 이 신에 대해 그는 <화정>이 기본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권력에 대한 욕망 같은 것이 잘 표현된 것 같다고 평했다.  
‘광해’는 앞서 말했듯 영화, 드라마를 막론하고 꾸준히 소구됐던 인물이다. <화정> 속 광해는 차별화에 꽤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폭군, 개혁군주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부터 애잔한 모습을 감추지 않는 인간적인 얼굴 등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눈빛과 세밀한 표정 연기, 그리고 디테일한 몸짓과 음성의 변화로 미세하게 변해가는 ‘광해’의 입체성은 ‘차광해’라는 수식을 얻을 만큼 배우를 통해 효과적으로 구현됐다. 전란 중 선조의 총알받이로 세자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백성들을 위해 칼을 들고 대차게 일어서는 왕의 모습, 선조에게 과한 핍박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견디는 의연한 얼굴이며 아끼던 신하를 자기 손으로 죽일 때의 복잡한 심경까지, 차승원의 광해는 대체로 무표정하고 냉정하지만 분명 신선하다. 
 
‘왕좌의 대결’이 시작된다
<화정>은 지금 왕좌를 둘러싼 숨 막히는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왕좌를 위협하는 인물들이 서서히 모이고 있는 것. 특히 유황 광산에서 노예 생활을 하며 짐승처럼 살아남은 조선 유일의 적통 공주 정명이 기다려 왔던 ‘할 일’을 이루리라고 예고했다. 정명공주는 광해에 의해 세상을 떠난 영창대군(전진서)을 대신해 광해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는 데에 신경을 곤두세우던 광해도 역시, 이제는 섬뜩한 얼굴로 ‘왕좌’를 향한 집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인목대비와 서인들이 역모를 꾸민다는 이이첨의 이야기에 살벌하게 변해가는 과정이 그려지는 중. 간신으로 알려진 이이첨과 김개시의 악역 활약으로 이야기는 더욱 재미를 더해 간다.
이이첨은 인목대비가 영창대군을 살리기 위해 정명공주의 혼사를 준비하던 중 인목대비의 아버지와 영창대군에게 역모죄의 누명을 씌운다. 어린 영창을 끝내 어머니와 떨어뜨리고 죽음으로 내몰게 되는 순간이다. 광해는 김개시(김여진)와 이이첨이 냉혹하게 살인까지 하며 만든 함정을 물리치지 않고, 정명공주의 호소에도 “왕실에 어린애는 없다. 죄 없는 이도 없다. 영창은 죗값을 받을 것”이라고 냉정하게 선포했다. 
선조의 멸시에 주눅 들고 위태로웠던 광해, ‘새 시대를 여는 왕이 되겠다’고 다짐하던 야심찬 세자, 어린 이복동생들을 챙기며 아파하던 소년의 마음까지 광해의 다양한 면면을 확인하며 우리는 역사 속에서의 이 왕의 위치를 다시 세워 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미 광해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들의 인식이 달라지는 단계를 거쳐 많은 변화를 거쳐 온 상태이기는 하다. 때로 미화되기도, 없던 사실까지 끌어다 붙여 지나치게 비약되기도 하지만 광해는 분명 여러 차례 조심스럽게 다듬어지며 꾸준히 다시 봐야 할 인물이다.
“온당한 정치를 하기 위해 더 이상의 기만과 사술이 없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까. 한 번의 선택이, 기만과 사술이 전하의 정치를 끝내 폭정으로 이끌 것입니다”
<화정>은 주옥같은 ‘충신과 충언’이 있는 극이다. 세상 유일한, 왕좌만큼이나 위대하고 또 아름다운 충신의 대사들이야말로 사극을 보는 묘미일 것이다.  
“그 일(선조 독살)을 덮고 내 곁에 설 수 없냐”고 회유하는 광해를 향해 이덕형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하는 것은 비겁한 변명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권력이 아닌 야만이고 폭압”이라고 직언한다. 광해와 정명을, 왕좌를 소재로 <화정>은 ‘정의’를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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