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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성왕이 죽어 일본의 성덕태자로 환생한 이야기
백제 성왕이 죽어 일본의 성덕태자로 환생한 이야기
  • 송혜란
  • 승인 2015.07.23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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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성왕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구세관음상이다. 성덕태자의 얼굴과 비교해 보라

정유년 2월 15일(위덕왕24년 서기 577년) 백제왕 부여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하여 절을 세우고 사리 2과를 모셨는데 신의 조화로 셋이 되었다.

부여 왕흥사지에서 발굴된 사리기 외함에 적힌 내용이다. 이 내용은 신라 사리봉안 기록보다 66년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사리봉안 기록이다. 사리 2과가 분신하여 3과로 변하는 이적을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제왕 창은 성왕의 아들이다. 일찍 죽은 왕자를 위하여 왕흥사를 짓고 사리탑을 추선공양하였다.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성왕은 신라와 관산성 전투에서 포로가 된다. 그는 서라벌에 끌려가 갖은 모욕을 당하고 노비의 칼에 목이 잘린다. 성왕의 목은 신라관청 북청의 계단 아래 묻혀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게 하였다. 그리고 목이 잘린 시신을 백제로 보냈다.

성왕의 아들 창은 울부짖으며 외쳤다. “나는 출가하여 선왕의 명복을 빌겠다.”
“백제의 왕업을 잇고 선왕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 출가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창은 위와 같은 신하들의 만류로 성왕의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위덕왕이다. 위덕명왕은 문수보살의 분노존을 이르는 말이다. 그는 목이 잘린 선왕의 육신을 다시 온전하게 받들기 위하여 생전 부왕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관음상을 조성하였다.

일본 호류지 몽전에 모셔진 구세관음상이 백제성왕을 모델로 위덕왕이 조성한 그 불상이다.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 대향로는 바로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오신 구세관음 백제성왕전에 바친 대향로이다. 지금은 일본과 한국에 따로 떨어져 있지만 다시 한자리에서 향공양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한,일의 불교도들이 만들어야 한다.

백제 위덕왕은 백제계 소가씨가 세력을 잡고 있는 일본에 대규모 사절단을 보낸다. 요즘 같으면 종합건설회사를 보낸 것이다. 사원건축을 할 수 있는 도편수, 기와기술자, 불상과 불화를을 조성하는 불모 등 불탑을 세울 수 있는 뛰어난 기술 인력을 파견하였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최초의 사원이 법흥사이다. 법흥사는 원흥사로 이름이 한번 바뀌고 이제는 비조사로 불린다.

위덕왕은 법흥사 낙성식에 축하사절단의 대표로 왕자이며 화가인 아좌태자를 보낸다. 백제왕의 사신으로 일본왕궁에서 성덕태자의 영접을 받는다. 아좌태자는 성덕태자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성덕태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두 손바닥을 만져보고 두 발바닥도 살펴보고는 다시 일어나 무릎을 끓고 두 번 큰절을 올렸다.
“크게 자비로우신 구세관음께서는 동쪽 해 뜨는 나라에 오셔서 으뜸가는 가르침을 앞으로 49세까지 펴시면서 불법을 밝히고 연설하시게 됩니다.”

이때 성덕태자가 지긋이 눈을 감으니 미간에서 번쩍하면서 밝은 빛이 30자에 이를 만큼 길게 뻗쳤다. 아좌태자는 무릎을 꿇고 다시 재배하였다. 성덕태자는 좌우를 돌아보고 나서 말했다.
“이곳의 나로 말하자면 옛날 사람인데 내 제자를 위하는 까닭에 이곳에 왔거늘 이제 와서야 고맙다는 말을 듣게 되는구나” 하고 말씀하시니 함께한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이 내용은 일본의 고문헌인 부상략기와 성예초에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역사인물 중에서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바로 성덕태자이다. 일본의 17조 헌법을 제정하여 삼보를 존중하고 불법을 받들어 화합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유마경, 승만경, 법화경을 설법하고 주석서를 남겼다. 마굿간 태자로 불린 그는 손바닥에 부처님 사리를 쥐고 태어났다.

과거 일본의 만원권 지폐에는 성덕태자의 존안이 있었다. 바로 백제 왕자 아좌태자가 그린 초상화 그림에서 따온 것이다. 성덕태자와 두 왕자상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이다. 본래 법륭사에 있었지만 현재는 황실박물관에서 모시고 있다.

▲ 백제성왕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175cm 크기의 구세관음상이다. 큰눈을 뜨고 백제식 관복과 보관을 쓰고 있다.


법륭사의 고대문서 성예초의 기록을 보면, 백제 위덕왕은 서거한 부왕인 성왕을 그리워하여 그 존상을 만들었다. 즉 그것이 구세관음상으로서 백제에 있었던 것이다. 성왕이 죽은 뒤에 다시 환생한 분이 성덕태자이다.

글 사진 석현장(아시아문화재단 이사장, 대원사티벳박물관장, 현장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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